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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호] 졸업·입학 선물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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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호] 졸업·입학 선물 ‘격세지감’
  • 서선미 기자
  • 승인 2019.03.13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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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전 ‘자장면 한 그릇’…지금은 ‘스마트폰’ 대세
 

[소비라이프 / 서선미 기자]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다. 이제 막 입학하는 학생들은 새로운 학교에서 설레는 생활을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입학 시즌이면 친척과 지인들은 격려와 애정을 담아 선물을 건넸다. 그래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입학 선물을 살펴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요즘은 어떤 선물들로 시대 읽기가 가능할까?

선물에 ‘격려’ 메시지 담아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이를 둔 부모라면 본인의 어깨 너비보다 큰 가방을 메고 걷는 아이의 가방보다 ‘학생’이라는 말 자체가 그 작은 몸에 너무 크게 느껴진다. 잡았던 손을 놓은 아이가 교정을 가로 질러 교실에 들어서는 것까지 지켜봐야만 안심이 되는 학부모들은 당분간은 그렇게 뭉클한 아침을 경험한다.

가방이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부모지심(父母之心)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몇 년 후면 해지고 때 탈 것에 불과한 물건에 “이제 다 키웠다”는 안도감은 물론 이제 막 들어 선 “배움의 길이 가뿐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생에겐 가방, 중·고등학생에겐 스마트 기기
요즘에도 가방은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가장 인기 있는 선물’ 중 하나이다. 2000년대 초에는 당시 인기가 많던 ‘포켓몬스터’나 ‘헬로키티’ 등의 유명 캐릭터 가방이 많았다. 가격은 5만원 미만으로, 차량 운전자의 눈에 잘 띄는 원색에 어깨가 아프지 않도록 쿠션 기능의 어깨끈이 달린 가방들이 인기를 끌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중·고교 신입생들에게는 입학을 기념해 스마트폰을 새 것으로 바꿔주거나 전자수첩, 노트북 등을 선물한다. 간혹 고전집이나 전집을 선물하며 학업 분위기를 북돋는 경우도 있다. 대학 신입생에겐 제출하게 될 과제를 생각해 주로 노트북을 많이 선물하는 편이다. 여성의 경우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향수를 선물하거나 대학 생활을 예비 사회생활로 여겨 구두나 옷, 가방, 메이크업 세트를 선물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는 수능 시험을 마치자마자 성형 수술로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교 입학 선물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다. 그 외에 자유로워진 시간을 잘 관리하라는 의미로 시계를 선물하기도 한다.

자장면 ‘한 그릇’으로 만족하던 때도
경제가 발달하고 이동통신·컴퓨터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된 지금 입학 시즌 소비시장은 다채로워졌다. 학교생활에 쓰이는 제품들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대학 입학생들은 간혹 ‘성형 수술’에 보다 후한 점수를 주기도 한다.

경제가 어려웠던 80년대 이전에는 자장면 한 그릇에 만족하기도 했다. 살림살이 팍팍한 것이 비단 ‘내 집’뿐만은 아니어서 미안해할 필요도, 괜한 비교 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그 시절 졸업식의 주인공이었던 지금의 중·노년층들은 그날의 특별함과 가족 간 화목했던 ‘행복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자 ‘졸업선물’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벨벳으로 감싸 고급스런 느낌의 졸업장을 보관하는 통은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받았던 가장 흔한 선물이었다. 이는 졸업장을 둘둘 말아 넣는 긴 원통형으로 두꺼운 종이나 나무로 만들었다. 그 당시 졸업장 통의 인기는, 아마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어서 ‘졸업’이라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뒀기 때문이었다.

가방이 귀하던 시절, 책을 가방이 아닌 보자기에 둘둘 말아 등에 메고 다니던 시대에 책가방은 초등학생에게 입이 벌어질 만큼 고급 입학 선물에 속했다. 그러나 그런 만큼 누구에게나 허락된 선물용품은 아니었다.

