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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富] 아라비아의 카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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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富] 아라비아의 카페트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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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아라비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여러분이 갖는 느낌은 무엇인가? 필자는 신비로움과 삭막함이 느껴진다.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은 광활할 모래들판이 떠오르는 단어 아라비아. 이런 아라비아를 상징하는 또 다른 상징이 있다. 바로 카펫(Carpet, 융단(絨緞)이라고도 불림)이다.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라고 불리는 1001야화(千一夜話)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대표적으로 알려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원전에는 없다가 나중에 포함)’에서는 주인공인 알라딘과 지니에 못지않게 ‘하늘을 나는 양탄자(이하 카펫)’의 맹활약(?)이 펼쳐진다.  위기에 빠지는 알라딘을 여러 차례 구출하는 카펫은 스토리에서 빠지면 아쉬운 감초역할을 톡톡히 할 뿐만 아니라 실제에서도 아라비아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수출품이었다.

 원래 유목민이었던 아라비아인들의 특성상 계속 이동하면서 생활을 하다 보니 가지고 다니면서 차가운 냉기를 막아줄 도구로 카펫을 사용하였다. 카펫은 경우에 따라 바닥에 놓기도 했지만 천막의 입구를 막거나 벽에 걸어 들판의 차가운 바람과 공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때로는 카펫을 천막의 문이나 말의 안장으로도 사용했다. 두껍고 질기다 보니 거친 사막의 모래바람은 물론 더운 낮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낮아지는 밤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카펫은 사막에서 생활하던 유목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다. 카펫의 용도에 따라 문양과 크기가 달랐지만 신분과 재산에 영향을 받아 문양의 다양성과 크기에도 달랐다.

 그렇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과시를 위한 장식용으로도 쓰였다. 쓰임새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문양을 넣어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터키의 경우 신부가 결혼하면서 혼수품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카펫이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십자군전쟁이었다. 초기에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가 오고가면서 상인들의 상거래가 활기를 띠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과 상관없이 이국땅의 생소한 재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인기 물품의 거래도 활발했다. 

 인기의 발단은 십자군이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전리품으로 가져가 거래를 했는데 이국의 기하하적인 문양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자 이탈리아의 상인들은 돈 냄새를 맡고 아라비아지역의 상인들을 통해 카펫을 대량으로 사들여 유럽에 공급했다. 남유럽보다는 북유럽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차가운 기후에 카펫의 용도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카펫을 대량으로 구입하자 아라비아 일대의 카펫 제조자들의 손놀림은 바빠졌다.

 특히 왕실이나 귀족들은 사치품으로 간주되어 카펫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가 희귀하거나 제조공법이 복잡할수록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고 자신의 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부유층은 카펫으로 자신의 거처를 치장하는데 많은 돈을 사용하였다. 헨리8세의 궁정화가였던 한스 홀바인 2세가 그린 ‘대사들’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팔을 걸친 선반에는 해시계, 나침반, 수학책 등이 놓여져 있다. 그 사이에 하켄크로이츠(卐)와 만(卍)이 그려져 있는 카펫이 놓여져 있다. 그 외에도 많은 그림에서 카펫은 바닥에 놓여있거나 권위를 나타내는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지배층이나 부유층에게 카펫의 사용은 일반화되었고 추운지방일수록 차가운 벽째문에 실내까지 추워지는 것을 막아주며 실생활에 필요한 필수용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카펫은 만들어지는 지역마다 들어가는 문양에 차이가 있었다. 새나 독수리, 물고기, 전갈, 별, 용 같은 것들은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들어있다 보니 이슬람교가 활성화되면서 무함마드는 우상숭배와 같은 문제를 미리 차단하고자 사람과 동물을 카펫문양에 넣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이런 문양들의 사용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아라비아산 카펫에서는 기하학적 문양을 많이 사용했다. 종교 영향을 받는 아라비아 지역의 특성답게 아치형태가 많다. 더불어 카펫은 만드는 민족마다 자신들의 특징을 부각시킬 수 있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이런 카펫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일본에서 ‘조선철(朝鮮綴)’이라고 불리는 융단형태의 카펫은 조선중기 때까지도 실생활에서 이용되었다. 다양한 무늬를 넣어 만들다보니 사치품으로 지정되어 몇 차례 금지령이 내려졌었다. 관련된 내용이 중종실록에 나올 정도다. 계속되는 규제와 온돌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필요성까지 떨어져 조선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데 일본에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조선과 일본을 오가던 통신사 사절단이나 왜구에 대한 대책을 세워준 일본의 다이묘들에게 조선의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주거 환경의 변화로 조선에서는 사용이 점점 줄었지만 중동에서는 가까운 유럽에서 구입을 원하는 소비층의 확대되면서 아라비아 카펫의 유명세를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터키를 비롯해 중동지역에서 카펫의 강국으로 유명한 이란과 함께 또 다른 한축인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연안의 항구도시이자 수도인 바쿠에 카펫박물관을 지어 카펫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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