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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중국을 화폐경제로 이끌었던 일조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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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중국을 화폐경제로 이끌었던 일조편법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18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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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중국 명나라의 13대 황제 만력제. 그는 1572년 7월 19일에 즉위하여 1620년 8월 18일에 사망할 때까지 48년간 중국의 황제로 있었다. 명나라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던 인물이다. 

초기에 보였던 영특함과는 달리 자신을 호통 치는 스승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이 사망한 1582년 이후부터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하던 스승이 사망했으니 그동안 스승 등살에 못했던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긴 치세기간 중 근 30여년을 직무유기한 덕분에 동북아에는 청(淸)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들어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의 치세 중에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임진왜란을 겪던 조선에 이여송을 필두로 4만여 명의 병력을 파병한 것이다. 지금도 의문인 조선 파병은 당시 명나라에 그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좀 더 들여다보면 만력제의 스승 장거정이 명나라전체에 실시한 일조편법(一條鞭法)이라는 조세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복잡다양한 방법이 적용되어 결정되던 조세를 단순화한 것을 일조편법이라고 한다. 중국의 역대왕조는 오랜 시간 백성들에게 보리나 쌀 같은 곡식이나 포목처럼 현물과 부역을 통해 나라에 세역을 담당하게 했는데 이를 은으로만 납부하도록 한 것이다. 

복잡한 세목도 단순화했다. 인적이 드문 곳을 몰래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는 지방의 지주(호족)나 향리(鄕吏)의 탈세도 있었지만 조세를 걷는 관원도 전부 알지 못하는 세목 덕분(?)에 걷히지 못하는 세금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고자 인두세와 토지세를 놔두고 나머지 조세를 하나(一條)로 통합했다. 지역별로 필요에 따라 이뤄졌던 독자적인 조세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개혁을 단행하면서 현실화된 조세는 비어가던 국고를 채웠다. 

일조편법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남아메리카 포토시와 포르투갈이 있었다. 홍무제 주원장이 건국 초부터 단행했던 해금령(海禁令)으로 인해 폐쇄적이었던 명나라는 1509년 광저우(廣州)를 조공국에 한해 개방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포르투갈과의 대외무역으로 은 유입이 증가한다. 1567년에는 푸젠(福建) 장저우(漳州)에서의 무역도 허가한다. 

대외무역은 은이라는 돈을 벌 수 있는 창구였다. 명나라의 상인들이 은을 벌기 위해 사(私)무역을 하면서 무역량 규모는 점점 확대되었고, 유입되는 은의 양도 급증한다. 이는 재화의 수요공급과 맞물려 시중에 은의 유통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명나라 경제는 활기를 띠게 된다.  

이런 환경은 화폐의 발달을 가져왔다.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에서 은이 화폐역할을 하며 가격의 기준으로 작용하자 명나라 경제는 안정화됐다. 은이라는 화폐로 조세를 받으면서 현물로 조세를 받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물가에 따른 피해도 줄일 수 있었다. 또 토지조사를 통해 토지가 정리되고 개간을 통해 면적이 증가하면서 농업 생산량도 증가했다.

토지에 대한 데이터는 예전보다 정교해졌고 세목이 단순해지면서 새고 있던 조세는 줄었다. 나라의 곳간이 든든해지면서 명나라는 중흥기를 맞는 듯했으나 만력제의 사치가 명나라를 늪에 빠지게 했다. 더군다나 임진왜란이라는 대외적인 변수마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조편법으로 인해 은을 활용한 화폐개념이 도입되면서 명나라는 한 단계 성장했다. 해금령이 없었거나 좀 더 일찍 해제되었다면 시장경제가 보다 빨리 자리를 잡고 문제점들을 보완해 나갔겠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은을 조세로 납부하는 기조는 청으로 왕조가 바뀌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면서 청의 대외원정을 가능하게 했던 재정적인 기반이 된다. 덕분에 중국은 광활한 영토를 가진 대국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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