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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가계 빚은 2000조, 기업유보금은 1000조 시대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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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가계 빚은 2000조, 기업유보금은 1000조 시대_1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18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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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갑자기 불어 닥친 경제의 매서운 바람은 겨울보다 혹독했다. 많은 국민은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겠다며 너나없이 금을 들고 줄을 섰다. 외환위기를 겪던 당시 우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여주었던 감동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재로서는 말이다. 국민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의지는 넘쳐흐를 정도로 충분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잔고가 문제다. 국민의 은행잔고와 호주머니는 당시처럼 돈이 없다. 정부의 노력과 국회의 동조덕분에 국민은 점점 헐벗고 있다. 조금만 덜 일해도 좋으련만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열심히 일하는 덕분에 기업은 살찌고 국민의 살림살이는 계속 힘들어진다. 정치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말하지만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적다.  

왜냐? 이미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국민이 헐벗는 구조로 짜여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금융제도가 바뀌었고 노동법이 바뀌었다. 또 FTA가 있었다. 이 모든 게 오늘날 다수의 국민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사태를 낳았다. ‘호랑이가 떠난 산에서 늑대가 왕 노릇을 한다.’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줄여야한다는 언론의 여론질 덕분에 정부의 개입이 줄어들었다. 시장에서는 재벌화 된 대기업의 화려한(?) 갑질 덕분에 공정거래가 오히려 훼손되었다. 지배와종속관계가 사슬처럼 연결되면서 기업은 조직폭력배처럼 서열화 되어가고 있다. 

 대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설정한 다음 중소기업의 마진을 좌우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거래를 한다. 특정 기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일감제공도 여전하다. 정부가 경제계에 있어서만큼은 종이호랑이내지는 투명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사이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정부와 국회가 아닌 기업이 금권(金權), 내지는 전권(錢權)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급여인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국가의 경제와 금융은 물론 노동시장의 가격까지 대기업이 결정짓다 보니 그 영향력은 꽤 널리 꽤 깊다. 금산분리라는 방어벽은 존재만 있을 뿐 대기업은 이미 우회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융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서민이라 불리는 다수국민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과장을 좀 보태서 외환위기가 다시 온다면 금이 아니라 동전을 들고 줄을 서기에도 버거운 게 국민의 현실이다. 

 오르는 물가를 잡는다는 이유로 금리를 올려대는 아름답지 못한 미국으로 인해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국·내외에서 우리나라를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기업들의 유동성이 1000조라는 것은 왜 말하지 않을까? 국민의 고통이 국가의 고통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금융이 제역할을 못하고 기울어지면서 국가는 기업에 편중된 정책을 폈다. 기업의 유보금에 대한 여력은 언급하지 않는다. 제로섬게임인 경제에서 정부를 하나의 상수(常數)로 두었을 때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날수록 다수국민의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유보금이 1000조로 증가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기업에 돈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혹자는 기업이 열심히 제품을 생산하고 팔아서 번 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번 돈은 어떻게 벌었는지 그 혹자에게 묻겠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공장이 가동될 때 그 공장에서 사용된 전기는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것인가?’를 말이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제조업은 대부분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업의 모든 제조공정은 반자동 내지는 자동화되다보니 전기사용량이 많다. 전기 없이 돌아가는 공장은 없다. 차등되어있는 전기요금의 구조를 알고 있다면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더 많은 요금이 나간다는 것을 알 거다.

 치솟는 물가에 국민의 고통을 줄이려고 전기요금을 고정한다고 가정하자. 한국전력의 30조 원 적자를 메우려고 시도하면서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의 공장에 부과되는 전기요금을 일반국민이 내는 전기세와 똑같이 부과를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여러 기업이 적자전환 될 수 있다. 결국 꽤 많은 수의 기업이 열심히 일하고 물건을 많이 팔아서 흑자를 낸다기보다 일반 국민의 은행잔고에서 모인 돈들이 십시일반 되어 기업의 계좌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국 일반 여러 형태를 띤 여러 명목의 돈이 국민가계의 은행잔고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세탁되어 새로운 이름을 달고 기업의 은행잔고로 자리를 이동하여 배치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수의 국민이 언제까지 소수의 기업과 자본가들을 위해 이익을 몰아주며 이유도 모른 채 희생만을 강요당해야 하나? 국가는 소수에게 이익을 몰아주라고 존치시키는 게 아니다.  

 금융은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은 소수에게 이익을 몰아주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국민 모두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헌법으로부터 보장받았다. 성직자의 일부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수의 성직자마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한다. 남의 교회보다 내 교회의 신도가 늘어나게 하려고 부흥회를 하고 다른 이의 사찰보다 내가 있는 사찰을 더 확장시키려고 법회를 연다. 종교인들도 이럴진대 일반국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야함에도 정부와 기업은 국민을 ‘오징어게임’에서처럼 장기판의 말 취급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정부는 너무나도 가혹하게 그 역할을 국민에게 요구하고 있다. 언제까지 ‘내부자들’에서처럼 그저 개·돼지일 뿐일까?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덕분에 국민은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기업유보금 1000조 원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국민에게 흘러야 들어와 할 돈이 고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헌법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지향하지 기업의 행복추구권을 지향하지 않는다. 기업은 경제주체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 원류를 찾아가보면 결국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존재하는 일자리를 위한 수단이다. 선 넘지 말고 그 역할에 충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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