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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구직난에 시달리는 20대가 명품소비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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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구직난에 시달리는 20대가 명품소비의 주역?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1.11.15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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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과연 사치품일까. 우리는 이렇게 되물어야 할지 모른다. 한 때 명품은 곧 사치품이었다. 2007년 출간된 책 <왜 그들은 명품에 열광하는가, ‘럭셔리 코리아’ 사치의 나라>에서 저자는 명품을 ‘사치품’으로  규정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오늘날 명품을 사치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치품은 ‘생활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고가의 물품’을 뜻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명품’은 생활에 긴요한 것이고, 환금성이 높은 투자자산이다. 나아가 명품이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희미해진지 오래다.   

‘일상’이 된 명품 

좁은 의미로 명품은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네임을 인정받은 고가품을 뜻한다. 기업의 고급화 전략과 맞물려 상당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적게는 몇 십에서 몇 백만원, 많게는 몇 천에서 몇 억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흔하다. 

그런데 이 아무나 살 수 없을 것 같던 명품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일상이란 단어와 명품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명품에 대한 관심은 일상적인 측면이 있다. 자주 제품을 구매해서가 아니라 언제든 명품에 대한 이야기로, 명품에 대한 관심으로 명품을 끊임없이 소비해서다. 

2030 세대의 명품 사랑은 백화점 매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현대백화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사이 2030 세대의 명품 매출은 지난 같은 기간보다 48% 증가했다. 명품을 구입한 고객 중 30대 이하 비중은 지난해 42%에서 49%로 증가했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명품을 사는 사람 둘 중 하나는 20대란 말이다. 

물론 20대의 명품 사랑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명품백 하나를 사기 위해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거나 적금을 든다는 얘기는 오래된 얘기다. 차이라면 과거 이런 이야기가 일부 사람들의 특별한 현상 정도로 치부됐다면, 지금은 그 대열에 많은 젊은이들이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에 백화점이 문 열기 전부터 줄을 서고 기다리는 오픈런(OPEN RUN)도 이젠 익숙한 광경이다. 예전에도 명품을 찾고, 좋아하는 세대는 젊은 세대였지만 지금의 명품 소비는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게 보편화, 일반화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대체재 없는 명품의 인기
명품은 왜 이렇게 인길까. 최근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명품 수요는 코로나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자금이 묶이고, 이른바 보복소비가 일어나면서 명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외부요인이 명품 수요를 증폭시킨 것은 맞지만 이미 명품 수요는 젊은 층에서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렇다면 이번엔 명품 그 자체로 눈을 돌려보자. 명품은 기본적으로 품질이 뛰어나다. 보장된 퀄리티와 디자인, 세련된 마케팅 등이 명품의 인기 요인이다. 

압도적인 기술과 고급 원자재, 숙련된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빚어낸 명품은 때론 작품에 비견된다. 명품은 최고를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명품의 가치와 높은 가격을 설명할 순 없다. 

오늘날 명품이 아니더라도 실용적인 수준에서 명품과 견줄 수 있는 상품은 얼마나 많은가. 또 성능과 가격은 어느 정도까진 비례해서 상승할 순 있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상관관계가 떨어진다.  

명품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명품이 가진 ‘고유한 스토리’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각 브랜드는 탄생하기까지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다.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제품 자체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제품에 내재된 스토리이며, 자부심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는 자신들의 브랜드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말(馬)’을 위한 제품이라고 소개한다. 에르메스의 시작은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1837년 고급 마구 제조 공방을 열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간이 빚은 유산이 사람들로 하여금 명품에 환호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래서 명품을 ‘시간의 함수’로 정의하기도 한다. 독특한 브랜드 가치는 대체재가 없어 불매도 없다. 

누구나 알 듯이 명품은 비싸다.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몇 천만 원까지. 상품에 따라선 몇 억짜리 제품도 존재한다. 여성들에게 인기인 명품백의 예를 들어보자. 이른바 3대 패션브랜드 중 하나로 불리는 에르메스 가방 가격은 최소 400~500만 원대부터 시작한다. 

에르메스가 자칭 에르메스 장인 기술의 결정체라고 소개하는 ‘Chaine d'Ancre 카바백’의 가격은 1,400만원대. 버킨이 들어 유명해진 ‘버킨백’의 가격은 약 3,000만원대. 만약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가격은 더 올라간다. 

20대가 명품 매출 주역이라고?
일반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으로 명품을 구입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명품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게 취업난과 구직난에 시달린다는 2030 세대라니 말이다. 

한 편에선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를 염려하는 기사가 쏟아지는데, 다른 한 편에선 MZ 세대가 백화점 소비의 주역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어째서 명품 소비는 2~30대를 중심으로 늘고 있을까. 

