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여행/레저] 서촌을 걷다
상태바
[여행/레저] 서촌을 걷다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1.11.01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목을 걷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면 동네는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 넉넉한 품에 안겨 있고, 다른 한쪽은 도심의 높은 고층 빌딩을 앞에 두고 있다. 도시에서 살지만 자연으로 돌아와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품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 생각했다. 예로부터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촌이다. 공식 지명은 아니고 별칭이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동쪽으로는 경복궁, 서쪽으로는 인왕산, 남쪽으로는 사직로, 북쪽으로 창의문과 북악산이 자리한다.

서울 중심이면서도, 서촌에 들어서면 오래된 건물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잠시 이곳이 서울이란 생각을 잊는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서울이 중심이란 생각, 광화문과 종로가 중심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서촌에 들어서니 알게 모르게 삶에 배어든 ‘중심과 주변’이라는 구별은 사라지고 낮은 담장과 골목에 그저 정겨운 마음만 남는다. 

ⓒ박지연 기자, 심미현 디자이너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통인시장을 가로지른다. 기름떡볶이 파는 곳을 지나 시장 끝으로 나오니 청와대에 빵을 납품해 유명해진 효자베이커리가 오른편에 들어온다. 행정구역상 통인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효자동, 창성동,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등이 포함되는 이곳은 길 하나를 두고도 동이 달라지는 재미난 곳이다. 길은 사방으로 뚫려있어 어디로든 가야 하는데, 지도를 접어두고 그냥 걷기로 했다. 원래 여행의 묘미란 스치듯 우연찮게 조우하는 사람과 풍경 아니겠는가. 
   
아직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9월의 한낮. 동네 어귀에서 여자아이 다섯을 만났다. 낯선 사람의 카메라 요청을 수줍지만 당당하게 거절한 아이들은 무엇이 재밌는지 저들끼리 웃고 떠든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본 게 언제였던가 새삼 떠올리면서 골목을 따라 오르니 가지처럼 뻗은 골목엔 언제 지어졌는지,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는지 서로 다른 출생연도와 사연을 지녔을 건물이 빼곡하다.  

ⓒ박지연 기자
ⓒ박지연 기자

서촌은 세종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인과 서민들의 거주지였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문인과 예술인들이 자리잡았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이곳 서촌에서 탄생했고 근현대로 와서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등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오늘날에는 600여 채 이상의 한옥과 전통시장, 소규모 갤러리 공방, 카페, 음식점이 자리한다. 

족히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됐을 법한 건물부터, 새로 올린 처마가 채 마르지 않은 듯한 한옥까지, 상가, 양옥, 빌라, 그리고 시대를 특정할 수 없는 건물이 하나씩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그 사이 벽화가 그려져 있고, 또 그 사이 골목과 골목을 잇는 계단이 나타나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서촌은 2010년 한옥밀집지구로 지정됐고 세종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세종마을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유명한 곳도 많다. 인왕산과 수성동 계곡, 이상의 집, 윤동주 하숙, 홍건익 가옥, 티베트박물관, 대오서점, 효자베이커리, 통인시장, 추억의 오락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그리고 대림미술관까지. 한 번에 다 돌아보긴 아까울 만큼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박지연 기자

하지만 누가 서촌의 진짜 명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골목을 돌자 불현듯 나타나는 풍경과, 막다른 골목이라 하고 싶었다. 무심결에 걷다 여기에도 길이 나 있겠지 하는 순간 덜컥 막다른 집 앞에 서 있곤 했다. 막다른 골목이라곤 해도, 처마를 따라 촘촘히 햇살이 깃들었다. 

눈을 수평으로만 둔다면 두 사람이 겨우 오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은 갑갑하기 그지없었지만 눈을 조금 들자 집과 집 너머로 보이는 산과 하늘이 답답함을 잊게 했다. 간격없는 담 사이로 무성하게 자라있는 초록의 잎들도 한몫했다. 골목을 돌아 나오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건네는 인사도 반가웠다.

이 별것 아닌 풍경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다. 청와대 근처여서 고도 제한, 개발 제한에 묶였고, 고층 빌딩이 들어서거나 개보수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급격한 변화는 서울 시내 이 노른자 땅을 피해갔다. 이후에는 개발의 달콤함 대신 생활의 소소함을 원하는 사람들이 또 이곳에 모여들었을 터다. 그렇게 서촌은 요행이(?) 고유함과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신만의 색을 간직한 채 이전 것과 새로운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은 요즘 뜨는 동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서촌을 비롯해 연남동과 익선동, 성수와 을지가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몇몇 이른바 ‘핫하다’는 동네가 뜨고지고하는 사이, 사람들이 들고나는 사이, 이전 것과 새것이 섞이는 사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러야 오래도록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 한낮 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가을이었다. 

박지연 기자 yeon7201@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