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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경제사] 정보로 부(富) 이룬 가문(家門)-로트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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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경제사] 정보로 부(富) 이룬 가문(家門)-로트쉴트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23.01.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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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금융시장의 방향을 주도하는 곳은 미국 뉴욕(New York)이다.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이하 NYSE)는 시가총액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2019년 3월 기준으로 2,298개 회사가 상장되어 있고 이들의 시가총액은 약 23조 2천억 달러다. 3,059개의 회사가 상장된 나스닥(NASDAQ)에 비하면 상장사는 적지만 나스닥의 시가총액이 약 11조 2천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시가총액은 세계 최대 규모다. 시장 인지도가 높아 USA의 기업뿐만 아니라 이름이 알려진 세계유수 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되어 있다. 기업들이 이곳으로 모인 이유는 단 하나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모이기 때문이다. 뉴욕거래소는 그 정보를 돈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금리의 상하, 석유생산량의 증감, 실업률의 증감, 그리고 국가 간 분쟁처럼 개인의 취업 문제부터 국가 간의 외교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련한 정보로부터 돈을 만들어 낸다.

빌헬름과 마이어 암셀 로트쉴트

이와 같이 정보를 돈으로 만들어 세계금융계의 큰손으로 자리하고 있는 가문이 있다. 이미 언론과 인쇄물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버린 Rothschild(도: 로트쉴트, 잉: 로스차일드, 이하 로트쉴트)가문(家門)이다. 말 그대로 붉은(Roth) 방패(Schild)라는 의미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오랜 시간 유럽에서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철부터 값진 물건까지 취급하던 골동품상이었다. 당시 한자동맹 지역이었던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전상을 겸하면서 금융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 모두가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천시를 받던 직업이었다. 사회적인 천시와 다르게 거래하는 유대인 상호간에는 철저하게 신뢰를 지켰다. 특히 자신들에게 이익이나 은혜를 준 사람에게는 결코 배신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당시 왕족과 귀족에게 신뢰를 얻게 된다. 그헐게 쌓은 신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마이어 암셀 로트쉴트

마이어 암셀 로트쉴트(Mayer Amschel Rothschild, 이하 마이어)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기술이 있어도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유대인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여러 일을 알아보다가 골동품을 취급하게 된 그는 희귀한 동전도 취급했다. 자연스럽게 동전 수집을 하던 헤센-카셀(Landgrafschaft Hessen-Kassel)의 왕세자와 거래를 시작했다. 이런 인연으로 희귀한 동전을 발견할 때마다 왕세자와 거래를 하며 친분을 유지하게 된다. 

친척의 도움을 받아 하노버에 있는 유대인 금융업체에서 1757년부터 10여 년간 수습직원으로 일을 배운다. 이곳에서 금융과 환전에 대한 지식을 쌓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오랜 신뢰관계를 유지하던 헤센-카셀의 왕세자인 빌헬름(훗날 빌헬름 9세)의 자금을 관리한다. 신성로마제국에 있는 수많은 나라 중에 하나였던 헤센-카셀도 당시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경제관념 없이 나라재정을 운영했다. 중세를 지배하던 가톨릭의 영향으로 인해 지옥에 가기 싫어 돈을 멀리하고 천시하다 보니 발생한 상황이었다. 마이어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왕세자 빌헬름 9세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다. 마이어의 경험이 필요했던 그는 왕실의 재산관리와 나라의 세금징수를 마이어에게 맡겨 궁정 재정을 담당하게 한다. 마이어는 이 과정에서 받게 되는 수수료를 모아 훗날 유럽의 거점에 은행을 설치할 때 ‘종자돈’으로 사용된다. 신성로마제국 내 수많은 나라들의 혼재와 자유를 위한 갈구가 계속되면서 유럽은 혼란스러웠고 갈등이 깊어지자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때 용병을 수출하던 헤센·카셀은 여러 전쟁과 전투에 참여해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USA의 독립전쟁에 잉글랜드에 고용되어 용병을 파견하기도 했다.

