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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동인도 회사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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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동인도 회사의 반전
  • 이강희
  • 승인 2021.10.0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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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향신료는 인도를 통해서 유럽에 유입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유럽에 있어 인도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콜롬버스가 대항해를 통해 발견한 서인도제도부터 유럽의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던 동인도회사까지 모두 향신료를 얻기 위한 일이었다. 유럽에서 향신료는 금보다도 비싼 재화였다. 때문에 유럽에서 항해술이 발달한 나라치고 아시아진출을 목표로 동인도회사를 만들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초기엔 무역을 위해 만든 동인도회사를 이용해 향신료에만 집중했지만 점차 다른 돈벌이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가장 선두권에서 활약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포르투갈이 빠져나간 일본의 데지마에서부터 대만, 인도네시아, 인도, 중동까지 이어지는 무역로를 구축하고 20여 곳의 상관을 설치해서 각 지역의 특산물을 구입해 유럽으로 유입시키는 동시에 아시아 내 교역에까지 참여하면서 다른 유럽 동인도 회사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교역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자의 이동이 어려웠던 시절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오가며 체득한 항해술은 당시의 아시아 국가들보다 뛰어났기에 바다를 활용한 이들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특히 동남아의 후추 등 향신료와 인도의 면직물,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을 각 지역의 저렴하게 구입한 뒤에 다른 나라로 가져가 비싸게 팔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익은 증가했다. 

네덜란드가 성장가도를 달리자 거래에서 밀려난 다른 국가의 견제가 이어졌다. 부를 지키기 위해선 배를 움직이는 항해술과 거래술뿐만 아니라 무력도 필요했다. 당시의 동인도회사 직원은 거래를 위해 한 손에는 물건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어야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이하 VOC)에 밀렸던 잉글랜드 동인도회사(이하 EIC)는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내실을 다졌다. 

VOC의 바타비아 총독이었던 얀 피에터스준 코엔(Jan Pieterszoon Coen, 이하 쿤)은 마찰이 발생하는 EIC를 먼저 공격을 하기로 하고 암보니아(이하 암본)사건을 일으켜 EIC의 주요 거점인 암본을 장악한다. 두 세력은 향신료 시장에 초점을 두다보니 동남아시아를 두고 경쟁했지만 암본 사건으로 동남아시아의 주도권을 빼앗긴 EIC가 관심을 인도로 돌리면서 두 회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EIC는 VOC에 밀려 인도에 집중하게 된다. EIC가 인도의 면직물을 가져오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전까진 양모로 만든 무거운 직물을 주로 사용했는데 면으로 만든 가벼운 순면직물이 들어오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가격도 저렴해 인도산 면직물을 찾는 이가 많아지자 유럽 내 직물소비의 흐름이 바뀌었다. 이에 잉글랜드의 전통산업이었던 양모 사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됐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 VOC에 대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견제는 심해졌다. 1652년부터 잉글랜드와 전쟁을 시작으로 약 100여 년 동안 네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네덜란드의 국력은 쇠약해졌다. 특히 향신료에만 집중했던 VOC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보다 많은 선단을 이용해 유럽으로 향신료를 가져왔다. 이런 대량의 유입은 유럽에서 향신료 가격이 떨어지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상거래에만 집중하던 네덜란드와 달리 식민지건설에 집중했던 잉글랜드는 이후 무굴제국을 통치하게 된다. 잉글랜드 식민지가 늘면서 보호무역으로 인해 네덜란드의 활동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네덜란드는 더 이상 잉글랜드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VOC에 밀려 인도에 집중하게 된 EIC는 단순한 상거래가 아닌 나라 전체에 대한 거래에 집중해 동인도회사들의 경쟁에서 최후 승자가 되었고 잉글랜드는 ‘해가지지 않는 제국’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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