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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시달린 어린이들을 위로한 '나뭇잎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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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시달린 어린이들을 위로한 '나뭇잎 배'
  • 왕성상 대기자
  • 승인 2023.08.16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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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1955년 ‘KBS방송동요’로 발표
노랫말-리듬 잘 어우러진 동심(童心), 예술성 접목된 명곡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 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의 나뭇잎 배는 노랫말과 리듬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요다. 8분의 6박자, 내림마장조 곡으로 조금 느리게 나간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국민애창동요로 꼽힐 만큼 사랑받는 명곡이다. 티 없이 맑은 동심(童心)이 곳곳에 배어있다.

 

북에 두고 온 가족, 벗들 그리움 담겨

나뭇잎 배6·25전쟁으로 시달리고 찢어진 어린이들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북한에서 피난 온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든 서정동요다. 북녘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벗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1절 첫 소절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에 대입돼 슬픈 시름(애수)이 느껴진다. 그래서 새터민, 실향민, 출향인을 비롯한 어른들도 어릴 때를 떠올리며 즐겨 부른다. 둘째소절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도 순수한 어린이 마음이 읽힌다. 시적인 감각과 동심이 조화된 한편의 자장가다.

놀이에 빠진 아이에게 푸른 달과 흰 구름 떠가는 연못은 그 자체가 우주요 동심의 공간이다. 어린이의 영혼은 놀이를 통해 펼쳐진다. 만들어 띄운 나뭇잎 배는 물이랑이 이는 쪽으로 간다. 해가 지자 아이는 집으로 가 밥을 먹고 엄마 옆에 누워 자려하지만 나뭇잎 배가 자꾸 아른거린다. 놀이의 달콤한 뒷맛에서 깨어나지 못해서다. 엄마 품 같은 연못에서 나뭇잎 배를 탄 동심이 엿보인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엄마와 함께했던 그 옛날 어린 시절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나뭇잎 배는 친환경장난감으로 만들기 쉽다. 넓은 갈댓잎이나 억새 잎을 3등분해 아래 위 잎이 만나게 접는다. 접힌 윗부분을 나뭇잎 결을 따라 둘로 나눈다. 양쪽으로 나뉜 잎을 마주보게 끼워주면 앞면이 뾰쪽한 나뭇잎 배가 된다. 뒷면도 그렇게 해주면 마무리된다.

 

KBS ‘곱고 아름다운 노래부르기운동으로 태어나

노래가 처음 소개된 때는 1955. ‘KBS 방송동요로 발표돼 널리 불렸다. 휴전협정(1953727) 이듬해 KBS가 펼친 곱고 아름다운 노래부르기운동을 통해 태어난 것이다. 해군군악대에서 근무했던 아동문학가 박홍근(1919~2006)이 순연(純然)한 마음으로 가사를 썼다. 엄마 곁에 누워 잠자리에 든 어린이마음의 고요와 평화가 그려진다. 여기에 작곡가 윤용하(19221965)의 멜로디가 붙여져 곡이 마무리됐다.

지적인 감각, 동심이 정감 있게 담긴 이 노래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5학년 동아출판, 6학년 교학사)에 실렸다. 1950년대 후반 선정된 방송동요 100안에도 들어가 애창되고 있다. 1993이선희 애창동요앨범에 실리는 등 대중가수들도 취입했을 만큼 이 노래는 유명하다. 합창곡은 물론 피아노와 해금연주곡도 맛깔스럽다. 기타, 아코디언 독주도 또 다른 맛을 준다.

1970년대 '누가누가 잘하나' 방송 장면 (KBS 제공 사진)
1970년대 '누가누가 잘하나' 방송 장면 (KBS 제공 사진)

 

창원에서 박홍근 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전

작사가 박홍근은 1919919일 함경북도 성진시에서 태어났다. 김책시로 지명이 바뀐 곳이다. 그는 두만강 북쪽지역 일대인 간도(間島)의 대성중학교와 일본 고등음악학교를 거쳐 니혼대학 예술과를 중퇴했다. 1945문화지에 동시 돌아온 깃발을 발표, 등단했다. 성진시 광명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46년 동시 고무총을 새길신문에 발표, 아동문학가로 이름이 알려졌다. 19506·25전쟁 때 남으로 와 인생후반의 삶을 꾸렸다. 1953년 해군본부 편수관, 1959KBS 문학프로그램담당, 1960년 월간 새 사회주간으로 활동했다. 1981~86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장을 지냈다. 대표작품으론 나뭇잎 배’, 동요 모래성등이 있다.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1999), 대한민국 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그는 2006328일 별세했다. 그는 ▲동시집 나뭇잎 배’, ‘날아간 빨간 풍선▲시집 입춘부▲동화집 시계들이 본 꿈▲장편동화 해란강이 흐르는 땅등을 남겼다.

창원시 이원수문학관은 그를 위한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2019831박홍근 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전’(‘두고 온 나뭇잎 배’)을 연 것이다. 고인의 대표시 18편이 시 그림으로 전시됐다. 그는 고희 때인 1989년 한국아동문학 발전을 위해 박홍근 아동문학상을 만들어 이듬해부터 시상했다. 그의 타계로 멈췄다가 2011년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가톨릭출판사가 시상을 이어가고 있다.

 

작곡가 윤용하, 2005년 문화훈장 추서

작곡가 윤용하도 유명한 분이다. 그는 1922년 황해도 은율에서 옹기장이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하다 만주 신징(新京)음악학교에서 기초과정을 밟고 같은 학교 음악원을 수료, 신징과 펑톈(奉天)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펑톈에선 조선합창단을 만들어 발표회도 여러 번 가졌다. 특히 광복 후 만주에서 돌아와 박태현, 이흥렬 등과 국민개창운동을 펼치고 음악가협회를 통한 음악운동도 했다. 6·25전쟁 땐 종군작곡가로 여러 군가와 사병의 꿈을 작곡했다. ‘민족의 노래’, ‘광복절 노래’(정인보 작사)도 만들었다. 전쟁피난지 부산에서 보리밭’, ‘나뭇잎 배’, ‘노래는 즐겁다등을 작곡했다. 서울 한양공고, 동북중·고 음악교사로 교단에 서다 교향곡 투쟁과 승리’, ‘농촌풍경’, ‘조국의 영광을 작곡 및 공연지휘를 했다. 1960년 서울시공관에서 자작동요 100곡 발표회도 가졌다.

윤용하는 1959년 사라호태풍 때 의연금품을 받는 신문사에 찾아가 입고 있던 겉저고리를 벗어놓고 나올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다. 어렵게 살았지만 작곡에 온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정부나 대중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43살 때인 1965년 서울시 중구 허름한 단칸방에서 간경화로 삶을 마쳤다. 자신의 집과 악기를 가져보지 못 한 채 정리되지 않은 오선지뭉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종이상자를 뜯어 여민 단칸방의 거적 위에서 눈을 감았다는 얘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72년 그의 벗들과 세광출판사 배려로 윤용하작곡집(‘보리밭’)이 나왔다. 정부는 2005년 그의 타계 40주기를 맞아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뜻있는 분들이 참여한 윤용하기념사업회(회장 오현명, 부회장 이부영)도 만들어졌다. 그가 교편을 잡았던 한양공고 자리이자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서울 광희문 일대(서울시 중구 청구로 134 일대)를 가상무대로 한 윤용하 아트센터사이트가 올해 대한민국 실내건축대전출품작으로 만들어져 눈길을 모았다.

 

필자 왕성상은?

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노래강의와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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