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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에 임금피크제 제동... 합리적 이유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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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에 임금피크제 제동... 합리적 이유 있어야
  • 송민경 소비자기자
  • 승인 2022.05.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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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위법 판결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 무효, 기준 제시
당분간 소송 이어질 듯... 모호한 기준 보완해야

[소비라이프/송민경 소비자기자] 연령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던 기업이 혼란에 빠졌다. 

지난 26일 대법원은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1년부터 2014년 9월 명예퇴직 때까지 해당 연구기관의 임금피크제에 따라 삭감된 임금을 받았다. 정년을 61세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의 급여를 삭감하는 방식이었다.

재판부는 임금이나 복리후생 분야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금하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여 연구기관의 임금피크제가 차별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임금 삭감 전후로 원고에게 부여된 업무 강도나 목표 수준에 차이가 없었다는 이유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대법원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상 연령 차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노동자 불이익 정도(임금 삭감 폭과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과 강도 변화 여부 및 적정성, 감액 재원이 도입 목적에 사용됐는지 여부 등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3년 고령자 고용법이 개정되면서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법적 정년이 60살로 연장되었으며, 정년연장을 할 경우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임금피크제 도입이 가속화되었다.

2021년 6월 기준 정년제를 둔 1인 이상 사업장 34만7000여곳 중 22%인 7만6507곳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 만 60세 정년제를 도입한 300인 이상 기업은 절반이 넘는 5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위법이라고 판단한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그대로 둔 채 임금만 깎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로, 국내 다수의 기업이 도입 중인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연령유지형 임금피크제와 대상 노동자 불이익 정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또한 임금 삭감의 정도, 직무 변경과 노동시간 단축 정도, 감액 재원의 활용 방안에 따라 연령 차별로 판단될 여지가 없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기업 사이에서는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판결 이후 기업 인사팀과 변호사 사무실에 임금피크제 관련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만큼 이번 판결로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나아가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의 업종은 정년에 육박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활발하게 운영 중이어서 노조와의 임금피크제 협상에 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기존 생산인력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조가 신규 충원에 더해 정년 연장과 임금 인상까지 요구하고 있어 갈등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개별 사례마다 종합적인 고찰을 거쳐 판단해야 하고 임금 삭감의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유지하는 기업들은 이번 판결을 최대한 반영해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 재계 관계자는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타당성, 업무량 감소 여부 등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어렵고, 사측과 노동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모호한 기준을 비판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의 위법 여부 판단 기준을 더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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