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그림경제사] 시대를 풍미했던 자본력 푸거 가문 이야기
상태바
[그림경제사] 시대를 풍미했던 자본력 푸거 가문 이야기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23.07.04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율릭 푸거) : 황태자 결혼식 예복 납품한 봉제업자
아들(야콥 푸거) : 광산업과 후추 유통, 교황청 대출로 자본 축적

푸거(Fugger) 가문은 광산업과 중세의 버팀목이었던 종교를 발판 삼아 돈을 벌었지만 결론적으로 종교개혁의 방아쇠를 당기면서 중세를 매듭짓는 역할을 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호상(豪商)이었던 푸거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야콥 푸거는 15세기~16세기 당시에 광산업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막대한 부를 소유하며 한 시대의 부를 좌우했다. 광산에서 나오는 각종 보석과 금〮은으로 고가의 사치품과 돈을 만들어 거래했고, 거액의 부를 모으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는 물론 로마교황청의 교황에게도 융자해주면서 유럽정치에까지 깊이 개입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화려했던 명성이 몰락하지만 시대를 이끌었던 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푸거가문의 문장  https://www.heraldrysinstitute.com
푸거가문의 문장 https://www.heraldrysinstitute.com

 

중국 비단옷 수백 벌 팔아

봉재업을 물려받은 아버지 율릭 푸거(Ulrick Fugger, 이하 율릭)는 당시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성 로마제국의 황태자 막시밀리안과 부르고뉴 공작의 딸 마리와의 결혼식에서 입을 예복을 책임지게 된다. 당시 최고의 부자였던 부르고뉴와 신성로마제국의 결혼식이었다. 떠들썩한 사건이었던 만큼 홍보효과도 컸다. 재봉사들은 귀족들에게 결혼연회 옷을 납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를 알았던 율릭은 황제를 찾아가 황태자가 결혼식에서 입을 예복을 외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당시에 돈이 없던 황제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다.

 

유럽 각지에서 고급스런 옷감과 값비싼 보석을 들여와 만들어진 옷에 여러 장식을 활용했다. 당시 금보다 비쌌던 중국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신성로마제국의 귀족들에게 수백 벌의 의상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들 야콥 푸거(이하 야콥)는 옷에 금실로 수를 놓으면 훨씬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황금을 찾아서 유럽의 광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광산이 티롤(Tirol)광산이었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유럽 부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유럽의 티롤광산이 쓰임새가 다했다고 보고 있었다.

 

모두가 신대륙에서 금과 은을 가져오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 관심을 가질 때 야콥 푸거는 당시 천재라고 불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고대의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지은 책을 보고 만든 펌프에 관심을 가졌다. 수압과 기압의 차이를 이용해 물을 밑에서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기계는 네덜란드에서 간척사업에 사용되고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귀족에게 분수 같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들은 자신의 집에 분수를 설치하고 파티를 열어 주변에 자랑했다.

 

결혼 예복값 대신에 받은 티롤광산에서 금과 은 채굴

야콥은 달랐다. 분수의 원리를 이용해서 티롤광산 지하의 낮은 곳을 채우고 있던 지하수를 밖으로 뽑아내고 그 공간에 들어가 채굴을 해서 금을 캐내려는 생각을 했다. 같은 기계를 두고 누구는 돈을 쓸 계획을 세웠고 누구는 돈을 벌어들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티롤광산의 자유로운 이용이 필요했다. 황태자였던 막시밀리안은 황제가 되었다. 야콥은 아버지 율릭 대신 외상으로 제공했던 결혼식 예복값을 받으러 궁으로 갔고 예복값을 대신해서 티롤광산의 채굴권을 달라고 제안했다. 막시밀리안은 엉뚱하게 느끼면서도 기꺼이 야콥의 제안을 들어주었다. 티롤의 채굴권을 손에 쥔 야콥은 이탈리아 기술자들을 투입해 광산의 지하수를 퍼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채굴을 시작해 막대한 금과 은을 캐냈다. 쏟아져 나온것이다. 티롤광산에서만 10년간 70톤의 금과 7,000톤의 은을 생산했다고 한다. 푸거 가문은 봉재업으로 벌 수 없는 수준의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광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산을 10배 늘리게 된다.

 

광산업을 통해 확보한 금과 은이 많아지자 스위스은행을 통해 순도 높은 화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돈을 유럽 여러 나라에 빌려주고 이자나 여러 사업의 이권을 받았고 일부는 자신들이 거주하던 아우크스부르크 주변의 토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양을 키워 양털로 옷감을 생산했다.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낸 푸거 가문에 대한 소문은 바이에른은 물론 신성로마제국 일대를 넘어 유럽에 파다하게 퍼졌다. 야콥은 바이에른 지방의 예술가와 지식인도 후원했다.

 

교황청에 빌려준 대출금을 못받고 면벌부 팔아 보충

증가한 자산은 상품, 채권, 황금, 토지의 네 가지 형태로 나눴다. 어느 하나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나머지 자산의 가치가 오르면 전체 자산의 가치가 오르거나 유지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산업으로 유럽의 돈줄을 확보한 야콥은 잠시 접었던 봉재업도 다시 했고 더불어 대표적 환금형 향신료였던 후추 도매사업에도 뛰어든다. 유럽 내의 돈을 독점하다시피한 야콥은 대부업에도 뛰어든다. 신성로마제국은 물론 중세유럽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교황청과도 돈거래를 하였다.

 

교황 레오10세의 헤픈 씀씀이 덕분에 재정이 고갈된 교황청은 푸거 가문의 돈을 빌렸다. 교황청의 채권을 받고 돈을 빌려주긴 했지만 돈 받을 길이 점점 힘들어지자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직접 면벌부(면죄부)를 팔았다. 교황청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는 하지만 결국 종교개혁의 불씨를 피우는 계기가 되었고 신교와 구교가 나뉘면서 유럽에 전운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과도한 욕심은 언제든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다.

 

내부에서 생산되는 금과 은은 물론 외부에서 유입되는 금과 은이 많아지자 금과 은의 가격이 떨어지고 재화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겪어본 적이 없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 가격변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감당하지 못한 에스파냐정부의 국고는 텅텅 비는 일도 발생했다.

 

광산업으로 벌었던 막대한 자금을 대부업으로 빌려줬던 푸거 가문은 돈을 회수하지 못해 결국 몰락으로 이어진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비추며 이끌어갔던 푸거 가문의 자본력은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저자_이강희 (칼럼니스트)

maestoso449@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