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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 말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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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 말라카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0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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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아시아는 그 크기의 거대함으로 인해 큰 산과 강을 경계로 구분하여 부른다. 동북아시아(이하 동북아), 동남아시아(이하 동남아), 서남아시아(이하 서남아), 중앙아시아가 일반적이다. 

그 중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에서는 육상의 교류도 꾸준히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역이 증가하자 한 번에 많은 양의 재화를 싣고 움직일 수 있는 배를 이용한 해상무역의 비중이 훨씬 커진다. 

초기에는 육지에서 가까운 연안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증가하는 교역량은 배의 크기에도 영향을 주었다. 해상무역에 나선 이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더 많은 재화를 싣고 움직일 수 있는 더 큰 배를 사용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흘수(吃水, 배 밑 부분이 물에 잠기는 깊이)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배의 크기가 커지면서 좌초를 피하기 위해 연안보다는 원양으로 나아가는 항해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항해술이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대양으로 나가다보니 해류는 더 빨랐다. 그만큼 바람이나 해류를 타고 움직일 수 있는 거리도 더 길어졌다. 이를 해상무역에 활용되는 바람이라고 해서 무역풍(貿易風, Trade Wind)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상무역의 규모도 점점 커진다.  

많은 나라들이 해상무역에 의지하면서 각국의 특산품을 가지고 모여 교역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지역이 있다. 바로 말라카다.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의 좁은 바닷길인 말라카해협(海峽)은 지금도 연간 5만 여척 이상의 배가 지나다닐 정도로 활발한, 전 세계 3대 해상운송로 중 하나다. 

말라카를 세운 사람은 파라메스와라는 스리위자야(Sriwijaya)왕국의 왕자라고 알려져 있다. 자바 섬의 마자파힛(Majapahit) 제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침공해오자 이를 피해 따르는 무리와 함께 지리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 정착한 곳이 말라카였다.  

시기적으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1396년에 파라메스와라는 자신의 나라를 세운다. 말라카강의 하구인 말라카는 바다와 맞닿아있어 내륙의 물자를 바다로 운반하거나 바다의 물자를 내륙으로 옮기기에 유리한 위치였다.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주변의 동남아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인도와 중국, 멀리 아라비아의 상선까지 드나드는 중요한 거점으로 성장한다. 
 
수에즈와 파나마는 근·현대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역사가 짧지만 말라카는 자연이 만들어준 해상운송로여서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하며 아시아 해상 교역의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신라 석가탑에서 발견된 유리공예품과 유향 같은 유적도 말라카를 통과했던 무역선을 통해 한반도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말라카에는 거래되는 재화를 안전하게 보관할 지하창고가 지어졌고 배를 만들거나 수리하기 위한 조선소가 지어졌다. 또 말라카를 방문하는 상인들의 편의를 위해 이들이 머물 숙소와 식당도 들어선다. 상업 활동을 위한 인프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말라카는 아시아 상거래의 최고의 장소로 알려지게 된다. 찾아오는 상선과 상인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안전을 위해 해군력도 증강하였다. 상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줄이고 조세에 대한 공정성을 위해 법률을 정비해 상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했다. 

이런 노력들은 말라카가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말라카왕국은 포르투갈의 군인인 아폰소 드 알부케르케(Afonso de Albuquerque)에 의해 멸망하는 1511년까지 약 110여 년간의 번영과 풍요로움의 시기를 보낸다. 말라카왕국은 아시아의 끝인 동북아와 동남아, 서남아가 교류하는데 있어 중요한 교두보였던 셈이다. 

아라비아는 지리적으로 동서양의 중간지대에 있다 보니 다양한 문명권의 재화가 모였다. 아라비아의 상선은 물론 거대문명권인 인도와 중국 사이에 비슷한 거리에 있어 해상무역의 중심으로 성장하는데 지리적으로 유리했다. 동북아의 도자기, 비단, 약재 같은 재화와 동남아의 정향, 육두구, 후추 같은 향신료가 말라카해협을 통해 아라비아와 유럽으로 전해지기도 했지만 유럽과 아라비아의 재화도 같은 해상교역로를 통해 동남아와 동북아로 전해졌다.

거리적인 이점 외에도 무역풍이 많은 역할을 했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쪽에서 부는 무역풍의 영향을 받았고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북동지역에서 부는 무역풍의 영향을 받았다. 잘만 이용하면 배가 이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여러 지역의 다양한 재화는 말라카왕국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과거의 그 영향 때문일까? 말라카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인 쿠알라룸푸르가 있고 남쪽으로는 아시아 금융의 허브로 불리는 싱가포르가 자리하고 있다. 말라카가 쌓았던 부(富)가 오늘날까지 말레이시아의 번영과 풍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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