먼저 오늘날 명품이 유형자산으로써 감가상각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산으로서 수익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명품은 20대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자 수단이다. 이 투자에는 별도의 공부가 필요 없고, 손해 위험도 적다. 

대개 소비재는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떨어지지만 명품은 아니다. 그 사이 제품이 단종되거나 구하기 어려운 희귀템이 되면 몇 년 후에는 샀던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팔 수 있다.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데다, 중고거래에 익숙한 이들이고 보니 명품은 꽤 괜찮은 투자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 사이 간지나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20대는 부모 찬스를 이용해 명품을 사고, 경제적 여력이 없는 20대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착실히 돈을 모아 명품을 산다.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데다,
중고거래에 익숙한 이들에게
명품은 꽤 괜찮은 투자 수단이다.
시간이 흘러 희귀템이 되면살 때보다 더 비싼 가격에
되팔 수도 있다. 그 사이 간지(?)나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명품세상
SNS와 유튜브는 그런 욕망을 촉발시키는 대표적인 매개체다. 유튜브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명품 관련 영상이 업로드된다. 대학생, 직장인, 20대, 심지어 10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명품 하울’ 또는 ‘명품 언박싱’ 영상이 넘쳐난다. 

하울(Haul)이란 말은 ‘끌어당기다’, ‘세게 끌기’라는 뜻으로, ‘명품 하울’은 여러 가지 명품을 쓸어담듯 한 번에 구매한 후 쇼핑한 물건을 하나씩 소개하는 영상을 가리킨다. ‘언박싱’은 본인이 구매한 제품을 포장부터 같이 뜯어본다는 의미다. 

‘에르메스/샤넬 2500만원 어치’, ‘샤넬 4000만원 신상 쇼핑 하울 언박싱’ 등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제목들이다. 몇 천만원어치 쇼핑은 아주 흔한 일상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수능이 끝난 고3 사넬과 루이비통 쇼핑’, 중학생이 올린 ‘사넬 동그리 백 언박싱’까지, 명품 쇼핑은 나이와도 무관한 듯 보인다. 

하나 더. 이른바 이런 ‘명품 하울’이나 ‘명품 언박식’ 영상은 명품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명품백을 소개하는 유튜브의 어깨 너머로는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넓은 거실과 소파, 조명이 펼쳐져 있다. 유튜브가 착용한 액세서리와 옷은 한 눈에 보기에도 고가다.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까지. 유튜버의 모습도 명품의 구성요소처럼 보인다. 

유튜브는 이렇듯 적나라하고, 구체적으로 부유층의 삶을 전달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매체에서 젊은 세대의 명품 인기가 “유튜브를 비롯해 전반적인 SNS 영향을 받아 비싼 명품에 대한 인식과 조망이 생기고 이를 SNS에 다시 과시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어린 시절 누렸던 물질적 풍요와 활발한 SNS 활동 등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 평가하는 데 익숙한 이들이 명품 소유 욕구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명품을 이용해 재력을 과시하는 이른바 ‘플렉스FLEX’ 문화도 명품 소비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몸을 풀다, 힘을 주다라는 의미를 가진 플렉스는 보디빌딩대회에서나 사용될 법한 말이지만 TV에서 연예인들이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할 때 사용되면서 확대됐다.

우리는 TV를 통해 늘 연예인들의 고급지고 화려한 삶을 마치 내 이웃의 일상처럼 흔하게 마주한다. 자신이 부자임을 과시하는 일도 더 이상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제 영&리치는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익숙한 광경이다.

동조와 과시적 문화 
명품을 찾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유튜브를 활발히 소비하는 10대에서도 명품 선호 현상은 뚜렷하다. 

이베이코리아가 지난 1월 옥션 방문자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가장 지출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쇼핑 품목에 대해 묻자 10대 43%, 20대 28%가 명품이라고 답했다. 

생필품 같은 단가가 낮은 품목에서는 비용을 아끼고 그 대신 명품에 돈을 쓰는 것이다. 불과 몇 해 전 중고생에게 제2의 교복으로 불린 노스페이스 패딩이 또래를 대표하는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고가의 명품을 착용하거나 들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젊은 층에서 쉽게 일어나는 ‘동조’ 현상이 과시적 문화와 만나 오늘날의 명품 유행이 만들어진 것인데, 과시를 위해선 당연히 사진 한 컷에 담겨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명품을 살 수 있다. 그게 10대, 20대라고 해서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행태가 고착화된다면 이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20대 양극화가 다른 어떤 세대보다 심화되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모두가 비슷한 욕망을 가지는데 특정한 누군가만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면 명품의 구매 여부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20대는 명품이 자신에게 주는 보상차원의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답답한 현실에 순응하거나 체념한 이들이 명품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박지연 기자 yeon7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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