마이어 암셀 로트쉴트에게 헤센카셀공국의 공정재정을 맡기는 빌 헬름 -보리츠 다니엘 오펜하임- 19세기

전쟁은 갈등을 풀지 못했고 또 다른 갈등을 낳았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던 유럽의 부풀어 오른 갈등의 풍선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프랑스 혁명이었다. 유럽은 프랑스의 진행상황에 집중했다. 다투기는 했지만 같은 레벨에서 놀던 프랑스 국왕이 국민 앞에서 초라하게 제거되는 상황은 유럽 여러 나라의 국왕과 귀족, 영주들에게는 충격을 주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를 공격하면서 프랑스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때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프랑스의 혼란을 정리해버린 유럽의 신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 Napoléon Bonaparte, 이: Napoleone Bonaparte, 도: Napoleon Bonaparte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가 등장했다. 그는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유럽에 퍼트리겠다는 그럴듯한 기치를 내걸고 유럽을 프랑스 아래에 두기 위해 전장을 누볐다.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프로이센을 지지하던 빌헬름 9세는 나폴레옹의 침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과 왕실의 재산을 잉글랜드로 보내기로 하고 마이어를 통해 이를 실행했다. 마이어는 잉글랜드에 관리되는 빌헬름 9세의 재산을 활용해 잉글랜드의 웰링턴 장군과 더불어 나폴레옹과 싸우던 동맹국에게 군비를 지원하며 나폴레옹의 몰락에 배팅을 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으로 대륙과 잉글랜드 간에 무역을 못 하도록 막자 잉글랜드에서 오던 물자가 귀해졌는데 이를 무력화시키고자 밀무역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물자들을 몰래 교역하면서 많은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대륙봉쇄령 당시의 풍자화 -음식이 가득한 잉글랜드인의 식탁과 먹거리가 없는 프랑스인의 식탁

로트쉴트 가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은 일화가 하나있다. 정보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왜곡 현상까지 설명하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워털루전투가 최후의 일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로트쉴트 가(家)는 정보원을 투입해 전쟁의 결과를 미리 파악하고 잉글랜드에 소식을 알려 거래소에서 잉글랜드의 국채를 팔아치운다. 통신수단이 없던 시절 잉글랜드의 승전이 알려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국채가 매물로 쏟아지자 잉글랜드가 패배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첩보는 가격을 하락으로 이끌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잉글랜드 국채를 가지고 있던 다른 투자자들마저도 너나 할 것 없이 국채를 매도하며 시장은 패닉상태가 찾아왔다. 사방에서 내놓는 매물이 쏟아졌다. 매물은 쌓이는데 아무도 매수를 하지 않자 국채의 가격은 계속 떨어져 바닥을 하향 갱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매도물량 없이 매물이 쌓일 대로 쌓이자 로트쉴트 가에서 이번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매물을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채권을 내놓은 매도자들의 매도거래가 체결되자 종이가 되어가던 국채를 누가 매수(매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였다고 안심하고 있을 즈음 워털루에서 잉글랜드 군을 이끌던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알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폴레옹을 무찌르고 승리한 잉글랜드의 국채가격은 미친 듯이 고공행진을 했다. 이 과정에서 헐값에 잉글랜드 국채를 사들인 로트쉴트 가(家)가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은 당연했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나폴레옹의 반대진영에서 그의 몰락에 배팅을 했던 마이어가 나폴레옹의 패배로 막대한 이익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마이어는 이후에도 다섯 명의 아들을 유럽의 중심도시로 보내 정보망을 구축했다. 사람과 돈이 모인 곳에서 수집된 수많은 첩보들은 여러 곳을 통한 교차 확인과정을 거치면서 고급정보로 만들었고 이를 활용해 사업과 연결시켰다. 형제간의 깊은 유대가 이런 관계를 유지시켰다. 마이어가 사망한 뒤에도 다섯 아들은 프랑크푸르트·런던·파리·빈·나폴리에서 자리를 잡고 전 유럽에 펼쳐져 있던 우편과 전신망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유럽의 금융에 큰손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워털루전투-앙리 펠릭스 에마뉘엘 필리포토-1874년

마이어는 아들들에게 ‘협력(Concordia)’을 강조했다. 아버지의 정신교육이 기반이 된 2세들의 협력은 시너지를 냈다. 그들이 가진 정보는 기회를 낳았고 그 기회를 활용해 새로운 부(富)를 낳았다. 높은 이익에 잠재해 있는 위험(Risk)에 대해서는 공동투자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켰고 막대한 이익(Return)에 대해서는 공유를 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은 언제나 잃을 수도 있고 벌 수 있다. 내가 돈을 볼 줄 아는 식견과 정보가 있다면 말이다. 지금도 우리가 읽고 있는 수많은 정보와 기사 속에는 우리의 식견을 기다리는 내용이 잠들어있다. 여러분이 공부와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식견을 높여야하는 이유다.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저자_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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