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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 싸움에 소비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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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 싸움에 소비자는 없었다!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8.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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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행(소비라이프 편집위원)

 

은행권과 보험권이 4월 방카슈랑스 4단계 시행을 앞두고 ‘법대로 해야 한다’와 ‘폐지해야 한다’라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싸움이 국회에서 보험권의 손을 들어 주어 ‘보험 판정승’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원래 방카슈랑스는 유럽에서 은행이 자회사로 만든 보험사의 판매채널로서 은행판매망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IMF이후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원스톱 쇼핑과 보험료 인하의 소비자 편익제고’ 라는 명분으로 도입됐으나, 실제로는 IMF로 흔들리는 은행의 수입보전이 주 목적이었다. 이 때 보험업계는 IMF이후 부녀조직위주의 설계사를 고능률 설계사로 대체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못 이기는 척 방카슈랑스의 도입에 동의했다. 우리나라는 은행 자회사의 보험회사도 없었고, 좁은 땅에 30만명이 넘는 설계사와 대리점이 방방곡곡에서 과잉경쟁하는 상태에서 방카슈랑스의 도입은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은행에서 보험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보험권에서는 끊임없이 ‘불완전판매와 민원이 많고, 가격인하효과가 없다’ 라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은행의 방카슈랑스 확대를 막아왔다. 사실 은행에서 보험을 판매하며 발생하는 민원과 보험사에서 종전 그대로 보험을 판매하는 방식에 대한 민원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가격인하 효과는 법적으로 정한 신계약비의 30% 정도가 보험사 판매 상품보다 은행이 적게 부과된다. 하지만 이외에는 금융기관간 경쟁에 의해 인하된 게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상품은 은행이 만드는 것은 아니라 보험사에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료인하에 대한 책임도 보험사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은행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은행도 잘했다고만 할 순 없다. 제 발로 찾아오는 소비자에 대한 판매 보다는 직원 목표 할당 판매, 대출자에 보험가입 강요 등 오해를 살 만한 행위를 한 것도 사실이다.

올 4월부터는 방카슈랑스 확대의 마지막 4단계로 보험사의 핵심 주력 상품인 생보의 종신보험 등 사망보험과 손보의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기로 돼 있었다. 이에 대해 보험사의 마지막 저항이 강력하게 시작됐다. 은행이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설계사 대리점주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설계사와 대리점주를 시위에 가담케하고 목전에 다가온 방카 시행을 전방위로 제지하는 활동을 펼쳤다.

은행은 당연히 시행될 줄 알고 수백억을 들여 시스템을 만들고 시행 시기만 기다려온 반면, 보험권은 사활을 걸다시피 국회·금감원·재경부에 매달려 4단계 시행을 막았다. 결국 국회가 설계사와 대리점주의 30만 표를 의식해 4월, 4단계 시행 시행령을 폐지시키기로 했다. 애당초 방카슈랑스 시행을 약속한 정부· 보험권·국회 모두 소비자와의 약속을 소비자에게 한마디의 양해 없이 헌신짝 버리듯이 져버렸다.

도입부터 현재까지 방카슈랑스 문제에서 정부·은행권·보험권 모두 방카슈랑스의 도입에도, 시행확대의 명분에도, 시행중지의 결정에도 ‘소비자’라는 이름을 파는데는 앞다퉈 나섰지만 그 어느쪽도 진정으로 ‘소비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해 이를 정책에 담는 용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방카슈랑스에 소비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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