70년대부터는 만년필이 소위 ‘잘 사는 집’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잉크를 넣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만년필을 선망했는데, 이는 필기도구가 풍부하지 않았던 그 당시 시장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업에 정진하라는 의미를 담아 선물하던 만년필은 ‘파카’나 ‘파이롯트’라는 브랜드 중심으로 인기몰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워크맨·삐삐 인기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음반 시장의 주류는 ‘LP(Long Playing)’라고 불리는 레코드판이었는데 이는 매체 및 재생기의 크기가 워낙 커서 휴대용으로는 아예 불가능했다. 하지만 1979년, 일본 소니(Sony) 사가 일명 ‘워크맨(Walkman)’을 출시하면서 음반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워크맨은 가정의 카세트테이프 기기와는 다른 것으로 녹음 기능이 없는 재생 전용 기기였지만 점차 녹음과 라디오 청취가 가능해지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워크맨은 영어 열풍과 그 궤를 같이하며 붐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제품의 크기가 획기적으로 작기도 했거니와 모든 기능을 재생에 집중시킴으로써 고음질의 스테레오 음향 청취를 가능하게 했고, 탐색과 속도 조절, 녹음 기능을 이용해 어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즐겨 이용되며 중·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소니’를 비롯해 ‘아이와’와 ‘파나소닉’ 등의 제품이 주를 이뤘으나, 90년대 후반 등장한 CD 플레이어에 그 자리를 내 주게 된다.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삐삐’라는 기계는 무선호출기 중 하나였다. 삐삐에 전화번호가 찍히면 그 번호로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소통할 수 있었다. 이는 1990년대 폭발적인 수요로 1997년 가입자가 1,000만 대를 넘을 정도로 입학 선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상품이다.

디지털 시대, 전자 기기 ‘날개’
전국에 광통신망이 깔리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자 기기가 입학 선물로 자리 잡게 된다. 여대생들에게는 메이크업 세트나 명품 가방도 인기였지만 대세는 역시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등으로 비용은 대부분 30~40만 원을 훌쩍 넘었다.

2000년대부터 휴대폰의 사용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삼성전자의 폴더폰 형식인 애니콜 휴대폰이 인기를 끌었으며 연이어 출시된 벤츠폰, 가로본능폰도 신 강자로 떠올랐다. 특히 휴대폰 화면을 회전시켜 가로 배치할 수 있는 가로본능폰은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디지털 세대답게 IT 기기에 친숙한 2000년대 말 학생들은 PMP, 전자사전, MP3, 노트북 등을 최고의 입학 선물로 선호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들은 다소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현재에도 입학 선물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며 아직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IT 기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효용성도 더 높아진 2010년대에 들어서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이 입학 선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이는 인터넷 이용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강점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며,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비싼 비용이 드는 이들의 인기는 입학시장에서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 부담 없고 마음 담고 있으면 충분해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것은 행복한 전통 문화 중 하나다. 그러나 선물의 본질이 물질에만 가치를 두는 사회 분위기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상업적인 꼼수에, ‘다들 이렇게 하는데…’ 라는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다면 선물의 본질인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이유 없이 마음 상하거나 주고도 미안해지는 이상한 분위기만 조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의 기쁜 마음과 받는 사람의 고마운 마음을 모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그것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하나의 가치를 선물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자녀나 조카가 있다면 조금씩 쌓이는 용돈을 관리해볼 수 있게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돈’이라는 실체보다는 ‘경제’라는 관념을 길러주기에 제격이다. 혹은 소소한 기부를 권유해봄으로써 ‘소유’에 치우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반갑다 친구야’는 한겨레신문사와 연계, 캄보디아 등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가방을 기부 받고 있다(<반갑다 친구야>: 경북 영덕군 영덕읍 강변길 186). 매년 입학 시즌이 되면 활발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고학년이 돼서 필요 없게 된 가방이나 안 쓰는 가방이 있다면 언제든 기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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