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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가곡 ‘옛 동산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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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가곡 ‘옛 동산에 올라’
  • 왕성상
  • 승인 2023.11.29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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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상 작시(作詩), 홍난파 작곡…1933년 ‘조선가요작곡집’ 통해 발표
시조시가 노랫말 된 역사성 지닌 작품, 마산 노비산에 노래비(詩碑)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료

지팡이 도로 집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료

[왕성상의 가곡·동요·민요 이야기’ / ⑮ ‘옛 동산에 올라’]

 

이은상 작시(作詩), 홍난파 작곡의 옛 동산에 올라는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가곡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는 내용의 가사에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일품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겨레의 심금을 울린 민족의 노래이기도 하다.

 

1932년 미국에서 작곡

옛 동산에 올라는 약간 느린 속도의 4분의 3박자, 라단조, 두 도막 형식의 유절가곡(有節歌曲,  Strophic : 가사의 각 절이 같은 선율로 된 가곡)이다. 가사는 1, 2절로 돼있다. 낭만적 분위기의 통속적 애창가곡이기도 하다. 이은상이 1928년 여름에 발표한 시조시 옛 동산에 올라가 노랫말이다. 고유한 전통 시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다.

노랫말에 나오는 옛 시인의 허사란 고려 말 충신 길재(吉再)가 나라가 망한 뒤 지은 시조를 말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은상은 이 시조구절을 인용, 망국의 한을 노래했다. 시조시를 노랫말로 삼은 가곡으로 역사성이 있다.

여기에 작곡가 홍난파가 멜로디를 붙였다. 그가 미국유학 때인 1932년에 작곡, 이듬해 발표됐다. 홍난파 가곡작품집 조선가요작곡집을 통해서다. 그는 작곡집에서 이은상의 시가 마음에 들어 작곡하게 됐다고 밝혔다.

반주는 펼친 화음으로 이뤄진다. 화성은 으뜸화음, 버금딸림화음, 딸림7화음으로 어우러진다. 3장의 시조형식을 4장의 음악적 형식으로 만들기 위해 한 악구(樂句)의 간주를 뒀다. 간주에선 곡에 변화를 주기위해 4분의 4박자로 바뀐다. 선율은 온음계적으로 부드럽고 서정성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적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선율에 이끈 음을 생략시킨 게 특징이다.

노래는 8·15광복 후 음악교과서에 실리며 전국적으로 알려져 국민애창곡 수준의 명곡이 됐다. 테너 엄정행, 바리톤 최현수, 소프라노 곽신형 등 성악가는 물론 문정선을 비롯한 대중가수들도 이 노래를 불러 사랑받았다. ‘홍난파의 클래식 입문서, 옛 동산에 올라와 같은 책도 나와 노래인기를 말해준다.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노비산에 가면 옛 동산에 올라노래비(詩碑)가 있다. 비 위쪽엔 노래가사가, 아래받침돌엔 노산시비란 글귀가 새겨져있다. 노산(鷺山)은 제비산이란 뜻으로 이은상의 호다. 그의 고향 뒷산이름(노비산)에서 따왔다. 가곡 가고파노래배경지 마산 합포만이 바라보인다. 바다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산 아래엔 노산동 마을, 노비산 산책길, 가고파 거리, 마산문학관 등이 있다.

​옛동산에 올라 시비 (노산 이은상 - 경남창원시 노비산) (출처: 오마이뉴스)
​옛동산에 올라 시비 (노산 이은상 - 경남창원시 노비산) (출처: 오마이뉴스)

 

이은상, 마산출신 문인이자 교육자

이은상은 19031022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918년 마산지역사립교육기관인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0년 연희전문(연세대 전신) 문과에 입학, 3년간 공부한 뒤 창신학교 고등과에서 2년간 교단에 서다 일본으로 유학 갔다. 와세다대(早稻田大) 문학부에서 공부한 뒤 1928년 귀국, 계명구락부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에서 일했다. 문학활동은 1922년 시 아버지를 여의고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봄 처녀’(1925), ‘옛 동산에 올라’, ‘가고파’(1932) 등으로 시조현대화에 힘썼다시조작가 겸 국문학자 이병기(189135~19681129)와 쌍벽을 이루며 시조시의 한 유형을 완성시켰다. ‘오륙도’(1934), ‘천지송(天地頌)’(1935), ‘푸른 하늘’(1940), ‘고지가 바로 저긴데’(1954) 등 현대시조시인으로 현대문학사에 기록될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무상’(1936), ‘민족의 맥박’(1951), ‘피 어린 육백리’(1962) 등 수필집도 냈다. 이은상은 현대문장가로 꼽힌다. 그의 대부분 작품에 멜로디가 붙여져 가곡으로 불리고 있을 만큼 전래시조형식을 현대적 운율로 소화해낸 문인이자 교육자다.

 

홍난파, 화성출신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홍난파는 1898410일 옛 수원(현재 화성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홍영우, 본관은 남양.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다.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달마중’, ‘낮에 나온 반달등의 노래를 작곡했다. ‘음악만필’, ‘세계의 악성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1912 YMCA를 졸업, 1915년 조선정악전습소 양악부를 거쳐 전습소 교사가 됐다. 1916년 그의 첫 작품으로 보이는 야구전 작곡했다. 행진곡풍의 야구응원가인 창가(唱歌). 1918 일본으로 가 도쿄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 후 돌아와 1920봉선화원곡인 애수를 작곡했다. 1925년 제1 바이올린독주회를 가졌고 잡지 음악계도 발간했다소설 처녀혼’, ‘향일초(向日草)’, ‘폭풍우 지난 뒤등도 발표해 문학적 재질을 보였다.

그는 1926년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에 편입, 이듬해 도쿄신교향악단 제1바이올린연주자가 됐다. 1929년 돌아와선 중앙보육학교 교수를 거쳐 1931년 조선음악가협회 상무이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미국으로 가 시카고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연구했다. 1933년 귀국해선 이화여전 강사를 지낸 뒤 경성보육학교 교수가 됐다. 1935년부터 백마강의 추억14곡의 대중가요를 나소운(羅素雲)이란 예명으로 발표하기도 해 이채롭다.

그에겐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1937 조선총독부 주도로 결성된 친일사회교화단체 조선문예회에 가입, 총독부 정책에 동조했다. 1938년 대동민우회(大同民友會), 1941년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단체에 가담한 것이다. 그는 1941830일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조선가요작곡집’(홍영후, 연악회, 1933) / ‘나라사랑’ 52-난파 홍영후 특집호(외솔회, 198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 ‘두산백과 두피디아’(두산백과)]

 

필자 왕성상은?

마산중·,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등록(865), ‘이별 없는 마산항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노래강의와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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