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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몰랐을 뿐인데... 신용대출 약정 위반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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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몰랐을 뿐인데... 신용대출 약정 위반이라뇨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2.05.04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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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근무하는 최00(남, 54세)은 아파트 매입을 위해 추가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 지난해 1월 거래은행인 SC제일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대출 상담을 받았다. 영업점 직원은 오프라인 대출보다 온라인으로 대출을 신청하면 금리가 낮다고 안내했고 최 씨는 온라인으로 9060만원 대출을 신청했다. 

대출 신청 과정에서 최 씨는 신용대출 잔액이 1억원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기존 신용대출 2000만원은 대출받는 금액에서, 나머지 1230만원은 직접 상환할 생각이었다. 당일 14시 15분 대출(9060만원)이 실행돼 계좌 입금과 동시에 2000만원이 자동상환 됐고, 13분 후인 14시 28분 최 씨는 직접 전자금융으로 1230만원을 상환했다. 이후 최 씨는 소유권 이전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최 씨는 같은해 7월 ‘신용대출 추가약정서 위반’으로 채무변제 통보를 받았다. 당황한 상기인은 민원을 제기하며 부당함을 하소연했으나 은행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관리방안’에 따라 적정하게 처리되었다면서 올해 4월 채권(급여)가압류, 신용카드 이용정지 등을 유선 통보했다.

대출잔액이 1억원이 넘지 않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가계대출 상품설명서’ 상의 ‘약정시점’이나 ‘대환상환’이란 생소한 용어가 화근이었다. 

금융위원회에서 제정한 추가약정서* 상의 신용대출 잔액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신규로 신청한 신용대출에 의해 기존 신용대출의 원금상환이 예정된 경우 상환 예정금액만큼은 신용대출 누적 잔액 계산 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고액 신용대출의 사후용도관리 강화 관련 추가약정용이며 이 약정서는 신규로 1억원을 초과하여 신용대출을 받거나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아 신용대출 잔액(전금융기관 합계)이 1억원을 초과하는 차주에 대해 대출거래를 하기 위한 약정으로 채무자는 본 대출 실행일부터 1년 또는 대출 전액 상환시기 중 빠른 일자까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구입하지 않기로 하며 이를 위반한 경우 기한의 이익은 상실하게 되고, 대출변제 의무를 진다는 약정이다. 

다만 SC제일은행은 ‘가계대출 상품설명서’에서 신용대출 잔액 1억 초과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을 대출신청 완료 시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용대출 잔액 1억원 초과 여부 판단 시점을 사실상 대출신청 완료 시점으로 보고, 대출 실행과 동시에 자동으로 상환되는 기존 신용대출만 잔액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최 씨가 ‘대환상환’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온라인 대출 과정에서 2000만원은 대환상환한다고 체크했으나 1230만원은 대환상환하겠다는 표시를 하지 않아 대환상환한 금액만 잔액에서 제외되고 연이어 상환한 대출금은 그대로 남게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공급자 중심의 판단이란 지적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대출 잔액을 판단하는 시점을 상환시점이 아니라 약정시점으로 제약한 것은 실체적 내용보다 형식적 절차에 의한 규제로 고객의 재산 보호보다는 은행의 업무 효율성을 위한 규제의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창구에서 대출을 신청했다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문제가 온라인으로 직접 신청하면서 발생한 것이므로 시스템상의 미비도 지적했다. 최소한 ‘신청 대출과 기존 신용대출의 합계 금액이 1억원을 초과하여 대출 약정일(또는 실행일)로부터 1년까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소재 주택을 매입하면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어 본건 대출은 상환해야 한다’는 주의적, 경고적 문구가 표시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은행의 업무 효율성을 우선시 하는 불공정한 설명으로 신규 대출금으로 자동상환, 비자동상환 구별 없이 대출실행 당일 영업시간 내 상환되는 기존 신용대출 금액은 잔액에서 제외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담아 약관 편입 개정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지난 2월 신청한 상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비대면 대출 시 금융소비자의 고의나 과실과는 무관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시스템적으로 이를 예방하지 못한 은행에 우선 책임이 있다”며 “공급자 편의 중심의 약관, 관행,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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