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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정보로 부(富)를 이룩한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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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富] 정보로 부(富)를 이룩한 가문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30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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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오늘날 금융시장의 향방을 주도하는 곳은 뉴욕(New York)이다. 2019년 3월 기준으로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에는 2,298개 회사가 상장되어 있고 이들의 시가총액은 약 23조 2000억 달러다. 3,059개 회사가 상장된 나스닥(NASDAQ)에 비하면 상장사는 적지만 나스닥의 시가총액이 약 11조 2000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세계 최대 규모다. 시장의 인지도가 높아 한 국가의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 기업의 주식이 상장되어 있다. 

기업들이 이곳으로 모인 이유는 단 하나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이 작은 건물로 모여서다. 뉴욕거래소는 그 정보를 돈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금리의 고저, 석유생산량 증감, 실업률, 그리고 국가 간 분쟁까지. 개인의 문제부터 국가 간 외교까지 다양한 분야의 정보에서 돈을 만들어낸다.

뉴욕 거래소처럼 정보를 돈으로 만들어 세계금융계의 큰 손으로 자리하고 있는 가문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家門)이다.

뜻을 해석하면 붉은(Roth) 방패(Schild)라는 의미다. 이 가문은 유대인으로서 오랜 시간 유럽에서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철부터 값진 물건까지 취급하던 골동품상이었다. 당시 한자동맹 지역이었던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전상을 하면서 금융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환전상은 당시 천시당하던 직업이었다. 사회적인 천시와 다르게 이들은 거래하는 당사자 간 철저하게 신뢰를 지켰다. 이익이나 은혜를 베푼 사람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덕분에 당시 왕족과 귀족에게 신뢰를 얻는다. 그런 신뢰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마이어 암셸 로트쉴트(Mayer Amschel Rothschild, 이하 마이어)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골동품을 취급하던 그는 희귀한 동전도 취급했다. 동전 수집을 하던 헤센-카셀의 왕세자와 마이어는 희귀한 동전을 발견한 때마다 거래를 했다. 

그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하노버에 있는 유대인 금융업체에서 1757년부터 10여 년간 수습사원으로 일을 배운다. 이곳에서 금융과 환전에 대한 지식을 쌓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헤센-카셀의 왕세자인 빌헬름(훗날 빌헬름 9세)의 자금을 관리한다. 신성로마제국에 있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였던 헤센-카셀도 다른 나라처럼 경제 관념 없이 재정을 운영했다. 중세를 지배하던 가톨릭으로 인해 지옥에 가기 싫어 돈을 천시하다 보니 발생한 상황이었다. 

마이어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빌헬름 9세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왕실의 재산관리와 나라의 세금징수를 마이어에게 맡겼고, 그는 궁정 재정을 담당하게 한다. 마이어가 이때 받은 수수료는 유럽 거점에 은행을 설치할 때 종잣돈으로 사용된다. 유럽은 혼란스러웠고 갈등은 전쟁을 불러왔다. 

이후 워털루 전투가 최후의 일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로스차일드家는 정보원을 투입해 전쟁의 결과를 잉글랜드에 알려 잉글랜드의 국채를 팔아치운다. 통신수단이 없던 시절 승전이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국채가 매물로 쏟아지자 가격은 하락했다. 주변에서도 매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매물은 쌓이는데 아무도 매수를 하지 않자 국채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매물이 쌓이자 이번에는 헐값의 매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매도자들이 조금이라도 건졌다고 안심하고 있을 즈음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알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잉글랜드의 국채가격은 고공행진을 했고 헐값에 사들인 로스차일드家는 막대한 이익을 남기게 된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나폴레옹의 반대진영에서 그의 몰락에 배팅을 했던 로스차일드家가 나폴레옹의 패배로 막대한 이익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이후 마이어는 다섯 명의 아들을 유럽의 중심도시로 보내 정보망을 구축했다. 사람과 돈이 모인 곳에서 수집된 고급정보를 활용해 사업과 연결시켰다. 마이어가 사망한 뒤에도 다섯 아들은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에서 자리를 잡고 전 유럽에 펼쳐져 있던 우편망을 통해 정보를 공유했다. 

마이어는 아들들에게 ‘협력(Concordia)’을 강조했다. 2세들의 협력은 시너지를 냈다. 그들이 가진 정보는 기회를 낳았고, 나아가 부(富)를 낳았다. 높은 이익에 잠재해 있는 위험을 덜기 위해 공동투자를 해 위험을 분산시키고 막대한 이익을 공유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은 언제나 벌 수 있다. 돈을 볼 줄 아는 식견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수많은 정보와 기사 속에도 우리의 식견을 기다리는 내용이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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