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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호]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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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호]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
  • 이소라 기자
  • 승인 2020.08.06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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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 기반, 자발적 조기은퇴(Retire Early)를 꿈꾸는 사람들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과도하게 저축하는 성향의 파이어족

[소비라이프/이소라 기자] 최근 수년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조어 중 가장 많이 사용됐던 단어가 ‘욜로(YOLO)’이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만 따서 ‘한 번뿐인 인생 맘껏 즐겨보자’라는 의미다. 욜로족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와 반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이들이 바로 ‘파이어(FIRE)족’이다. 대부분 고소득·고학력 전문직인 파이어족은 20대 직장 생활 초기부터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과도하게 저축에 매달린다. 40대 초반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은행 빚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상한 파이어족
파이어족이라는 용어와 사회현상은 미국 사회에서 처음 대두됐다. 2018년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균 이상 소득을 올리는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극단적인 절약으로 조기 은퇴하자’는 ‘파이어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어족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24~39세)가 주축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다. 전후의 혼란과 가난, 그리고 고도 경제성장을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의 가치관이 성장 과정에서 부분적으로나마 투영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이들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금융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일찌감치 노출된 이들은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직장 내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해지자 자산 마련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자산운용사 ‘티로프라이스’의 자료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근로자 중 65세 전에 은퇴를 기대하는 응답자 비율은 43%에 달했다. 이는 그 전 세대인 X세대(40~55세)의 35%보다 훨씬 높다.

파이어족의 특징은 극단적인 저축과 소비 억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소개한 파이어족은 돈을 쓰기 않기 위해 자린고비 생활을 한다. 소득이 높고 안정된 직업을 가졌어도 작은 집에 살거나 오래된 차를 탄다. 먹거리를 살 때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사거나 스스로 재배하기도 한다. 파이어족은 이렇게 아낀 돈을 저축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 결과 돈을 저축하는 밀레니얼 세대 중 10만 달러(약 1억2,000만 원) 이상 모은 비율이 25%에 달했다.

파이어족, 현실성 있는 삶인가?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은 노후자금과 근검절약이다. 은퇴 후엔 확실한 수입원이 없다보니 매우 체계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계획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발생하는 비용까지 충분히 계산해야 한다

미국 파이어족들의 평균 노후자금 목표 금액은 약 11억~22억 원 정도이다. 이 돈을 활용해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얻은 연 5~6% 수익금을 노후 생활비로 사용한다. 이들은 경제 공부 및 금융시장 동향에 관심이 많다. 금융전문가나 은행원의 말을 믿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금융상품을 고르기 위해 모든 인맥과 정보를 활용한다. 세상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며, 발 빠른 투자로 수익을 가져가려 한다. 확실한 정보라면 주식시장에서 단타 매매도 망설이지 않는다.

국내에도 수입의 70% 이상을 저축하며 극도의 자린고비 생활을 강행하는 파이어족이 있다. 이들은 저축은 물론 투잡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투잡족이 경제적 이유만으로 여러 직업을 병행하는 경향이 짙었다면 최근에는 부업의 개념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기계발·자아실현 투잡족을 자처한다. 오히려 투잡 하는 시간을 즐겁게 여긴다. 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신한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2020’에 따르면 2019년 투잡족은 10.2%로 2018년(8.1%)보다 1.3배 늘어났다. 경제활동자 10명 중 1명은 투잡족인 셈이다. 파이어족을 자처하는 직장인 이 씨는 “투잡이 힘들기는 하지만 젊을 때 고생을 좀 더 하면 나중에 더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언젠가 달라질 미래를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이 즐겁게 느껴진다”라고 전했다.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이 늘고 있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3,634만 원이며, 대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은 6,487만 원이다. 신입직원 연봉은 대기업이 3,855만 원이지만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고 월세, 교통비, 식비만 해도 월급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금전적 안정을 원하며 조기 은퇴를 하는 것이 오히려 재무적 위험을 키우는 모순을 자초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가 상승이나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의료비 등이 발생한 경우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무작정 파이어족을 따라하기보다 사람마다 처한 경제적 상황이 모두 다르므로 자신에게 맞는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퇴 후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자수익에 너무 의존할 경우 금융시장의 상황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소득 직종이 아닌 이상 절약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어렵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결국 성공적인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무작정 은퇴 시기를 앞당기기보다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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