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1 15:24 (수)
[금융의 질풍노도] 정도전 ‘계민수전’과 기본소득 
상태바
[금융의 질풍노도] 정도전 ‘계민수전’과 기본소득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17 0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오늘날 부(富)를 가늠하는 척도는 다양하다. 세상은 복잡해졌고 쓰임을 받는 필수재화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이는 과거의 왕조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이 돈이었기 때문에 곡식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 땅을 경작할 노동력 즉, 노비가 필요했다. 

고려시대에는 토지제도와 노비제도까지 가지고 있던 문벌귀족이 득세했다. 이런 고려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도전이 주장한 것이 바로 ‘계민수전(計民授田)’이다. 국가의 토지를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아도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다.

왕조가 유지되면서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어 왔던 한반도의 역사에서 정도전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조세를 거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의 속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었겠지만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이 증가하면서 이들이 납부하는 조세도 증가했을 것이다. 국가가 안정된 세수를 확보한다는 것은 국가의 안정은 물론 국력의 신장을 의미한다. 백성의 삶이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주인이 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요동과 만주 일대까지 고려나 조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영역이 넓어졌을 것이다. 국가에 세수확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국가를 부흥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여러 왕이나 재상의 주요 업적 중에 자영농 육성과 농지개혁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의 토지나 화폐 같은 재화가 소수에 의해서 독과점 되기보다는 고루 나누어져 이들이 생산 활동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통해 계속적인 거래와 교환이 이루어지는 게 국가 경제에는 더 이득이다. 
 
이런 경제 흐름을 만드는 것은 바로 ‘교환’이다. 부를 창출하던 토지를 가진 지배층에 의한 소수가 교환경제에 참여하기보다는 토지를 가진 다수의 백성이 경제적 주체가 되어 교환경제에 참여했다면 이는 시장의 형성을 비롯해서 도량의 통일, 화폐의 발달을 앞당겼을 것이며 이로 인한 시장경제는 한반도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정도전의 계민수전이 아닌 정몽주의 과전법이 시행되면서 파격은 자취를 감춘다. 거대한 개혁보다는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변화에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조선의 개국 이후 왕위계승을 둘러싼 정도전의 실권으로 개혁은 멈추었고 조선의 성장도 한 걸음 늦춰졌다.  

조선을 지나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계민수전 같은 개혁은 없었다. 변한 것이라면 곡식이 아닌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자본주의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정도다. 오늘날의 부는 토지보다는 제조업이나 금융이 만들어낸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을 통해 명문화된 경제민주화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이상일뿐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씨는 의외의 상황으로 다시 켜졌다. 펜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 사태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불러온 이 재앙으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알려졌다. 또 대선을 통해 많은 논쟁을 불러왔고 필요성을 공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국민이 받은 기본소득은 소비로 다시 사용되면서 기업을 살리는 승수효과(乘數效果, Multiplier Effect)를 발생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기본소득이 기업과 정부 모두에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거대한 개혁의 플랜은 이미 600여 년 전에 계민수전(計民授田)을 통해 정도전에 의해 그려져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經濟民主化)를 이루기 위해 기본소득을 실행하면서 개혁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을 차례가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