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1 15:24 (수)
중대재해법 유예, 양형기준 상승했지만...
상태바
중대재해법 유예, 양형기준 상승했지만...
  • 김혜민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1.15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대재해법 유예로 인한 공백 사라져
경영계, 노동계 모두 불만
출처 : unsplash
출처 : unsplash

[소비라이프/김혜민 소비자기자] 지난 8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2일 중대재해법의 시행을 앞두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1명 이상 사망하는 등 산업재해 발생 시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기업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 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최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 법인의 경우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으며, 중대 재해의 경우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지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산업안전보건법 하에서 산업재해 발생 시 안전관리책임자가 처벌의 대상이었으나, 이법을 통해 경영책임자의 처벌이 명문화된 것이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 시기가 공포일로부터 3년 이후로 유예됐다. 또한 5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나 상시근로자 10명 미만인 소상공인과 학교, 버스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일부 유예되면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산업안전보건법 범죄의 양형기준 상향이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의 공백을 메우게 된 셈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권고 형량 범위를 기존 징역 10개월~3년 6개월에서 징역 2년~5년으로 대폭 강화했다. 죄질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까지, 다수범이거나 5년 이내 재범을 저지른 경우에는 최대 징역 10년 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양형위는 거액의 공탁금을 내서 감경을 받거나 피해자와의 합의 등 사고 책임을 사후에 수습하지 못하도록 '상당 금액 공탁' 감경인자를 삭제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사전에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도록 했다.

중대재해법 통과에 이어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경영계는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사업자 의무 규정이 추상적이고 처벌이 너무 과해 경영 리스크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산업계는 산업 재해에 대한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다. 산업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노력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의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 것이지, 당장 눈앞의 효과만을 위해 경영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 의지를 꺾는 것이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지방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관리자 같은 직접 관리자보다 사업주인 본인이 더 강한 처벌을 받게 되고, 하청을 내준 다른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업체의 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처벌에 대한 부담감에 하청 계약을 줄이고 해외 기업에 이를 맡기거나 차라리 생산 설비를 자동화하여 대체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1년 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수위까지 높이면 경영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우리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해외로 기업이나 인재가 유출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던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등 소상공인들이 이번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강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전사고는 오히려 안전시설 및 관리감독 예산이 적고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더 잘 발생한다. 따라서 환경이 열악한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반면, 이에 앞서 지난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자 산업 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에 "죽음에도 차별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여전히 낮은 처벌 수준과 처벌 대상을 대폭 줄인 것에 대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대재해 차별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들은 "국회와 기업, 공무원이 안전을 그들만의 이익 구조로만 생각한다"며 "국민들 수천 명이 죽고 다치는데도 국민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고, 강한 처벌을 원하는 여론을 무시하는 태도"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노동계 또한 양형위원회의 조치에 유감을 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양형위 조치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기본 범죄의 징역 형량도 1년~2년 6개월로, 여전히 전체 형량에 대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양형기준 상향 조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3년 이하의 징역은 집행유예가 가능하고,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산업 재해 책임자가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있고 양형위도 형량 상향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양형기준을 높인 것이며, 의결 시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양형기준을 의결하면 너무 늦다고 판단해 이번에 의결한 것"이라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