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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왕성상의 가곡ㆍ동요ㆍ민요이야기 - '목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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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왕성상의 가곡ㆍ동요ㆍ민요이야기 - '목련화'
  • 왕성상 대기자
  • 승인 2023.04.19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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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희망, 꿈, 패기, 기상 심어주기 위한 국민애창가곡 ' 목련화 '

[왕성상 대기자] 

조영식 작시(作詩), 김동진 작곡경희대 개교 25주년기념 경희 칸타타삽입곡

테너 엄정행이 처음 불러 인기몰이, 1970년대 우리나라 가곡 열풍불게 한 명곡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길 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처럼 순결하게 그대처럼 강인하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내일을 바라보면서 하늘보고 웃음 짓고

함께 피고 함께 지니 인생의 귀감이로다

그대 맑고 향긋한 향기 온누리 적시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목련화(木蓮花)’는 경희대학교 설립자 조영식 박사가 작시(作詩)하고 경희대 음대학장이었던 김동진이 작곡한 가곡이다. 조 박사가 젊은 학생과 청년들에게 희망과 꿈, 패기와 기상을 심어주기 위해 출장길의 비행기 안에서 지은 시가 노랫말이 됐다. 목련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과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내용이다.

 

목련화는 경희대 상징 꽃

노래제목이 된 목련화는 경희대 상징 꽃이다. 그래서 목련화노래는 경희대 동문이나 학생, 교수들이 즐겨 부른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국민애창곡이 됐다. 특히 이 노래를 맨 처음 부른 테너 엄정행 성악가 특유의 힘찬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 인기다. 그의 간판곡이기도 하다. 경희대출신 음대 강사였던 그는 1974년 경희대 개교 25주년행사 때 이 노래를 불렀다. 개교기념으로 만든 경희 칸타타’ 2악장 대학송가에 들어간 곡을 열창한 것이다.

엄정행은 이 노래 바람에 잘 나가는 성악가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조영식 박사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모교교수가 되기도 했다. 엄 성악가는 목련화의 히트로 대중가수 못잖은 인기를 끌었다. 외국유학을 가지 않은 순수 국내파성악가로 이 노래를 불러 음악계에서 유명해졌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가창력과 특유의 머리스타일로 우리나라가곡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목련화가 실린 그의 음반이 20만장 넘게 팔려 화제였다.

 

‘60별칭 붙은 노래

이 노래엔 ‘60이란 별칭이 붙어있다. 작곡가 김동진이 새내기성악가 엄정행에게 60번이나 다시 고쳐 부르게 했기 때문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 학장이 엄 강사에게 많은 연습을 시켜 무대에 오르게 한 일화가 있다. 흠잡을 데 없도록 혹독하게 노래지도를 했다는 얘기다.

목련화는 우리나라가곡이 국내 음악계의 한 장르로 국민 속에 파고들 수 있게 길을 연 노래이기도 해 의미가 있다. 배경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부터 대중음악시대가 본격 열리면서 트로트곡이 인기였다. 1970년대 들어선 가수 나훈아-남진의 라이벌 구도로 가요가 안방TV를 파고들며 주류음악으로 자리를 넓혀갔다. 상대적으로 가곡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목련화는 샛별처럼 나타난 가곡이었다. 라디오를 틀면 들렸을 정도로 사랑받은 국민애창곡이 됐다. ‘가곡 열풍을 불게 한 명곡으로 떠오른 것이다.

노래주인공 엄정행은 1943212일 경남 양산군 양산면 중부리( 양산시 중부동)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래고를 졸업, 경희대 음대에 들어가 경희대대학원 성악음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서울 명동국립예술극장 독창회를 시작으로 50년 넘게 무대와 대학, 방송을 누볐다. 그는 목련화를 부르며 모교 교수로 34년간 후배들도 가르쳤다. 우리 가곡은 물론 이탈리아가곡, 오페라, 성가 등 여러 분야 음반을 냈다. 대표곡으론 목련화’, ‘기다리는 마음’, ‘선구자’, ‘떠나가는 배등이 있다. ‘예술가의 삶 22 : 목련화에 새긴 영혼’, ‘목련꽃 진자리 휘파람새는 잠도 안자고책도 썼다. 20082월 퇴직해선 서울과 양산을 오가며 음악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엄정행음악연구소를 세우고 콩쿠르도 열었다.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2022년까지 3년간 울산예술고 교장도 지냈다.

 

경남 양산에 엄정행뮤지엄개관

 20221227일 그의 이름을 붙인 박물관이 생겨 눈길을 끈다. 양산시 신기동 쌍벽루 아트홀 2(302)에 문을 연 엄정행뮤지엄이 그곳이다. 양산시가 양산출신으로 우리나라가곡 대중화에 힘쓴 그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엄정행이 평생 모아온 DVD, CD, 레코드, 음악도서, 포스터, 액자 등을 상설전시하고 정기음악회도 연다. 그는 2024년 가을 양산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은퇴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노랫말을 쓴 조영식은 19211122  산지로 유명한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금광을 경영하던 조만덕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은 목사였으나 교육자가 됐다.              1947년 월남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서울고 교사로 시작해 경희학원 초대이사장, 경희대 초대총장경희중・고와 경희여고 초대교장을 지냈다. 밝은사회운동 등  여러 사회 운동을 펼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박정희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계획할 때 도움을 줬다. 2012218일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작곡가 김동진은 19133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바이올린, 피아노, 작곡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 니혼고등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1939년 만주 신경교향악단에 들어가 제1바이올린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한 그는 625전쟁 때 남으로 와 서라벌예술대, 경희대 음대 교수로 몸담았다. ‘가고파’, ‘봄이 오면’, ‘수선화’, ‘산유화’, ‘못 잊어등을 작곡해 우리나라 가곡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200973196세로 별세했다

 
목련화는 나무에 피는 연꽃 같다는 뜻

노래소재가 된 목련화는 나무에 피는 연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대표 꽃나무로 우리 민족의 얼과 닮았다. ​대기오염에 잘 버티고 그늘진 곳에서도 쑥쑥 큰다.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자라는 낙엽활엽수로 제주도, 추자군도에 많다. 높이는 10m에 이른다. 꽃눈이 잔털에 덮여있는 게 특징이다. 마디마다 어긋나게 피는 잎사귀는 계란 꼴이다. 끝이 뾰족하며 5~15cm쯤 된다. 꽃은 3~4월 가지 끝에 한 송이씩 잎보다 먼저 핀다. 꽃에선 향내가 난다. 열매는 9~10월 맺히며 닭 볏모양이다. 꽃망울은 두통, 치통, 비염, 축농증 약재료로 쓰인다. 꽃말은 자연애’, ‘고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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