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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富] 파간왕조의 젖줄 에야와디 강과 불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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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富] 파간왕조의 젖줄 에야와디 강과 불교문화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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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약 2,170㎞에 달하는 길이의 강이 흐르는 주변에는 비옥한 평원이 펼쳐진 지역이 있다. 지금의 버마(미얀마)에 있는 지형으로 이 강의 이름은 에야와디(버:Ayeyarwady, 잉:Irrawaddy<이라와디>)강이다.

강의 길이나 면적 유량이 많은 덕분된 삼각주의 크기도 상당하다. 유역이 약411,0000㎢이다보니 폭이 넓어 엄청난 유량을 자랑하는 에야와디 강은 내륙의 도로망이 부족한 버마에게 중요한 운송루트다. 수많은 선박이 오가며 버마의 물동량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수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강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이 남다르다. 버마에게 에야와디 강은 말 그대로 생명의 젖줄이다. 

 이 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족들이 각각의 공동체를 구성하여 부족국가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던 버마에는 쀼(Pyu)족이 남하해서 최초로 세운 도시국가 뜨가웅(Thagaung)이 세워진다. 이후에도 몬족을 비롯한 종족들이 공동체에서 발전된 도시국가를 세웠다. 이들은 주로 풍부한 수자원을 자랑하는 에야와디강의 주변에 펼쳐진 평원에 자리를 잡았다.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농경을 하는데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야와디 강의 풍부한 유량은 버마에 농경이 자리를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환경의 도움으로 쀼족은 풍요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비슷하게 부처의 후손이 이주해 세웠다는 내용이 전해지는 쀼족은 부처가 입적한 시점을 기원으로 삼는 불기(佛紀)를 따랐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쀼족은 불교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강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를 세웠고 불교가 전파되면서 미얀마에는 오늘날까지도 불교문화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쀼족의 여러 국가가 오랜 시간 흥성쇠망(興盛衰亡)하던 버마에 새로운 변화가 닥친다. 9세기 중반에 윈난(雲南, 운남)을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했었던 남조가 성장하면서 펼친 대외 정복활동은 지금의 타이와 버마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타이지역의 몬족과 미얀마지역의 쀼(Pyu)족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타이족과 버마족이 각각 공백지대로 이주를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이들의 이주로 동남아시아에는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버마족은 비옥한 평원이 펼쳐진 곳에 정착하여 세력을 키웠다. 쀼족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사라지면서 버마족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고 에야와디강 주변을 장악한 버마족은 쀼족이 누리던 비옥한 토지에서 확보한 식량과 그들이 닦아둔 기반을 기초로 인구의 증가와 함께 국력이 키울 수 있었고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강 하류와 주변으로 서서히 영향력을 확대하더니 마침내 주변을 통일하고 버마의 첫 번째 왕조인 버간(Pagan, 빠간)왕국을 세우게 된다. 역사적인 사료와 전설이 얽혀있어 시기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에야와디 강을 타고 하류까지 진출하며 세력을 확장했던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아노라타(Anawratha)왕은 남부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몬족의 타톤 왕조를 정복하며 불경을 비롯해 우리에게는 소승불교로 알려진 상좌부불교를 받아들인다. 버간 왕국은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생산량을 기반으로 증가하는 인구와 함께 꾸준히 주변의 도시들과 왕국들을 병합하며 성장세를 이어가며 상좌부불교를 받아들인다. 불경을 구하는 등 불교발전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불교신자가 아니었던 아노라타왕은 상좌부불교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불교신자가 되었고 지배층도 불교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아노라타왕은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는데 오늘날까지 세계 불교유적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버간 평원의 파고다(불탑)이 그것이다. 

 아노라타왕은 드넓은 버간 평원에 자신의 불심을 상징하는 탑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버간 왕조의 후대 왕들은 이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버간 왕국은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상좌부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상좌부불교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던 종교의 특성을 인정했다. 덕분에 힌두교나 고유의 민족종교, 대승불교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배층의 적극적인 지지로 지엽적인 수준을 벗어난 불교는 나라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버간 왕국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변에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12세기와 13세기에도 계속 성장하였다. 버간 왕국은 캄보디아 지역에서 패권을 잡고 제국으로 성장하던 크메르에 견줄 정도의 강력한 국가였다.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양대 세력으로 균형을 이루던 버간 왕국과 크메르제국은 서로를 견제하며 치세를 이었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버간 왕국이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지배층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 버간 왕국의 수도에 1만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을 지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결과물들은 수많은 문화재들을 만들어내며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버간 왕국이 지녔던 부의 크기와 문화적인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추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종교적인 문화 활동은 1287년 몽골의 침입으로 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몽골군의 파괴로 인한 손실과 여러 차례의 지진을 동반한 자연풍화, 잉글랜드의 식민지배, 최근에도 발생한 대규모 지진 등으로 당시에 세워졌던 불교 문화재는 2500여기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전성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보기에는 충분한 숫자다. 이런 영향덕분에 주변의 나라들에 힌두교가 번성한 것에 비해 미얀마는 비교적 잘 보존된 불교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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