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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무명용사 넋 달래는 국민애창가곡 ‘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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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무명용사 넋 달래는 국민애창가곡 ‘비목’
  • 왕성상 대기자
  • 승인 2023.06.07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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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백암산 순찰 돌던 전방소대장 한명희 작시(作詩), 장일남 작곡
강원도 화천, 충주, 순창에 노래비…해마다 ‘비목문화제’, 관광객 몰려

6월은 보훈의 달이다. 현충일(66), 6·10만세운동기념일(610), 6·25전쟁기념일(625)이 들어있다.

이맘때면 자주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예술가곡 비목(碑木)’이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명곡이다. 쓰라린 전쟁의 상흔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슬픈 사연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비목은 전국 3곳에 노래비가 섰을 만큼 유명한 가곡이다.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부근 비목공원, 충북 충주시 주덕읍사무소 화단, 전남 순창군 회목산에 비가 서있다.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함께 3대 국민애창가곡인 이 노래는 625전쟁관련 대표곡으로도 손색없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십자모양 나무 등걸에 걸린 녹슨 철모가 노랫말 영감을 주었다
십자모양 나무 등걸에 걸린 녹슨 철모가 노랫말 영감을 주었다

 

십자모양 나무 등걸, 녹슨 철모, 소총 발견

느린 템포로 이어지는 비목은 실화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노래배경지는 1963년 가을 어느 날 625전쟁 때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화천군 백암산 기슭이다. 비무장지대(DMZ) 소초(GP)장으로 근무했던 한명희 육군소위(ROTC 2, 1964~66년 복무)가 부하들과 순찰을 하고 있었다.

북한강상류가 휘감아 도는 DMZ 잡초 우거진 산모퉁이를 돌아 양지 바른 비탈길을 지날 때였다. 그는 문득 흙에 가려진 이끼 낀 돌무더기 하나를 만났다. 눈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한 소위는 깜짝 놀라 멈칫했다. 절로 쌓인 돌이 아니었다.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의 초라한 무덤임을 알았다. 적과 총을 겨누며 싸우다 숨진 한 군인이 잠든 그곳엔 전쟁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십자모양의 썩은 나무 등걸, 녹슨 철모, 소총 한 자루, 부근에 고즈넉이 피어있는 하얀 산목련….

전사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묻어줬는지는 모르지만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끼 돼 맺힌 채 돌 더미로 쌓여있었다. 젊은 소대장은 시를 지어 땅속에 누워있는 묘 주인의 넋을 달랬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몸 받친 고인에게 경례를 하고 고개 숙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한 소위는 군을 제대하고 동양방송(TBC) 음악부PD로 일할 때였다. 방송사 공채 3기로 입사, 주간 라디오프로그램 가곡의 언덕’, 일일프로그램 가곡의 오솔길등 가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그러던 중 그는 방송일로 자주 만나던 장일남 작곡가로부터 신작가곡 노랫말을 몇 곡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 그의 머리를 스쳐간 모습이 떠올랐다. 군복무시절 가슴 아리게 봤던 첩첩산골의 무명용사의 돌무덤이었다. 이는 노랫말이 됐다. ‘비목가사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1967년 장 작곡가의 곡이 붙여져 노래로 태어났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나무 등걸은 이름 없는 비목으로 표현됐다. 나무로 된 비()란 뜻이다. “백암산 골짜기의 이름 모를 나무비(목비, 木碑)가 절화(折花)의 아픔, 요절(夭折)의 미학으로 분장하고 오늘에 환생한 것이라고 한명희 씨는 설명하고 있다.

노래는 1969년 처음 발표됐다. 곡은 16마디로 A(ab), B(cb)의 구조로 된 두 도막형식이다. 4분의 4박자로 전체적인 조성은 라장조이지만 라장조와 나란한 나단조음계가 번갈아 쓰였다

 

방송전파 타고 널리 알려져 크게 히트

비목노래는 방송전파를 타고 알려지자 빅히트곡이 됐다.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노래가 실리고 1995년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댐에 비목공원까지 만들어졌다. 무용, 연극,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술집간판으로 비목이 붙을 만큼 인기였다. 게다가 1970년대 TV연속극 배경음악으로 쓰인 뒤 대중의 귀에 더 익숙해져 국민애창가곡으로 뿌리내렸다.

노래는 축제로도 이어졌다. 199666일 현충일 때부터 시작된 비목문화제가 그것이다. 서울서 150여㎞ 떨어진 평화의 댐부근 비목계곡엔 해마다 행사가 열리고 있다. 현충일 전후로 주먹밥 먹기, 돌탑 쌓기, 비목 깎기 대회, 병영체험행사 등이 이어진다. 1960년대 파월장병훈련소(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를 거쳐 간 장병들을 위한 옛 전우 만남의 장도 마련된다.

가을엔 화천 비목콩쿠르도 열린다. 시대의 산물이자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게 하는 비목의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비목노래를 좋아하는 문화동호인(‘비목마을 사람들’) 주최로 펼쳐지는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름 없는 비목들의 넋을 달리며 전쟁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한 시대의 정서를 함께한 625세대의 한판 굿이라 할까. 625전쟁은 이토록 슬픈 시와 노래로 승화돼 우리들 곁을 맴돌고 있다.

비목노랫말을 쓴 한명희 씨는 유명인사다. 193931일 충주시 주덕읍 창전리 377번지에서 태어나 주덕초등(15), 충주사범병설중(4), 충주고(14), 서울대 음대(19642월 졸업), 서울대대학원(1968년 음악석사), 성균관대대학원(1994년 동양철학과, 철학박사)을 나왔다. 음악평론가로 국립국악원장, 36대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음악분과 회장을 지냈다.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를 정년퇴직한 뒤 이미시문화서원(http://www.imisi.or.kr) 좌장을 맡고 있다.

 

작곡가 장일남, 해주태생으로 40여년 활동

장일남 작곡가는 19322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50년 평양음악학교 졸업 후 남으로 피난 와 1954~1962년 창덕여고, 서울사대부속고, 숙명여고 음악교사로 몸담았다. 1961년부터 수도여사대(현재 세종대), 한양대에 출강하면서 기다리는 마음등 가곡을 작곡했다. 국립오페라단 창립기념공연을 위해 1961년 작곡한 왕자호동에 이어 1966춘향전’, 1971원효대사등 오페라도 발표했다. 1973년 한양대 음대 전임강사로 들어가 1997년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1982년 서울아카데미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도 지냈다. 클래식음악방송프로그램 진행 등 40여년 가곡과 고전음악보급에 힘쓴 그는 2000년부터 앓아온 알츠하이머병으로 2006924일 별세,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삼성개발공원묘지에 잠들었다.

 

노래배경지에 백암산 케이블카운행

한편 비목노래 배경지 백암산 정상에 오르는 백암산 케이블카20221021일부터 운영되고 있다. 중동부 최전방 화천 민간인통제선을 북상해 오가는 국내 유일의 케이블카다. 양방향으로 46인승 2대가 가동 중이다. 해발고도는 1178m. 국내서 가장 높다. 케이블카 안 바닥 일부는 유리로 돼있다. 탑승시간(15) 동안 백암산 식생들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사향노루, 산양이 뛰노는 모습도 보인다. 세계 유일한 DMZ생태계 양의대 하천습지도 주변에 있다. 백암산꼭대기에서 북쪽 금강산댐까지는 16.69㎞다. 협곡사이로 엄청난 양의 물을 담은 금강산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산댐에 대응해 만든 평화의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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