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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술 이야기] 위스키와 꼬냑 광(狂)에게 보낸 비어(B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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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술 이야기] 위스키와 꼬냑 광(狂)에게 보낸 비어(Beer)
  • 이강희
  • 승인 2023.07.11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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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술을 만든다
처칠, 덴마크를 구하고 기념 맥주를 선물받다

한 장의 흑백사진에는 무르익은 나이의 한 백인 남성이 등장한다. 차려입은 정장과 나비넥타이(보타이)에 꽉 다문 입과 심술궂은 표정, 지팡이를 짚은 오른손과 허리에 얻은 왼손이 다부져 보이는 사진이다. 다른 사진에서는 중절모를 쓰고 입가에는 시가가 물고서 한 손은 ‘V를 만든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위스키나 꼬냑이 담겼을 잔을 든 모습이 또 하나의 그를 설명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잉글랜드의 전쟁영웅으로 칭송받는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이하 처칠)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추락하던 잉글랜드를 이끌고 USA와 함께 나치의 히틀러를 결국 무너뜨린 인물이다. 그가 1948년에 시작해서 1953년에 완성했던 책 ‘The Second World War’는 그에게 정치인으로서는 생소한 노벨문학상을 안긴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리더 처칠 위스키,꼬냑 매니어

히틀러만큼이나 독특한 인물이었지만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와 달리 삼수하는 고난 끝에 왕립육군사관학교(Royal Military Academy Sandhurst, 일명 샌드허스트)를 나와 장교로 임관한다. 유난히 전쟁을 좋아해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쿠바의 제2차 독립전쟁에서는 휴가를 얻어 스페인군에서 종군을 했다. 인도 파탄족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작전에도 휴가를 얻어 개인자격으로 참전을 했다. 글을 쓰는 것에 재주가 있던 그는 군인과 특파원을 겸하면서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해 신문에 기고를 했고 명성도 얻게 된다. 2차 보어전쟁에서는 특파원으로 종군하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탈출에 성공하면서 전쟁영웅으로 떠올라 인지도를 높였다. 이 기세를 몰아 26세의 나이로 보수당 하원의원이 되어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이후 자유당과 보수당을 오가며 여러 장관직을 두루 거친다. 이때의 경험이 2차대전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총리가 된 그는 잉글랜드와 유럽을 지키기 위해 USA와 프랑스를 비롯한 나치에게 침공당한 여러 나라와 연합해 나치에 대항했다.

그 중에는 덴마크도 있었다.

전쟁은 우리가 알듯이 나치를 이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19457월 총선에서 패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난 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서 간 USA 미주리 주() 풀턴(Fulton)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대학에서 194635일 연설을 하게 된다. 연설내용 중에는 새롭게 등장한 스탈린과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와 주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연설에서 사용되었던 ()의 장막(帳幕)(Iron Curtain)’이라는 용어는 전후 20세기를 지배하던 국제질서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언론은 물론 여러 정치인에 의해서 자주 사용되었다.

덴마크는 도이치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킨 덕분에 점령당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달랐다. 덴마크는 1939년 나치와 불가침 조약을 맺은 중립국이었지만 노르웨이에 욕심을 내던 나치는 덴마크 북부에 있는 올보르 공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194049일 전격적으로 덴마크를 침공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나치에게 침공당한 지 4시간 만에 점령당한 덴마크는 나치가 패망한 194558일까지 나치의 보호령이 된다. 점령당한 이후 힘이 없던 덴마크는 나치에게 무이자로 대출을 해줘야 하는 등 물적인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덴마크인들에게 이어지는 나치의 폭격에도 잉글랜드를 이끈 처칠은 영웅이었다. USA의 참전을 이끌어내며 노르망디 상륙으로 전세를 뒤집은 처칠의 활약으로 194558일 나치의 항복과 함께 덴마크는 나치의 보호령에서 벗어난다.

19501011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처칠이 방문을 하게 된다. 이때 덴마크를 대표하는 비어 회사인 칼스버그가 그의 덴마크 방문을 환영하려고 처칠을 기념하는 비어를 생산하기로 한다. 덴마크에는 기념할만한 특별한 일이나 축하를 위해 새 술을 빚는 전통이 있었다. 칼스버그는 덴마크를 나치 점령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 처칠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칼스버그 - 처칠에게 기념맥주를 선사

그런데 처칠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위스키나 꼬냑 같은 증류주를 좋아했다. 그래서 칼스버그는 그를 위해 일반적인 비어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비어를 만들기로 한다. 알코올 도수 9%짜리 비어를 만들기로 한 칼스버그는 그가 유럽의 전장을 누비면서 손가락으로 승리를 표현했던 ‘V’를 따서 ‘V Beer(: V-øllet)’라고 불렀다. 처칠의 취향에 맞게 증류주인 꼬냑의 향을 포함한 과일 향이 나면서 쓴맛이 나도록 만들었다. 칼스버그는 덴마크 방문을 마치고 잉글랜드로 돌아간 처칠의 집으로 그를 기념해서 만든 ‘V비어를 보내기도 했다.

 

처칠이 선물받은 칼스버그스페셜 블루 (알코올 도수 7~8도)
처칠이 선물받은 칼스버그스페셜 블루 (알코올 도수 7~8도)

 

자신에게 배달된 뜻밖의 선물에 놀란 처칠은 노련한 정치인답게 칼스버그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V비어의 ‘V’ 덕분이었을까? 그는 이듬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번 보수당을 대표하여 총리를 맡게 되면서 잉글랜드를 이끌었다. 처칠은 전후 복구를 통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냉전 시대에 국제무대에서 잉글랜드를 이끈 리더였다.

처칠을 위해 만들어졌던 비어는 나중에는 부활절 비어로도 판매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칼스버그 스페셜 브루(Carlsberg Special Brew)’로 알려진 비어로 7.0~8.0% 사이의 다양한 알코올 도수로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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