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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아라비아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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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아라비아 향수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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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약 3000년경 전부터 아라비아 지역의 향수는 주변 일대는 물론 동서양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건조하면서도 더운 날씨로 인해 자주 씻기가 어렵다 보니 체취를 지우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환경은 체취를 감추기 위해 유향은 물론이고 사향이나 장미, 허브를 이용하여 향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슬람이 아라비아 지역의 주된 종교로 자리를 잡으면서 향수는 더욱 각광받는다. 복장의 제한으로 개인의 개성을 뽐내기가 어렵다 보니 향수는 단순히 체취를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개성을 드러내는 몇 안 되는 도구가 되었다. 수요가 꾸준하다 보니 이 지역의 향수는 다양해졌고 일찍부터 발달할 수 있었다. 
 
향수 제조를 위해 개발된 여러 방법이 사용되다가 7세기경 아라비아 지역을 지배하던 아바스 왕조 때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지금의 이란 지역인 페르시아에서 향수는 단순한 제품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 올라선다. 지역을 다스리던 칼리프는 페르시아에서 가까운 인도와 동인도의 주변 섬, 중국과 무역을 통해 향수를 만들 때 사용할 다양한 원료를 들여와 조합해 향수를 만들었다. 같은 원료를 사용해도 비율을 조절하면 향이 바뀌었다. 

당시에 국제도시로 이름이 알려졌던 바그다드는 향수 교역의 중심지로도 이름을 떨쳤다. 아라비아의 향수를 구하기 위해 상인들이 바그다드로 모여들었는데 상인들 중에는 유럽과 아프리카는 물론 향수의 원료를 팔았던 인도, 중국의 상인들도 있었다. 

향수는 주변지역에서 들여온 단순한 원료를 모아 아라비아인들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로 승화한 창작물이었다.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은 여러 향을 맡아보며 더 매력적인 아라비아의 창작물을 가지려고 경쟁했다. 물량을 확보한 상인들은 새로운 이윤을 내기 위해 각지로 퍼져나가 향수를 알렸다.   

이베리아(에스파냐)와 북아프리카, 아라비아지역까지 드넓은 지역이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이어져 있었던 당시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진 향수는 북아프리카 지역은 물론이고 이베리아를 통해 프랑스와 잉글랜드까지 전해진다.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들이 만들어낸 향수는 무역로를 타고 각지로 퍼져나갔다. 또 조향사들의 활동 지역도 넓어지면서 향수를 만드는 방법이 보급되기도 한다. 씻기를 싫어하던 프랑스의 왕족, 귀족들에게 향수는 자신의 체취를 숨길 수 있는 신의 축복이었다. 잉글랜드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도 아라비아 향수가 언급될 정도로 유럽에서는 ‘아라비아 향수’는 하나의 브랜드이자 고유명사였다.  

더 좋은 향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화학적인 방법이 적용된다. 학자로 알려진 아비세나(Avicenna)는 향수 제조에 화학 법칙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냉각코일을 발명하면서 뜨거운 열로 증기가 된 아로마 향을 냉각시켜 꽃의 휘발성 향을 보존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는 향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대부분의 원료를 직접 생산했으므로 13세기 무렵에 더 이상 원료를 따로 수입하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 원료를 재배하다 보니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이상적인 배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다양한 향들은 주변과 동남아는 물론 극동 지역까지 전해졌다.

연금술이 발달하면서 8~9세기경에 아라비아 지역의 연금술이 특히 활발했다. 8세기 이후부터 아라비아의 서적에서 ‘알 코올(Al Kohl)’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이슬람의 교리 때문에 음주를 해서는 안 됨에도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코올을 활용해 원료의 향을 침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십자군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고향에 돌아오면서 가져왔던 아라비아의 향수들은 유럽 문화권에도 영향을 미친다. 증류법까지 전해지면서 페르시아에서 생산되는 향수 원료가 유럽에 수출되었다. 당시 유럽은 아라비아 지역과의 교역에서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로 향수에 사용되는 원료를 수입하여 새로운 조합의 향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늘날 향수는 선조들의 덕(?)을 본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구권 회사들이 유명 브랜드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라비아 지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돌아갈 때 자신이 사용하거나 주변에 줄 선물로 향수를 구입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아라비아의 향수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여전히 하나의 브랜드이자 고유명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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