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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죽는 순간 사회는 무너진다 :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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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죽는 순간 사회는 무너진다 :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흥망성쇠
  • 이강희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5.0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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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논리는 병합과 집중
을지로 노가리골목 쇠퇴 이유

[지구를 떠도는 부] 

기후와 관련된 위험을 알리는 기사가 종종 우리의 시선을 주목시킨다. 처음에는 한두 번이었지만 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대기의 질을 나쁘게 하면서 최근에 증가하는 뉴스이기도 하다.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인간이 느끼기 전에 이미 진행형이었다. 공기의 질과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효과는 지구의 기온이 상승시켰고 일부 식물과 동물의 멸종을 가져왔다. 이를 막기 위해 국제적인 사회단체도 나서지만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 당하는 피해가 없는데도 다른 동식물의 멸종을 막으려는 노력이 왜 중요할까? 우리는 이것부터 알아야 한다.

USA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사례는 다양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자주 언급된다. 가축의 피해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늑대를 보이는 대로 사냥했다. 결국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늑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늑대가 사라지자 풀이 먼저 사라지고 작은 나무도 사라지면서 숲은 황폐해졌다. 풀과 나무가 사라지자 강 주변의 토양도 물살에 유실되기 시작했다.

사라진 것은 늑대인데 숲은 왜 황폐해졌을까? 호랑이가 사라진 숲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는 말이 있다. 늑대가 사라지자 천적이 사라진 사슴은 개체가 늘어났다. 사슴은 숲의 풀과 작은 나무를 먹어댔다. 결국 사슴의 개체가 증가하면서 숲의 생태계에 교란이 생긴 것이다. 결국 USA 당국은 사슴의 천적인 늑대를 1995년 캐나다에서 들어와 공원에 풀어놓았다. 시간이 가면서 사슴의 개체 수는 줄었다. 숲은 풀과 작은 나무가 다시 자라며 점차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을지로 3가를 가면 골뱅이무침과 노가리를 안주로 시켜서 마시는 비어 가게들이 많았다. 을지로 3가 일대에는 작은 공구상과 공작소 같은 자영업자가 많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찍 가게 문이 열리지만 오후 4~5시가 지나면 즐비한 공구상가들은 문을 닫고 하루의 일과가 정리된다. 이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길거리에 간이좌판이 깔리는 것이다. 간단한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가 깔리고 퇴근과 함께 많은 사람이 시원한 비어 한 잔으로 목을 축이기 위해 혼자 또는 친구동료와 모여들었다. 우리나라 비어의 특성상 오랜 시간 두 곳의 비어가 시장을 좌우하다 보니 가게마다 메뉴의 차이는 별로 없었지만 그저 어디든 들어가 같이 온 벗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중요했다. 그런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맞이하는 업소가 늘어났고 오늘날 을지로 3가의 명성이 만들어졌다.

다양한 비어 가게가 즐비했던 골목의 특성을 인정해 서울시에서는 노가리 골목2015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20188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로 선정되는 가게까지 등장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 풍경
을지로 노가리골목 풍경

 

이렇게 성장하던 이곳에 변화가 생겼다. 한 업소가 장사가 잘되어 옆 상가를 인수해 2호점을 만들더니 그 수가 계속 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답게 하나의 가게가 영역을 확대하다 보니 주변의 가게가 하나씩 문을 닫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오랜 시간 성장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 을지로 3가의 노가리 골목의 다양성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한 업체의 브랜드는 암세포마냥 3호점, 4호점으로 확대되었고 그 수가 더 늘어나면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퍼지고 있다. 이곳의 다양성이 사라진 것을 상권의 침몰까지 이어질 거라고 확대 해석하지는 않겠다. 그래서도 안되고 말이다. 다만 감성에 기반한 장소는 여러 구성원이 공유했을 때 존재감이 있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가 장악한 곳에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뜻있는 사회단체와 사람들이 모여 이런 흐름을 막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자본의 섭리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현상은 도시화가 계속되면 될수록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효과보다는 효율만을 강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다. 기존의 시설을 활용하여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시도는 좋지만 여러 노력을 기울여 도시 재생에 성공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여건을 바꾸지 않으면 도시재생에 투입되는 예산은 구멍난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

술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기반한 상품이다. 그리고 장소는 이런 감성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숲속에 여러 구성원이 있듯이 하나의 장소에도 다양한 감성이 자리하여 여러 구성원이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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