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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불량 금융사 '빨간 딱지'에 옐로카드 꺼낸 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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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불량 금융사 '빨간 딱지'에 옐로카드 꺼낸 금융위
  • 양수진 기자
  • 승인 2014.05.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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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원이 민원 예방 노력이 불량한 금융회사들에게 붙인 일명 '빨간 딱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원감축을 위한 획기적 조치라는 평가도 있지만 '무리한 창피주기'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근거가 없는 '지나친 제재'라는 지적이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각 금융사에 공문을 보내 2013년 민원발생평가 등급을 영업점에 게시토록 했다.

이에 따라 평가 결과 최하등급을 받은 금융회사들은 모든 영업점 입구에 A4 용지 크기에 빨간색으로 '2013년도 금감원 민원발생평가 결과 5등급(불량)'을 인쇄해 부착했다. 대문에 '저희 회사는 민원이 많은 회사입니다. 거래에 주의하세요'라고 써 붙인 셈이다. 그것도 3개월간 부착해야 한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온라인에만 공시하면서 금융회사 직원도 자신의 회사가 무슨 등급을 받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눈에 띄지 않게 꼼수를 부려 왔다"며 "평가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1~5등급 모든 금융회사가 등급을 빨간색으로 한 것일 뿐 5등급에만 '빨간 딱지'를 붙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금융회사들은 이번 조치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민원평가가 민원을 줄이도록 계도하기 위한 것이지 모욕을 주는 것이 목적이냐', '객관성에 대한 의문이 있는 평가를 가지고 사실상 영업을 못하게 한 것'이라는 등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5등급이 아닌 금융사에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난달 민원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업점 게시'는 연내에 도입하겠다고 밝혀놓고 한 달도 안돼 시행해 버렸다"며 "계도가 목적이라면 시정할 시간을 주는 것이 정상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개선 노력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계량적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겼다"며 "평가 기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평가 방식의 문제에 대해선 금감원도 "영업규모 대비 민원건수를 평가하는 계량적 평가로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현행 평가와 별도로 금융회사의 소비자 보호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소비자보호실태평가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는 절차적 정당성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은 평가결과의 영업점 게시가 '행정지도'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량 금융회사만이 아니라 모든 금융회사가 공시토록 한 것인 만큼 '제재'가 아니라 '행정지도'이다"고 말했다.

행정지도는 금융당국이 소관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금융회사 등에 대해 요청하는 지도, 권고, 지시, 협조요청 등을 말한다. 금융당국의 '행정지도 운영규칙'에는 '행정지도를 하는 경우에는 금융회사 등에게 해당행위가 행정지도에 해당함을 명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복수의 금융사에 확인한 결과, 금감원은 금융사에 보낸 공문에 행정지도임을 밝히지 않았다. 또 중요한 행정지도는 금융위와 사전 협의토록 규정돼 있지만 금융위는 "사전협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행정지도를 할 때는 '해당 금융회사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최대한 반영토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런 과정도 없었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행정지도는 지도를 받는 금융회사의 의사에 반해 부당하게 강요해서는 안되고 따르지 않았다고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규정상으로만 본다면 금융회사가 '빨간 딱지'를 붙이라는 금감원의 지도를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소비자 분쟁 처리는 금감원의 업무이기 때문에 금융위와 사전협의할 필요가 없었고 영업점 게시 지시는 경영공시 사항으로 근거가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을 관리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자칫 금감원과 갈등을 빚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내부에선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제재다', '도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 등의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카드 정보 유출 당시 '모집인을 통한 대출의 경우 모집경로를 확인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리기 위해 임시 금융위까지 열어 의결했다"며 "금감원은 이번 조치가 행정지도라고 하는데 무슨 절차를 거치고 어떤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제기하는 평가의 공정성도 일부 타당한 부분이 있어 평가지표를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금감원의 조치가 실제 효과가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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