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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해상왕국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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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해상왕국 백제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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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영산강을 시작으로 동진강, 만경강, 금강, 한강, 임진강, 예성강,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그리고 요하, 황하, 양쯔의 물줄기가 흘러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서해다. 

지금은 중국과 북한, 우리나라에 접하고 있는 바다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6~7000년 전에는 해안가 주변에서 성장한 수많은 도시국가가 이곳을 중심으로 교역을 하며 필요한 물자를 거래하였다고 한다. 유럽에 지중해가 있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서해가 교역의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중국지역에서는 은나라에 이어 주나라가 성립하면서 봉건제도가 실행되었다. 왕에게 받은 봉토를 여러 제후들은 나누어 통치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성립한다.

그중에는 바닷가에서 성장하는 마을과 도시도 있었다. 이들은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였는데 소금이 대부분의 음식에 사용되다보니 내륙에서 소금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바다는 자연스럽게 소금의 생산과 해산물을 얻을 수 있는 주요 산지가 되었다. 
 
바다를 둘러싼 지형의 특성상 바다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멀리 돌아가야 하는데 배를 타고 가면 거리와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많은 부분에서 유리했다. 자연스럽게 배를 이용하여 바닷가에 있던 주변도시와 교역이 활성화되었다. 이를 통해서 마을은 도시로 성장했고 도시는 도시끼리 연합하거나 정복전쟁을 통해서 국가로 성장했다. 요동일대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고조선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있던 마한지역의 여러 도시국가와 변한의 여러 도시국가들도 각각의 주어진 여건에 맞게 교역과 성장을 하였다.

특히 변한은 진한, 왜와 교역하면서 중계무역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무역거래는 바다로만 접근이 가능했던 왜에게는 외부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이는 훗날 왜가 서해의 해상을 장악하게 되는 백제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당시 백제는 전성기 때에 랴오시(요서)와 산둥을 비롯하여 장쑤(강소, 江蘇), 저장(절강, 浙江)일대까지 점령하면서 고구려보다 더 넓은 서해일대를 장악한다. 

이런 이유로 서해는 백제의 내해로 간주되었다. 백제의 해상영향력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뒷받침 됐다. 당시 백제인은 백제의 조선술로 만든 배를 타고 인도차이나반도(崑崙, 곤륜) 일대까지 해양무역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제 성왕 때의 승려로 알려진 겸익이 인도와의 교류를 위해 이용하였을 이동로가 비단길인지 바닷길인지에 대한 의견이 팽배한 이유도 백제의 해상장악력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중국 사서(史書)인 송서(宋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통전(通典), 남제서(南齊書), 양직공도(梁職貢圖), 자치통감(資治通鑑),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를 비롯해 청의 건륭제때 만들어진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백제가 서해일대를 장악했던 역사가 언급되고 있다. 
 
더불어 국내에서는 삼국사기와 조선상고사에서도 백제가 서해를 내해(內海)로 두었던 해상강국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도 중국 역사서에는 백제가 장악했었다고 언급되었던 지역에서 ‘백제’라는 지명을 사용하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서해를 장악했던 백제 덕분에 일대의 여러 지역의 물자 교류를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런 교류는 백제가 부(富)를 쌓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원천이 되었다. 백제인의 해상 무역로는 왜(倭)와 곤륜(崑崙)에까지 이어지며 오늘날 한류를 무색케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침략의 역사로 인해 우리의 수많은 역사기록은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역사는 중국 역사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중국 역사서에 적힌 이민족에 대한 간략한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제는 서해일대를 장악하고 부(富)를 누렸던 해상강국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꽃피운 찬란한 백제의 문화를 우리는 너무 외면하여 왔다. 백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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