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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유동성 공급에 대한 아시타비(我是他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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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유동성 공급에 대한 아시타비(我是他非)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8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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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지난 정부와의 비교를 통해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남 탓을 해오던 현 정부는 그동안 채무를 나무라며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지난 정부의 채무 원인으로 유동성공급이 과도했다고 지적하였다. 불필요한 분야에 예산 감축을 한다며 복지 예산을 줄이면서도 낭비성 예산을 추가하는 경우가 있어 빈축을 샀다. 최근 발생한 ‘김진태 사태(속칭 진태사태)’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문제가 되자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현 정부도 유동성을 확대공급하기로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유동성공급과정에서 보여준 현 정부의 행동이 지난정부의 행동과 너무 흡사해 국민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전형적인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아니다.)다.

 강원도가 채무불이행을 선언(2022년 9월 28일)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량공사채의 대규모 유찰과 각 대기업의 회사채가 대규모 유찰되는 김진태사태가 발생하면서 지난 10월 23일 채권시장의 동요를 잠재우는 게 시급했던 경제부총리는 관련당국의 수장들을 불러 모아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20조원), CP(기업어음)매입프로그램(16조원), 증권사 유동성지원(3조원),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사업자 보증지원(10조원)등 49조원+α 발표하며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부족하다는 주변의 인식 속에 10월 27일에는 한국은행이 담보증권확대(29조원)와 담보비율 인상연기(7.5조원), RP매입(6조원) 등 유동성 축소연기와 추가공급으로 총 42.5조원을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시장에 알렸지만 이마저도 불안했다. 

 11월이 되자마자 1일 금융위원장은 5대금융지주(KB, 신한, 우리, 하나, NH)회장들과 만나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유동성공급(73조원), 채권시장과 증권시장의 안정을 위한 각각 펀드(12조원), 지주사별 계열사 유동성지원(10조원)을 통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데 95조원이라는 새로운 범퍼를 마련하며 노력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닥친 상황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반응한 첫 사례라 박수를 보내도 될 만한 ‘즉각 조치’다. 시장이 이런 조치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더불어 금융위원회는 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사 회장단은 격주로 시장점검차원의 간담회를 갖기로 했고 실무진은 금융시장변화에 수시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채널을 구축했다는 내용을 언론에 알렸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 1일에 있었던 모임에서 앞서 언급된 5대 금융지주사가 시장에 제공하기로 한 범퍼보다는 정부가 시장상황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리라는 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심리로 움직이는 금융시장에서 ‘채무불이행’이라는 위험(일종의 부도)이 실제 시발되면서 커진 불안을 안정시키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정부가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계속 조치하겠다는 자세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돈을 풀었다. Fed를 필두로 ECB와 유럽각국이 돈을 풀었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유동성공급은 전 세계적인 흐름에 따르는 추세였다. 반면 지금은 물가상승을 누르기위해 당시의 유동성을 흡수하려고 Fed가 금리인상을 하고 있고 그 폭이 너무도 커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고통을 주고 있지만 시장의 유동성을 줄이고 물가인상을 막으려면 필요하기에 감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유동성을 줄이기보다는 유동성을 늘려가는 정부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정부정책에 상당한 위험요소다. 일본이나 중국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추세와 반대로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단 한명의 발언이 구성원 전체에게 이런 불안을 제공한 것이다.

 세 번에 걸친 대응조치로 언급된 금액만 단순 합으로 200조원에 이르고 있다. 실제 공급하지 않고 유예조치를 시켜주거나 중복되는 것은 차감하더라도 150조원정도는 될듯하다. 이런 유동성을 언급한 것으로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성의 표시정도는 나온듯하다. 하지만 시장이 받은 충격을 다독이기에는 아직도 타이트하다.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단이 모였던 같은 날 금융시장의 불안은 계속 진행형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2023년 3월 3일이 만기인 중견 건설사 한신공영에서 회사채가 연환산 수익률로 65.147%에 거래된 것이다. 시장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만기가 약 4개월 정도 남지 않은 채권이라 만약 문제가 되더라도 손해율은 낮다. 물량도 많지 않아 채권시장에 줄 영향은 거의 없지만 시장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보여주는 ‘스틸 컷(still cut)’이다. 

 시장의 안정을 위해 선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섣부른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이런 상황을 시발한 기여자에 대해 적절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는 게 사회의 공정과 정치인의 윤리의식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 일을 저지르고 조용히 숨어있으면서 사태가 수습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국민은 책임지는 자세를 원한다. 해당 정치인도 앞으로 더 큰 정치적인 도약을 위해서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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