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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크린 물들인 실버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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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크린 물들인 실버세대
  • 전지원 기자
  • 승인 2020.10.12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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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오! 문희, 카일라스 가는 길, 치어리딩 클럽
누군가의 부모로 살던 노년기 인물을 서사의 중심에 두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조명하는 작품들

[소비라이프/전지원 기자] 실버세대를 다룬 콘텐츠가 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6070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그들의 활동력 또한 커졌기 때문이다.

제공 : 영화사 진진

집단이 아닌 ‘나’를 조명하다
최근 한국 영화계는 실버세대를 다룬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수정 배우 주연의 ‘69세’와 나문희 배우 주연의 ‘오! 문희’, 최고령 오지탐험가 이춘숙 할머니가 출연하는 ‘카일라스 가는 길’, 다이앤 키튼 주연의 ‘치어리딩 클럽’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들은 누군가의 부모로 살던 노년기 인물을 서사의 중심에 두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조명하고 있다.

69살 여성 효정(예수정)이 병원에서 29살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이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룬 ‘69세’는 충격적인 사건보다 효정이 마주하는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고민 끝에 효정은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효정을 치매 환자로 몰아간다. 법원 또한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 영장을 기각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효정은 자신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오! 문희’는 뺑소니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인 오문희와 물불 안 가리는 아들 두원이 범인을 잡기 위해 펼치는 좌충우돌 수사극이다. 주인공 ‘오문희’ 역을 맡은 나문희 배우는 누군가의 어머니보다도 손녀의 뺑소니범을 직접 잡기 위해 발로 뛰는 캐릭터다. 그녀는 연기 인생 최초로 액션 연기까지 선보이며 작품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9월 3일 개봉한 ‘카일라스 가는 길’은 여든넷 할머니가 카일라스 순례를 통해 살아왔던 시간을 돌아보고 길 위의 자연과 오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험을 담은 로드무비다. 주인공 이춘숙 할머니는 젊은 시절 여성 공무원으로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신여성이었지만 서른일곱에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들을 키우다 백발의 할머니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떠난다. 아들 정형민 감독과 함께 히말라야를 시작으로 바이칼 호수, 고비 사막, 알타이 산맥, 파미르 고원에서 티베트 카일라스 산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여정을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치어리딩 클럽’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한 다이아 키튼(마사 역)이 실버타운으로 이사 오면서 겪은 일을 다루었다. 마사는 조용히 여행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사 첫날부터 동아리 가입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실버타운 입주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동아리에 하나 이상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어리딩에 푹 빠졌던 과거를 기억해낸 마사는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죽기 전 꼭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우리 모두 겪는 일
실버세대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는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6070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그들의 활동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영화 평론가는 “노년이 주요 방송의 소비자가 된 만큼 ‘노인’을 다룬 영화도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실버세대 영화의 특징은 영화적 재미는 물론 관객의 공감대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세대’보다 한 사람의 구체적 심리를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노인 영화와는 다른 점을 추구하고 있다. 69세의 주연 배우 예수정은 한 인터뷰에서 “청년들이 다양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노인들도 마찬가지”라며 “노인을 집합체로 보지 않고 개개인을 조명하고 탐구하려는 시도가 좋아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달라진 실버세대 영화들이 이전보다 폭넓은 관객층에 다가간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거엔 노인 소재 영화가 주요 관객인 20~30대의 외면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의 실버세대 영화는 젊은 관객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다가가고 있다. CGV에 따르면 영화 ‘69세’는 네이버 영화 평점 테러를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관객을 분석해본 결과 20~30대가 58%를 차지했고 특히 여성의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문제는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효정의 투쟁이 감동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평이다. 또 다른 영화 평론가는 “노년의 삶을 먼 미래의 남 얘기가 아니라 곧 닥칠 내 얘기로 바라보는 중년 관객층까지 더해져 많은 이들이 실버세대 콘텐츠를 찾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비라이프Q 제156호 라이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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