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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레저] 왕에게 가다... 서울 의릉/천장산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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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레저] 왕에게 가다... 서울 의릉/천장산 하늘길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1.11.1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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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였다면 범인인 내가 왕을 만날 수나 있었을까. 300년의 시간 차를 두고 오늘날 왕에게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천장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박지연

익숙한 이름... 선릉, 정릉, 태릉
역 이름으로 익숙한 이곳은 모두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릉이다. 익숙해서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유적지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이 이달 말까지 조선왕릉 숲길을 개방한다는 소식에 서둘러 ‘의릉’을 방문지로 택했다.  

의릉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낯선 이름이 주는 호기심이 하나, 가깝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유희열이 걸어 유명해진 천장산 하늘길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천장산과 의릉은 근접해있어 의릉에서 시작해 천장산 하늘길을 걷거나, 천장산 하늘길에서 시작해 의릉으로 향할 수 있다. 두 곳을 한 번에 걷겠다는 계획을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수요일, 날이 좋았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천장산 하늘길에서 숲속 어린이도서관으로 내려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사잇길을 따라 의릉으로 가는 길이었다. 

ⓒ박지연

1호선 회기역, 외대앞역, 6호선 월곡역, 상월곡역, 돌곶이역 등 천장산과 의릉에 닿을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나, 유희열의 ‘밤을 걷는 밤’ 속 걸음을 뒤따르기 위해 국립산림과학원과 KAIST 서울캠퍼스를 끼고 올라가는 길을 시작점으로 잡았다.  6호선 고려대역에서 내려 정릉천을 지나 세종대왕기념관 옆 돌담길을 걷다 보면 천장산 하늘길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 

도착한 시간은 아침이었으나, 천장산 하늘길은 낮보다 야경이 특히 멋진 곳으로 유명하다. 밤에도 걸을 수 있게 산책로 곳곳에는 조명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밤이 아닌들 어떠랴. 함께 걷는 동무가 있고, 이제 막 가을옷을 입기 시작한 단풍도, 조금씩 서늘해지는 바람에도 설렘이 가득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저 멀리 나타났다 사라지는 도시 풍경도 호기심을 자아냈다.

며칠 사이 서울은 64년 만에 찾아온 가을 한파로 잠시 떠들썩했지만 걷다 보니 길을 나서기 전 걱정은 지워지고 없었다. 담소를 나누면서도 걷는 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천장산은 간단한 산책과 운동을 즐기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적당히 땀이 배어들었지만 덥진 않았다. 

ⓒ박지연

얼마나 걸었을까. 경희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르자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높은 산은 아니었으나, 아무 때고 찾아와도 부담 없는 맞아주는 뒷산처럼 푸근함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어 연인, 친구, 가족의 손을 잡고 밤낮 구분 없이 찾을 수 있는 천장산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딱이다. 

천장산에서 내려와 의릉까지 한 번에 걷을 계획이었으나, 계획은 언제나 그렇듯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한국종합예술대학 앞까지 잘 찾아왔건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코로나로 임시 폐쇄한다는 안내문만 덩그라니 붙은 철문을 두고 학교를 지나는 사잇길이 아니라면 의릉 입구까지는 한참을 빙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제향을 올리는 정자각 뒤 언덕으로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의 능이 보인다. 앞쪽에 보이는 것이 선의왕후의 능이고, 뒤쪽으로 작게 보이는 게 경종의 능이다. ⓒ박지연

도심 속 왕릉
의릉懿陵은 제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두 개 능이 상하로 놓여있는 ‘동원상하릉’으로 위쪽에는 경종이, 아래쪽에는 선의왕후가 잠들어있다.

능에 다다르기 전 가장 먼저 방문자를 반긴 것은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의 문 ‘홍살문’과 박석을 깔아놓은 길 끝자락의 정자각이었다. 정자각은 제향을 올리는 건물로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가는 길은 ‘향로’와 ‘어로’가 나 있다. 왼쪽 길 ‘향로’는 제향 때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로, 신이 다니는 길이며 어로 보다 약간 높다. 오른쪽 길은 ‘어로’라 하여 임금이 다니는 길이다. 

왼쪽이 홍살물, 오른쪽이 박석을 깔아놓은 향로와 어로. ⓒ박지연
곡장이라고 하여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의 동, 서, 북, 삼면에 담장이 둘러진 곳이 경종의 능이다. ⓒ박지연
정자각을 두고 바로 뒤편에 보이는 선의왕후 능. ⓒ박지연

정자각을 두고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왕비 선의왕후의 능이다. 아래 쪽에서 바라보면 경사가 져 있어 뒤편에 자리 잡은 경종의 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의왕후 어씨(1705~1730)는 1718년(숙종 44년) 세자빈이 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됐다. 

경종릉은 곡장이라고 하여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의 동, 서, 북, 삼면에 담장이 두르고 있다. 어두운 사후 세계를 밝힌다는 장명등이 봉분 앞에 서 있고 석상이라고 불리는 혼령이 노니는 혼유석도 경종릉에서만 볼 수 있다. 
봉분을 둘러싸고 석양(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봉분 주위에 세운 돌로 만든 양)과 석호(능을 지키는 의미로 봉분 주위에 세운 돌로 만든 호랑이)가 봉분을 둘러싸고 있다.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을 능상(능참)이라고 하는데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밑 부분에 둘러 세운 12면의 병풍석에는 12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이 해당 방위에 맞게 새겨져있다. 

의릉은 1960년대 국가정보원(옛 중앙정보부) 청사가 위치해 여러 용도의 건물이 세워지고 정자각 앞에 연못과 운동장이 만들어지는 등 능역이 크게 훼손됐다가 문화재청이 옛 중앙정보부 청사 건립 이전의 지형 자료를 확보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복원공사를 해 현재 모습에 이르렀다.  

경종(1688~1724)은 숙종과 장씨(장희빈)의 아들로 1720년 왕위에 올랐는데, 어려서부터 비만에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기록돼 있다. 즉위 후에도 후사가 없어 경종의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했다. 

1724년, 경종 4년 8월 25일에 경종은 갑작스레 병을 앓고 복통과 설사를 반복하다가 창경궁 환취정에서 승하한다. 경종이 승하하기 닷새 전 게장과 꿀, 감, 인삼차 등을 수라로 든 일이 있었는데 이 음식들의 궁합이 좋지 않아 경종의 독살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의릉을 둘러보는 데는 한 시간이면 족했다. 신성한 왕의 능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든 범인(凡人)의 생각은 땅에 대한 것이었다. 땅은 산자에게나 죽은자에게나 이토록 불공평한 것일까. 

그러나 저곳에 묻힌 주인이 자신이 얼만큼의 자리에 묻혔는지 알겠는가. 결국 모든 건 산 자의 문제일 뿐이다. 돌아오는 길 의릉 주변으로는 곧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는지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박지연 기자 yeon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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