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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제조사, 위에 나는 유통사.. 권장소비자가격 악용 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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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제조사, 위에 나는 유통사.. 권장소비자가격 악용 극심
  • 황지우 소비자기자
  • 승인 2023.11.17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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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와 유통사의 담합으로 인한 피해 소비자 속출
가격 멋대로 정해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

[소비라이프/황지우 소비자기자] 언제부터인가 라면을 살 때 라면 봉지에 쓰여있던 권장소비자가격를 찾을 수 없다. A슈퍼 주인 Y씨는 권장소비자가격 제도가 도입되고, 장사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각 제품들의 가격이 얼마인지 일일이 외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거에 도매가에서 소매가로 넘어올 때는 마진이 20% 정도였는데, 현재는 15%로 낮아진 상황이다. 

요즘은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가격표가 있어서 쉽게 가격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가격표가 아니라 '권장소비자가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권장소비자가격이 현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아직 남아 있다.

SBS 기사자료
SBS 기사자료

 

권장소비자가격이란 제조사가 제품을 유통사에 납품하기 전에 미리 책정한 '정상가'를 말한다. 'B제품을 oooo원에 팔면 적당하다.'라고 정해주는 것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은 말 그대로 권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가게에 유통된다는 것을 가정할 때 유통비, 생산비, 인건비 등을 고려하여 기업에서 정한 가격이다.

이런 권장소비자가격이 악용되는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권장소비자가격 제도의 실행 과정을 보면 먼저 제조사가 유통업체(소매점)에 제품을 전달할 때 권장소비자가격이라고 정해서 소매점에 넘긴다. 이 과정에서 소매점 입장에서는 굉장히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는다고 오해받는 문제가 생긴다. 제조사에서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해주자 유통사에서는 마치 이 가격이 정상가가 아니라 할인가인 것처럼 속여서 팔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원래 1,000원인 제품을 마치 원래 1,500원인데 500원을 깎아준 것처럼 속여서 판매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1999년 일부 품목에 한해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앴다. 그 대신에 판매사 간의 가격 경쟁을 촉진하는 목적의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되었다.

연합뉴스 보도자료
연합뉴스 보도자료

 

이때부터 권장소비자가격이 자취를 감췄지만, 1년만에 다시 부활했다. 경쟁을 유도해 가격거품을 막아보겠다는 목적과 달리 제조사와 유통사가 답합해 부당이득을 가져갔다. 또한 판매점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매기도록 하니 같은 제품인데도 가게 별로 가격 차이가 나는 등 오히러 가격 인상이 심화됐다.


다만, 다시 부활한 권장소비자가격을 찾기 힘든 이유는 업체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판매 가격만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는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이다. 권장사항이지만 대부분 표시하지 않는 이유은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해 시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기를 바라지만, 판매처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픈프라이스의 취지에 맞추어 권장소비자가격을 기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시행 중인 권장소비자가격 제도에도 부작용이 있다. '1+1', '2+1' 행사다. 득을 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더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격이 500원인 제품을 편의점에서는 500원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을 500원이라고 해놓으면 되는데 700원으로 표시하면서 실질적으로 판촉을 한다. 이렇게 되면 권장소비자가격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1+1', '2+1'행사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보통 매장은 권장소비자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판매자마다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서 소비자가 최대한 저렴한 곳을 찾는 수고가 필요하다.

권장소비자가격, 오픈프라이스 제도 둘 다 초기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하지만 제조사나 유통사가 제도를 악용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태도를 보여 1년마다 제도가 바뀌고 가격표시의 취지가 불분명해진 것이다.  권장소비자가격과 오픈프라이스 제도로 이러한 논란이 불거졌으므로 이들의 담합 때문에 생긴 소비자 피해를 정부가 막아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최종 소비자는 적당한 가격이 얼마인지, 소비자가 구입하는 가격이 적절한지 알 수 없고 유통 과정에서 누가 폭리를 취하는지도 알 방법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업체가 가격을 멋대로 정해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불공정 거래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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