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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富] 자바 섬의 화려한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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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富] 자바 섬의 화려한 문명
  •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럽니스트
  • 승인 2022.09.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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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여러 섬들이 모여 이어져온 나라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 섬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구밀집을 보이는 곳이다. 전 세계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약 1억4천5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체인구 약 2억7천만 명의 반 이상이 자바 섬에서 살고 있다. 무서운 것은 자바 섬에 많은 인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 수 있는 제반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발리에서 가까운 섬의 동부와 중부는 건기와 우기가 구분되는 기후와 화산성 토양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조건은 농사를 짓기에 유리하여 오래전부터 많은 인구가 모여들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자바 섬에는 동남아시아 역사에 있어 중요한 도시가 여럿 있다. ‘족자카르타(Yogyakarta)’, 수라바야(Surabaya), 세마랑(kota Semarang) 등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동남아시아의 해양역사다고 있다. 아시아로 진출한 네덜란드동인도회사(VOC)도 자바 섬에 무역항을 두었었다. 이처럼 자바섬은 해양역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덕분에 역사적으로 자바 섬에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여러 왕조의 흥망이 거듭됐다.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당시 빈번한 교역으로 자바에 세워진 나라와 도시에는 풍요로움이 쌓여 형성된 부(富)의 크기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나라나 세력이든 그들의 힘과 부의 크기를 잘 방증하는 것은 당시에 만들어졌던 유적이다. 자바섬에는 버마의 바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함께 세계 3대 불교건축물로 손꼽히는 ‘보로부두르(Borobudur)’와 힌두사원인 ‘프람바난(Prambanan) 사원’이 세워져있다. 또 다른 불교사원인 찬디 세우(Candi Sewu)도 세워져 있다. 사원 건립처럼 대규모의 토목공사에는 많은 인원과 자원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떠나 강력한 통치체제와 재원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보도부두르 사원은 비문을 통해 사일렌드라(Sailendra) 왕조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왕조의 번성과 함께 화려하게 꽃피웠을 당시의 대승불교문화와 해양문명에 대한 기록이 적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 사일렌드라 왕조의 마하라자 라카이 파낭카란(Maharaja Rakai Panangkaran, 재위 746~780, 이하 파낭카란)왕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도 강압적인 포교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했다. 그것이 불교사원들이 곳곳에 세워진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사원이 함께 세워진 이유다. 


 대승불교를 국교로 정해 종교를 통한 통합도 중요했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화합도 중요하게 봤던 왕의 통찰과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파낭카란왕은 자바 섬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부족 간의 혼인을 장려하여 통합된 사회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였다. 바다건너 캄보디아에는 당시에 크메르(Khmer)가 도약하고 있었다. 샤일렌드라는 강력한 해군력으로 당시 크메르와의 전쟁에서 이겨 캄푸자(Kampuja)지역을 확보하고 베트남지역의 참파(Champa)까지 영향력을 확대한다. 동시에 불교를 포교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이런 노력이 모여 대승불교로 개종하는 백성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일렌드라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불교왕조로 알려지는데 기여했다. 샤일렌드라는 주변의 나라들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수마트라섬의 대표적인 왕조이자 같은 불교국가였던 스리비자야(Srivijaya)왕국은 물론 주변나라와의 결혼동맹을 맺는 등 여러 형태의 교류를 통한 평화체제를 구축하였다. 혼란기를 겪던 중국과 교류는 물론 스리비자야와 안정적인 관계덕분에 수마트라를 통해 남인도지역의 강자였던 촐라왕국 등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사일렌드라 왕조는 성장하였다. 사일렌드라 왕조는 자연이 가져다준 풍요로움과 노력으로 만든 평화와 안정을 이룬 나라를 만들었음에도 정확하게 밝혀진 이유 없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여러 나라와 맺은 혼인동맹의 영향으로 사일렌드라 왕조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동남아 여러 왕조에 미치게 된다. 


 1895년부터 잉글랜드의 올덴버그(Oldenburg)가 연구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유네스코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오랜 시간 복원을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여러 차례 발생한 지진과 화산 폭발로 발생하는 화산재는 복원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사일렌드라 왕조가 자연재해로 인해 자취가 감추어졌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학자들이 꽤 많다. 


 족자카르타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고고학자와 유적전문가들은 사일렌드라의 다양한 유적을 복원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그들이 역사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지진과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가 줄어 학자와 전문가들의 노력이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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