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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백성의 삶이 넉넉해야 부국(富國)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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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백성의 삶이 넉넉해야 부국(富國)이 된다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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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국경이 맞닿아있던 연나라 못지않게 바닷길로 연결되어 고조선과 교류하던 제(齊)나라는 강태공으로 알려진 제후를 시조(始祖)로 한다.

주(周)문왕(文王)이 재상이었던 태공을 불러 동쪽에 영지를 주어 다스리게 하면서 시작된 제(齊)는 꾸준히 주변을 정벌하며 영토를 확대했다. 산둥반도까지 확대된 영토를 통해 바다까지 이어졌던 나라로 바다에서 얻는 소금과 육지에서 얻는 철 같은 자원이 풍부해 초기부터 강대한 나라였다. 

자원이 풍부하다보니 일찍부터 학문을 배우는 인재가 많았다.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와 손빈이 제나라 사람이다. 맹자가 활동했던 곳도 제나라였다. 14개의 대국(大國)과 120여개에 이르는 소국(小國)이 경쟁하고 다툼을 벌이던 춘추시대에 15대 환공 때에 명망을 드높이게 된다.     

이때 환공을 도와 제(齊)가 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정치를 했던 인물이 관자(管子)다. 혼란스럽던 주나라의 수많은 제후들 틈 사이에서 훗날 교통정리의 중심에 제나라가 있게 했다. 춘추시대를 좌우하던 5개의 큰 세력을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지만 유일하게 제일로 뽑는 일패(一覇)가 바로 제(齊)다. 

재상으로 있으면서 제나라를 이끈 이가 바로 관이오(管夷吾, BC 725년 ~ BC 645년)다. 동양에서는 어렸을 때 지은 이름 외에 성년이 되어 관례를 치르면서 새로 짓는 이름을 ‘자(字)’라고 하는데 관이오가 성년이 되어서 새로 지은 자(字)가 중(仲)이다. 우리는 관이오를 통상 ‘관중(管仲)’이라 부른다.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관중은 제(齊)나라를 결속시키고 주변국을 통합하거나 안정시키는데 기여했다. 그가 제나라를 춘추시대 최고의 나라로 만든 데에는 한 가지 지론이 있다. ‘창고 안이 가득차야 예절을 알게 된다.(倉庫實而知禮節)’, ‘입고 먹는 것에 만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衣食足而知榮辱)’가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들처럼 중농주의(重農主義)에 중심을 둔 경제정책을 유지하던 제나라에서 관중은 바다를 활용한 중상주의(重商主義)를 국가 정책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관중은 주변의 여러 나라와 자원을 활용한 교역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중은 부국보다 부민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부국이 된다고 해서 부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백성이 부민이 된다면 부국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논리다. 

부민을 통해 부국의 길을 찾는 것이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진 현재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향일 듯하다. 우리는 부국(富國)과 부상(富商)에 치우친 나머지 부민(富民)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나라는 부국(富國)의 상징인 선진국에 다가서고 있고, 기업도 부상(富商)의 단계를 넘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시대인데 다만 국민은 갈수록 빈(貧)해지고 갈수록 극빈민(極貧民)이 늘고 있다. 너무나도 한쪽으로 쏠려버린 부로 인해 오히려 사회불안과 불만은 팽배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한 대처 안이 위정자를 통해서 나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언급한 倉庫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창고실이지예절, 의식족이지영욕)은 관중이 오랜 시간 관료로 나라 경영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던 명언이다.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 개개인의 창고는 어떠한가? 병이 의심될 때 예진을 통해 미리 관리하지 않으면 큰 병으로 발전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이 살아가는 사회에 생긴 갈등과 불만을 제때 풀어내지 못하면 자칫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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