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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해상왕국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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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해상왕국 베네치아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5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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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군수 물자 거점으로 부를 쌓은 베네치아, 조선업 통해 활발한 중계무역
부의 집중 해결과 계급 간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력 아끼지 않아...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유럽이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전 모든 교역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물자의 수출과 수입 모두가 지중해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됐다. 여러 도시와 나라가 대서양 무역에 나섰지만 이중 아드리아해를 중심으로 두각을 나타낸 곳이 바로 베네치아다. 로마제국 때부터 자치권을 얻었던 베네치아는 697년부터 투표를 통해 선출된 도제(Doge)가 다스렸다. 공화정 체제의 시작이다.

로마가 그랬듯 조그마한 어촌이었던 베네치아는 갯벌에 커다란 나무 기둥을 박아 바닥을 다지고 건물을 세우면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성장한 도시는 상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지중해의 무역이 활성화됐고 베네치아 상인들의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특히 조선업이 발달했던 베네치아는 직접 건조한 배로 바다를 누비며 지중해 무역을 이끌며 부(富)를 쌓아갔다.

베네치아의 조선업과 해운업은 상인들이 아닌 공화정에 의해 운영됐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시대가 지나고 나자 동로마는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8세기 들어 영토 대부분을 빼앗긴 비잔틴 제국에게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유일의 거점이었다. 이런 점은 베네치아가 십자군 출발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베네치아는 전투에 필요한 무기와 식량 등 군수물자 보급 거점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었다. 이때 많은 군수물자와 십자군을 수송하기 위해 큰 배가 필요해졌고 베네치아의 조선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 베네치아는 키프로스와 플란데런을 비롯한 다양한 상업지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통해 마진을 얻었고, 유럽의 돈은 베네치아로 흘러들었다. 베네치아의 이런 성장은 제노바의 견제를 받으며 80년간 이어진 전쟁 빌미가 됐지만 그 번영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베네치아에서는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오가는 돈으로 인해 부가 움직였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금융업이 발달하게 된다. 금융업의 발달과 교역의 중심이 된 베네치아를 통해 많은 물건이 주인을 찾아 움직이면서 지중해의 풍요로운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시기와 질투를 받을 정도로 성장한 베네치아의 밑바탕에는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가 있었다. 이에 대한 믿음은 ‘채권’을 만들어냈다. 바로 빚이다. 베네치아 공화정의 신용으로 시작된 국가의 부채 즉, ‘국채’가 시작된 것이다. 공화정은 국채를 발행해 빚을 지고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아 지출을 했다. 이런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예금을 받거나 전당포 업무를 보던 은행은 일반 시민들에게 신용대출과 담보대출을 하게 된다. 더불어 베네치아 유력가문은 은행을 통해 돈을 관리하고 투자를 했다. 물론 은행은 위탁으로 돈을 관리하며 중간에서 생기는 수수료를 받았다.

무역은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그만큼 자연의 해상사고와 해적으로 인한 손실이 컸다. 당연히 여러 위험에 대비하고자 해상보험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을 수치화해서 돈으로 평가한 것이다. 더불어 금융이 발달하게 되면서 다양한 경우의 수가 생기게 된다. 이런 경우를 숫자로 나타내는 수치화가 진행되면서 피보나치 같은 수학자가 명성을 떨치게 됐다.

베네치아는 상업과 금융을 통해 이룬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막강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드리아해에 인접한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의 연안에 위치한 여러 지역에 식민지를 두기도 했다.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공화정이 무너지기까지 1,100년 간 이어진 베네치아는 부의 집중 해결과 계급 간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통해 오랜 기간 존속될 수 있었다.

또한 임기가 종신 보장됐던 도제마저도 뇌물을 받으면 물러나야 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공동체에서 청렴함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부정으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LH는 베네치아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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