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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고발]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 ‘의료자문’  믿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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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고발]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 ‘의료자문’  믿을 수 있나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2.05.11 16: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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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諮問)이란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묻는 행위를 말한다. 용어에도 드러나듯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의견이라기 보다는 소견을 묻는 정도의 행위를 일컫는다. 하지만 보험사의 ‘의료자문’ 제도는 피보험자의 진단명을 바꾸거나, 그로인해 보험금 지급을 늦추는 근거로 작용한다. 문제는 누가 자문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익명성 뒤로 숨은 자문의와, 자문의 소견을 보험금 부지급을 근거로 내세우는 보험사. 소비자 불신은 여전하다.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질환에 대해 전문의 소견을 묻는 제도인 ‘의료자문’ 제도가 소비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삭감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6년 4월 M 화재 ‘알파플러스보장보험’에 가입한 유 모(56년생, 여)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유 씨는 2020년 11월 이화여자대학병원에서 뇌졸중(뇌기저동맹의 폐쇄 및 협착)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보험사에 뇌졸중 진단보험금 1000만원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자사 소속 자문의의 ‘의료기록판독’ 소견을 바탕으로 “혈관의 협착정도가 50%미만”이라며 부지급 통보를 했다. 

‘알파플러스보장보험’ 약관에는 ‘뇌졸중의 진단확정은 의료법 제3조(의료기관)에서 정한 국내의 병원 또는 국외의 의료관련법에서 정한 의료기관의 의사 자격증을 가진 자에 의하여 내려져야 하며, 이 진단은 병력, 신경학적 검진과 함께 뇌전산화단층촬영(brain CT scan), 자기공명영상(MRI), 뇌혈관 조영술, 양전자방출 단층술(PET), 단일광자방출 전산화 단층술(SPECT), 뇌척수액검사 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유 씨가 뇌졸중이라는 이전 병원의 판단에 대해 보험사는 “MRI상 두개강(뇌가 들어 있는 두개골 안쪽의 공간) 내 뇌실질의 특이 이상 병변이 확인되지 않고, 기저동맥관 양쪽 척추동맹 모두 정상 소견이며 영상 소견과 환자의 신경학적 증상 또한 일치하지 않아 뇌졸중이 아닌 ‘기억 및 인지저하’로 판단된다”며 자사 자문의 의견에 따라 유씨의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것인데 문제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은 의사가 내린 판단이 직접 진료를 본 의사의 의견보다 앞섰다는 점이다.   

이 사례를 두고 금융소비자연맹은 “환자를 진료하거나 직접 보지 않은 자문의(신촌세브란스 소속)가 의료기록만을 보고 유씨의 질병을 판단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보험사의 자문료를 받는 자문의가 진료기록만을 보고 진단명을 바꾸거나 보험사가 이를 근거로 부지급의 근거로 삼는 것은 위료법을 위반한 불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자문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이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자문 제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의뢰한 건 중 절반 이상은 기타 등급으로 분류돼 보험금 지급이 미뤄지거나 소송으로 이어진다.

보험사 측은 아무 이유없이 의료 자문을 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 씨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보험사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의료자문 후 부지급 건수가 늘어난 것은 절대적인 계약 건수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며, 특히 최근 백내장과 도수치료로 인한 실손보험의 과다 청구가 이어져 의료자문이 늘어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의심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자문을 구하는 것일뿐 아무 이유없이 의료자문을 구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견 타당해보이는 보험사의 해명에도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의료자문’이 보험금 부지급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소비자의 믿음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지속되는 의료자문 분쟁에 대해 “보험사의 ‘의료자문’이 정당한 것이고 피보험자가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누가’ 의료 자문을 했는지 밝혀야 하는데 소비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보험사만 알고 있어 분쟁이 생기는 것"이라며 “자문의를 ‘유령의사’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7년 금융감독원은 자문 절차가 보험금 지급 거절을 목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의료자문 현황을 투명하게 공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현재까지 공개되는 정보는 자문의가 속한 병원과 과(科), 자문 건 수 등이며 가장 중요한 ‘누가’ 자문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누가했는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자문의 진단에 대한 의심의 불씨는 그대로 남는다. 이 와중에 매년 보험사가 지불하는 엄청난 액수의 자문료도 보험사와 자문의 간 커넥션을 의심하게 한다. 

보험사들이 특정 병원과 의사에게만 집중적으로 자문을 의뢰하는 형태도 문제다. 올 초 H 보험사는 자사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만 자문을 받도록 해 논란이 됐다. 해당 보험사의 약관에는 보험 수익자와 보험사가 지급 사유를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제3의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 의견을 따르도록 했다. 

문제는 보험사가 자신들이 정한 의료기관에서만 자문을 받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고 통보해 실질적으로 자문을 강제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해당 보험사는 언론의 보도 이후 시정조치와 더불어 제도 개선의 의지를 보였으나 여전히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자문의 진단을 근거로 보험금를 받지 못한 소비자가 소송을 한다 해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 뿐 아니라 의료인의 과실을 밝히기 쉽지 않아서다. 의료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의료관련 문제는 과실여부를 계량화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의료인들의 잘못된 진단 여부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동료의식이 작용해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료자문은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조건이 갖춰졌을 때 소비자는 기꺼이 의료자문을 합리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분쟁도 마무리될 수 있다. 지금처럼 누가 자문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면 ‘의료자문’ 제도는 피보험자의 진단명을 바꾸거나, 그로인해 보험금 지급을 늦추는 근거로 작용한다는 의심을 벗어날 수 없다.  

박지연 기자 yeon7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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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2023-07-18 22:27:25
진짜... H해상..진짜... 보험사의.돈을 받고 자문을.하니... 어찌.판단이.나올지가 너무 참..

후니 2023-07-18 21:03:22
가려운 부분을 속시원히 긁어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