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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아름다운 동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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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아름다운 동행을 꿈꾼다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22.04.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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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더불어혁신포럼’ 공동대표 조용식 

마늘밭에서 불법도박자금 110억을 찾아낸 치안 전국 1등의 공복(公僕) 조용식이 익산시장에 도전한다. 지난달 27일 소비라이프 조연행 편집위원이 익산 사무실에서 직접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Q___ ‘익산더불어혁신포럼’을 소개한다면
익산시민과 함께 익산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포럼이다. 익산은 도내에서 2030세대 인구 유출이 가장 많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 세대가 떠나고 있으니 익산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익산에 대한 비전이나 청사진을 제시하는 리더가 없다. 이것이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고 익산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민들과 함께 ‘익산더불어혁신포럼’을 발족한 이유다. 익산의 미래는 결국 익산시민들의 힘으로 개척해야 하지 않겠나. 

Q___ 오랫동안 공직에 있었던 걸로 아는데 
34년 동안 경찰 생활을 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경사로 첫 근무를 시작해 안양, 부천, 고양경찰서를 거쳤고 전라북도에 부임한 것은 2009년으로, 총경으로 승진하면서 전북경찰청 경무과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2010년 고향 김제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일했는데 그때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김제 마늘밭 110억원’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때 밤새 굴착 공사를 하면서 몰려드는 취재진을 통제하느라 전 직원이 고생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후 경무관이 돼 초대 인천국제공항경찰단장을 지냈고 치안감 승진 후 서울경찰청 차장을 거쳐 전북경찰청장으로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Q___ 경찰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
경찰이 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둘째 형 용순이다. 인생의 멘토이기도 하다. 형은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1984년부터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20대에 청와대에서 일하는 형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그 모습을 보고 나 역시 공직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공직자의 자세를 배웠다고 할까. 경호원은 늘 절제해야 하지 않나. 늘 엄정한 풍모를 보이는 형이 대단해보였다. 또 경찰 출신으로서 우리 경찰은 백범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 경찰 1호로 숭앙한다. 김구 선생이 제창한 ‘민주, 인권, 민생’은 대한민국 경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령이자 행동 규범이다. 

Q___ 익산시장에 출마한다고 들었는데 
익산은 내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김제에서 태어났지만 남매가 모두 익산에서 자랐고 학창시절도 익산에서 보냈다. 지금도 익산에 살고 있다. 생활의 터전인 익산이 갈수록 쇠락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역사 고도인 익산이 무기력, 무대책, 무책임 속에 방기돼 있다고 생각해 익산을 위해서 뛰어야겠단 마음을 먹게 됐다.  

Q___ 오늘날 익산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출산율 감소와 수도권 집중, 고령 인구 등 지방 도시가 겪고 있는 문제를 익산도 겪도 있다. 무엇보다 익산은 2030세대, 생산 연령층의 유출이 도내에서 가장 심각하다. 오늘날 익산시의 문제는 신뢰의 결여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더 좋아질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오늘의 고통을 견딜 수 있지 않나. 익산시의 백년 후를 생각하는 담대한 상상력으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치력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Q___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치력이라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구상하나.
간단히 요약하면 첫째는 KTX익산역+국가식품클러스터 더블 포스트 전략 둘째는 전국 최고 복지 안전도시 구축 셋째는 역사, 문화, 생태관광산업조성 넷째는 농생명스마트농식품산업육성 다섯째는 미래도약발전도시 구축이다. 

이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부처 간 칸막이치우고 ‘익산 원스톱 센터’를 개설해 스피드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다. 또 익산시민의 집단 지성을 모으는 기구를 공식화해 ‘익산형 거버넌스’ 모델도 만들고자 한다.

놓칠 수 없는 것이 익산의 문화콘텐츠를 발굴하는 일이다. 프랑스 속담 중에 ‘미술관 하나가 생기면 교도소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는데 문화콘텐츠를 적극 발굴, 가공해 여행자들이 익산을 찾도록 하겠다. 그러자면 자연히 교통플랫폼이 받쳐줘야 한다. 익산시민에게는 ‘웰니스 익산’으로 보답하겠다. 의료, 치안, 보호 시설 등 공동체 구성원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도록 도시를 설계해나가겠다.   
 
Q___ 자신이 생각하는 강점은 무엇인가.
유연한 실용주의자라는 점이다. 그 말은 나와 정치색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필요하다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 어디든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곳이 청와대든 울릉도든 익산에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면 어디라도 달려가 벤치마킹하고 익산에 맞도록 고민해서 정책을 생산하고 실행하겠다. 

Q___ 자서전 겸 정책집 <당신이 있어 다행입니다>에서 ‘조용식이 만난 익산시민’이란 파트가 인상적이었다.  
‘백인의 얼굴, 백인의 목소리’라는 타이틀로 페이스북에 6개월 동안 연재했던 시민 탐방기를 옮긴 것이다. 꿈 많은 대학신입생부터 취업준비생, 청년창업자, 독립운동가, 최고령 이발사, 여성 택시기사, 장애인, 이주여성, 자영업자, 예술가, 직장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익산시민과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이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익산에 필요한 것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 그려지고 현재 안고 있는 문제와 미래 비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펼쳐졌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익산의 변화는 결국 시민의 자발적인 의지와 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겠나.  

Q___ 백명의 시민을 만나고 나서 정책적인 초안을 만든 것이 ‘조용식의 꿈,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익산’인가.
그렇다. 이들을 만나고 우선 안전 전문가의 시각에서 도시의 안전 디자인을 새롭게 해봤고 익산 발전 계획으로 더블 포스트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전북 제2 혁신도시의 익산 유치를 강조했다. 그 외에도 청년, 노인복지 등 20여 가지의 중요 정책을 설계했다.  

Q___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를 만난 사람마다 내게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시민과 직접 만나 함께 울고 웃은 경험이 큰 자산이 되지 않았나 싶다. 34년간 공직자로서 받은 사랑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싶다. 발로 뛰는 것만큼은 자신있다.     
 

조용식은
1960년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남매가 모두 익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군산제일고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마친 뒤 경기 용인경찰서에 처음 부임했고, 총경 승진 후 김제경찰서장과 익산경찰서장을 역임했다. 경무관이 된 뒤 초대 인천국제공항경찰단장을 지냈으며, 치안감 승진 후 서울경찰청 차장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에 31대 전북경찰청장으로 임명되어 고향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34년 경찰 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경찰에 있는 동안 조직 혁신과 근무 환경 개선 등에서 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전북경찰청장 재임 당시에는 ‘전국 치안만족도 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퇴임 이후 익산시민들과 함께 익산의 미래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익산더불어혁신포럼」을 창립해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올해 본격 개막된 ‘자치 분권 2.0’시대를  준비, 익산 시민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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