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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소비] 파인애플·선인장으로 가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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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소비] 파인애플·선인장으로 가죽을 만든다?
  • 홍보현 기자
  • 승인 2021.01.1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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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잎, 포도와 사과 껍질, 망고, 버섯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가죽 인기
최소한의 윤리성을 지닌 사려 깊은 소비자가 주목받고 있다

[소비라이프/홍보현 기자] 동물윤리를 지켜 생산한 의류에 대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패션 업계도 ‘착한 소재’로 만든 옷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비건 열풍에 뜬 인조 가죽
인기리 방영된 TV예능 프로그램 ‘놀면뭐하니?’의 환불원정대에 등장한 가수 이효리가 가죽옷을 입고 나오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평소 동물을 사랑하고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이효리가 가죽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가죽옷은 모두 비건 가죽(vegan leather)으로 인조 가죽의 일종이다.

인조 가죽은 동물 가죽보다 관리가 편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예전엔 비닐 장판 재질에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요즘엔 품질이 좋아져 ‘가짜 티’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가죽보다 다채로운 색상 표현이 가능하고, 재단이나 봉제가 수월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또 진짜 가죽보다 다채로운 색상 표현이 가능하고, 재단이나 봉제가 수월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인조 가죽은 진짜 가죽을 입을 때보다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패션 업계에 따르면 매년 10억 마리가 넘는 동물이 가죽 채취를 위해 도살된다. 가죽을 피혁(皮革)으로 가공하는 무두질에 사용되는 각종 화학 물질로 인한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는 동물성 피혁과 털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인조 가죽 재킷 한 벌 가격이 100만 원이 넘지만, 동물 복지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판매가 이뤄진다. 닥터마틴은 비건 가죽으로 만든 워커를 판매하는데, 지난해 매출이 2017년과 비교해 279% 증가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와 H&M도 ‘에코 가죽’이라는 이름으로 인조 가죽 상품 카테고리를 운영한다.

하지만 인조 가죽은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인조 가죽으로 사용되는 폴리우레탄(PU)과 폴리염화비닐(PVC)의 원료는 플라스틱으로, 완전분해까지 수백 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환경론자들은 ‘에코’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번지는 인조 가죽 패션이 유행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동물성 가죽을 쓰되, 도축과 가공 방법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패션 트렌드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식용산업에서 채취한 동물 가죽을 식물성 타닌으로 무두질한 베지터블(vegetable·채소) 가죽이 대표적이다. 영국 가죽 제품 브랜드 멀버리는 최근 출시한 알렉사 핸드백을 친환경 무두질로 만든 가죽을 사용해 탄소 중립 공장에서 제작했다.

파인애플과 선인장으로 만든 ‘비건 가죽’
채식 인구 증가와 윤리적 소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건 가죽 시장의 성장은 가속화되고 있다. 비건 가죽이란 동물의 사체를 사용하지 않은 가죽을 일컫는다. 동물 원피를 활용해 만드는 기존 가죽과는 반대 개념으로 동물 재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인조 가죽 시장 규모는 매년 4.4%씩 성장해 2027년에는 45조 5,42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파인애플 잎, 포도 껍질, 사과 껍질, 선인장, 망고, 버섯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가죽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파인애플 부산물로 만든 ‘피냐텍스(pinatex)’는 파인애플 잎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고무 성분을 제거한 뒤 숙성시켜 만든다. 섬유질을 모아 펠트처럼 찍어내고 무두질하면 동물 가죽과 비슷하게 단단해지는데, 기존 가죽보다 가볍고 부드럽고 통기성이 뛰어나다. H&M, 푸마, 휴고 보스 등이 피냐텍스로 재킷과 신발 등을 만들었고, 테슬라는 자동차 시트 가죽으로 사용했다. 앤아더스토리즈는 와인 제작 후 남은 포도 껍질로 제작한 가죽 ‘비제아(vegea)’로 만든 샌들을, 타미힐피거는 사과 껍질 가죽으로 만든 ‘애플스킨 스니커즈’를 출시했다. 비건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는 멕시코에서 개발한 선인장 가죽 ‘데세르토(desserto)’로 카드 홀더를 선보였다. 지난 8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소개된 이 제품은 목표액의 427%를 초과 달성했다. 데세르토는 프랑스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주최한 이노베이션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선 한지를 사용해 가죽을 만든다. 원단회사인 한원물산의 한지 가죽 ‘하운지’다. 면에 한지를 발라 가죽의 질감을 만들고 수용성 코팅으로 방수 기능을 더했다. 인조 가죽보다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데다 면과 종이가 주재료이기 때문에 버려도 땅속에서 쉽게 분해된다. 지난 3월 국내 패션 브랜드 ‘스튜디오 톰보이’가 이 한지 가죽으로 스커트·팬츠·블라우스를 만들어 출시했다. 정우한 한원물산 대표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들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 올해 9월 기준 지난해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잔혹한 포획 및 도살로 만들어지는 동물 가죽은 패션계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진짜보다 멋진 가짜인 인조 가죽이든 최소한의 윤리성을 지닌 진짜 가죽이든, 보다 사려 깊은 소비가 주목받고 있다. 
 

<소비라이프Q 제159호 환경소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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