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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임금삭감용’ 임금피크제는 무효..적법과 위법 가른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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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임금삭감용’ 임금피크제는 무효..적법과 위법 가른 기준은?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2.07.08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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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 여부가 적법, 위법 갈랐지만
법조계 “합리적 이유 사안별 따져야 할 것”
대법원, 임금피크제 4가지 기준 제시
임금피크제 폐지 목소리도 커질 전망

지난 5월 한국전자기술원 소속 재직자가 해당 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는 2011년부터 2014년 9월 명예퇴직 때까지 임금피크제에 따라 삭감된 임금을 받았는데 임금 삭감을 전후로 근로 시간과 업무 강도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은 고용상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고령자고용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고령자고용법 관련 규정은 강행규정으로써 임금피크제에 우선한다고 본 것이죠.     

나아가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의 정당성을 따지는 기준 4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여부 △감액된 재원이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지 여부 등입니다. 여기서 대상조치란 상대편에게 끼친 손해에 대한 보상으로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다른 것으로 치렀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합법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자 경영계는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우리나라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절반 이상은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있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이 모두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들 기업에서는 매년 임금협상 시 임금피크제 폐지 논란이 있어왔고 이번 판결이 임금피크제 논란에 불을 지폈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5월 대법원의 판단과는 다른 결정도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는 지난달 16일 KT 전·현직 직원 1300명이 KT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를 이유로 깎인 임금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위법이라고 판단해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중앙지법은 임금피크제가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다른 판결이 난 이유는 무얼일까요. 임금피크제 위적법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년 연장’ 여부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판결문에서 임금피크제 실시에 따른 가장 중요한 보상은 정년 연장이기 때문에 정년을 연장한다면 업무량, 업무 강도에 대한 명시적 조치가 없었다 하더라도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로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KT 노동자 측은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제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년을 연장하는 것과 임금을 깎는 것을 일종의 ‘교환관계’로 봤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고용 안정과 신규채용 vs 기업의 임금 삭감용

정년 연장이 임금피크제의 적법성 여부를 가르는 핵심적인 변수지만 관련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22일 열린 ‘임금피크제 대법원 판결에 따른 향후 소송 전망’ 세미나에서 법무법인 바른 소속 이응교 변호사는 “임금피크제의 적법 유효성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개별적인 구체적인 사안마다 대법원이 제시한 해당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 사안”이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법원이 말한 ‘합리적인 이유’를 사안별로 따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구별이 모호하거니와 또 어디까지를 대상 조치를 볼 것인가, 노동자의 불이익의 정도를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먼저 임금피크제란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연령에 이른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입니다. 임금의 상한선을 두고 임금이 최고치를 찍은 이후 일정한 정도로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는 것으로 크게 △정년유지형(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정년 도래 3~5년 전부터 임금 감액) △정년연장형(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정년을 연장을 전제로 임금을 조정) △고용연장형(정년은 그대로 두고 퇴직 후 재계약을 통해 고용 연장) 등 세 유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노동자의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한 목적이 큽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평균 정년연령은 50대 초반이며 퇴직 후 3분의 2 이상은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재취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던 일은 그만뒀지만 가계를 위한 노동활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임금피크제는 정년층의 소득을 보호하기 위한 주요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또한 임금피크제는 청년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으로도 제시됐습니다. 2015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미도입 사업장보다 청년 고용이 늘었으며 퇴직자 수도 줄어 장년층의 고용 안정이 도모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고용 안정과 신규채용”이라는 목적으로 도입된 임금피크제의 고용효과는 제도 초반에만 잠깐 반짝했을뿐 기업 절반 가량은 임금을 삭감하는 데에만 관심을 둔다는 노동계의 지적이 그것입니다. 

노조와 근로자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연구도 있는데요, 2021년 김승태 외 3명이 한국경제연구에 발표한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고용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청년을 포함한 전체인구의 고용량이 증대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노조 근로자 측의 주장이 더 현실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내포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합리적인 이유’를 요구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지연 기자 yeon7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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