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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금산분리 완화, 소비자에게 득인가 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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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금산분리 완화, 소비자에게 득인가 실인가?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22.09.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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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란 금융(金融)과 산업(産業)을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하는 법이다. 기업이 은행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거나, 금융회사가 기업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금융과 산업이 결합될 경우에는 기업이 부실해지면 계열금융사가 부실 계열기업에 계속 자금을 지원해 동반 부실화의 위험이 있고, 주주와 소비자 간 이해 상충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정보의 독점으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 그래서 금산분리 원칙이 40여 년간 지켜져 왔다.

최근 이 원칙이 깨졌다. 산업자본이 K뱅크와 카카오 뱅크를 설립한 것이다. 2019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주식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시행되었다. ICT에 금산분리 원칙을 깨트린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오프라인 점포를 마련하지 않은 채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영업한다. 점포 운영비, 인건비 등을 최소화하는 대신 기존 일반은행보다 예금 금리를 높이거나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다. 그 결과 인터넷전문은행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카카오뱅크는 시가 총액이 40조원을 넘은 적도 있었다.

반면, 기존 은행들은 상당 부분 시장을 빼앗기고, 상위권을 인터넷은행에 내줄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은행을 위시한 금융사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며 금융산업도 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넓혀달라는 것이다. 명분은 전 산업이 디지털로 전환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규제혁신으로 신산업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시대 만들어진 금산분리 규제 등으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 현상에 대응하고 산업 간 융합을 저해한다는 명분이다. 금융에서도 BTS같은 세계적인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은행은 부수업무를 음식배달, 통신, 가상자산 유통 등으로의 확대를 허용해 달라고 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1사 1라이선스 규제를 풀고 상조회사도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고금리상품 계약재매입제도도 도입하고 리베이트 제공 금지규제도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산하 8개협회(은행, 생보, 손보, 여전, 저은, 금투, 핀테크, 온투)로부터 234개 건의사항을 접수해 금융규제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혁신과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음식배달·통신·가상자산·유통 등 부수업무 영위, 가상자산 포함 업종 제한 없이 자기자본 1% 이내 투자(은행연), 캐피털사·통신판매업 등 부수업무 제한 완화, 비금융회사 출자규제 완화 및 의결권 제한 개선(여신협), 1사 1라이선스 규제 폐지(생·손보협), 타 회사 지분소유 규제 완화(손보협), 자회사 규제 완화(생보협) 등 부수업무 제한 및 투자 한도 완화가 주를 이룬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상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소위 ‘혁신적’ 금융 서비스의 시범영업 및 임시 규제 특례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중 은행은 신한은행의 배달앱 ‘땡겨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 등이 이와 같은 사례이며, 이번 규제혁신 과제는 금융회사가 영구적으로 해당 부수업무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금융관련 소비자단체들은 일제히 “과연 규제 특례로 만들어진 시중은행의 부수업무가 무슨 금융 혁신인가? 음식 배달과 휴대폰 판매 허용이 금융산업의 미래인가? 오로지 금융회사가 고객 돈으로 온갖 장사를 할 수 있는 난장을 깔아준 것에 다름없다”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금융위가 발표한 금융규제혁신 과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금산분리·전업주의 규제를 허물어 금융기관이 국민의 자산과 개인정보를 사유화하여 각종 수익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일부 과제들은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각종 금융규제·감독을 완화하여 취약한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마치 기존 모든 금융 규제가 ‘악’인 것처럼 규정하고 대폭적인 규제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 정책은 시장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시장경제의 속성상 정부의 적정한 개입과 규제 없다면 기업의 독점화가 가속되고 시장에서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양적 긴축의 영향으로 금융안정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거시건전성 확보를 위한 사전적 노력을 통해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세계 금융 규제 흐름에 역주행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또한, 금융회사가 가상자산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문제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에서 ICO를 규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우 아직 가상자산에 대한 명확한 규제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자산업에 대한 ICO를 허용하고, 은행을 포함한 금융사들이 코인투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면 금융불신이 가중되고 사회적으로 큰 피해발생이 우려된다. 이처럼 일반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은행이 자신들의 신용도를 바탕에 두고 그 어떠한 품목보다도 위험성이 높은 가상화폐 관련 투자상품을 무책임하게 판매할 경우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금융권을 강타했던 저축은행 사태, DLF, 라임자산운용 등 대규모 사모펀드 사태, 모두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발생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설익은 규제완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제2의 저축은행 사태, 제2의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높고 이는 국민 모두, 전 금융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될 수 있다. 

금융정책의 변화는 모든 금융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준다. 금산분리 완화는 기업의 독점화를 가속화시키고 시장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소홀하게 되고 가장 우려스러운 문제점인 금융사의 건전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규제 완화 정책은 소비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공급자들이 불편해하는 규제를 푸는 기회로 삼아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이 “소비자(국민)가 바라는 바인가? 금융사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는가? 정부가 제시한 과제가 금융사를 위한 것인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기고_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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