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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아시아의 진주 실론과 시나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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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아시아의 진주 실론과 시나몬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14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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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실론(Ceylon)은 지금의 스리랑카(Sri Lanka)지역을 의미한다. 지금은 독립된 국가지만 잉글랜드에 점령당했을 때는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실론은 홍콩이 점령당하기전까지 유일한 아시아의 진주였다. 그만큼 섬의 값어치가 컸다는 것을 말한다. 실론이 귀하게 대우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럽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던 향신료 때문이다. 

스리랑카 지천에 널린 것이 향신료였지만 유럽에서는 귀하디귀한 게 바로 향신료였다. 특히 스리랑카에서 가장 인정받는 향신료 중에는 시나몬이 있다. 인류가 사용한 오래된 향신료 중 하나다. 

파라오를 감싸 미라로 만들 때 천을 시나몬에 적셨다고 전해진다. 바이블에서도 시나몬을 사용한 용도를 엿볼 수 있다. 구약 중에 하나인 잠언에는 침실에 시나몬을 뿌려 남성을 유혹했던 여성의 기록이 남아있다. 또 자신에게 짜증을 내는 부인의 복부를 가격해 죽인 네로가 부인 장례식에 로마시내에 있던 시나몬을 태워 도시 모든 곳에서 시나몬 향을 맡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듯 시나몬은 아무나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아라비아 무역상을 통해서 소량만 구할 수 있었던 시나몬은 금보다도 비쌌다. 공급량이 불규칙적이어서 가격 못지않게 시나몬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시나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단순한 부(富)를 넘어 권력을 보여주는 척도였다. 

왕과 왕족, 귀족 같은 특권층들은 자신의 부와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시나몬을 구하는 대로 쌓아놓고 과시하기도 했다. 사치품 중에서도 최고의 사치품이다 보니 손님을 대접할 때 시나몬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 어느 지역의 시나몬을 사용하느냐가 접대의 위상을 결정할 정도였다. 희소성이 클수록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했고 값어치가 커지면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욕구도 커졌다. 
 
40여 종이 넘는 시나몬 중에서 가장 고급으로 분류되는 것이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얇은 시나몬이었다. 계수나무의 껍질로 한자로 계피(桂皮)라고도 불리는 시나몬을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생산하지만 실론에서 만들어진 시나몬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명나라가 들어서기 이전 향신료의 최대 소비국은 중국이었다. 특히 송나라 때에는 나침반을 활용하면서 항해술도 발전했지만 조선술이 발전해 원거리 항해가 가능해져서 바다를 통한 시나몬의 대량 운송이 가능했다.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여러 상단들이 시나몬을 비롯한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아시아를 찾는다. 이때부터 아라비아상인들이 주로 쥐고 있었던 시나몬의 교역권을 유럽이 장악하고 막대한 부(富)를 쌓는다. 

선단을 통해 대량의 시나몬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가격이 조금씩 낮아졌고 일반서민도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부를 가져다주는 시나몬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배를 타고 아시아로 몰려들었고 유럽으로 건너간 시나몬은 각종 요리와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과거 시나몬이 사용되었던 요리의 흔적을 모두 찾을 수는 없지만 시나몬이 이용되는 각종 빵과 디저트에서 우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겨울철 건강을 위해 마시는 뱅쇼(vin chaud)는 와인에 각종과일과 시나몬을 넣고 끓인 음료다. 몸을 따뜻하게 해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강장제로 알려져 있다. 또 커피가 전해지면서 시나몬가루를 뿌려서 마시는 카푸치노까지 시나몬은 여전히 세계인의 식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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