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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호] 저녁 있는 삶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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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호] 저녁 있는 삶의 ‘동상이몽’
  • 서선미 기자
  • 승인 2018.08.06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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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기대 vs 고용불안…온도차 극명

[소비라이프 / 서선미 기자]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일주일에 최대 52시간까지만 일해야 하는 ‘주52시간 근무’가 본격 시행됐다. 모두가 ‘워라밸’에 다가서나 싶었지만 막상 달라진 일터의 분위기는 누군가에게 ‘저녁 있는 삶’을 가져다 준 한편, 또 누군가에게는 ‘일자리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삶 균형이 삶의 질 높여

‘주52시간 근무’는 지난 2월 28일 통과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한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따른 것이다. 이로써 주 최대 근로시간은 ‘평일 40시간+평일 연장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16시간 줄게 됐다.

정부가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저녁 있는 삶’을 장려하는 것은 ‘워라밸’이라고 불리는 국민들의 Work-Life Balance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즉 일과 삶의 균형이 전제될 때 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OECD는 매년 삶의 질 지표(Better Life Index)를 매년 구축함으로써 어느 나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는데, 한국의 장시간근로자 비중 20.84%는 OECD 회원국들 중 4번째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보다 장시간근로자 비중이 높은 나라는 일본(21.81%), 멕시코(29.48%), 터키(33.77%) 순이며, OECD 회원국들의 평균적인 장시간근로자 비중은 12.62%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장시간근로자 비중’과 ‘여가 등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으로 측정되는 Work-Life Balance에서도 한국은 OECD의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원천적 소외 직종도 있어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의 적용대상은 우선 공공기관과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체다. 그 다음으로는 50~299인 기업이 2020년 1월부터, 2021년 7월부터는 5~49인 기업이 순차적으로 적용받게 된다. 작은 회사에 다니거나 연장근로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특례업종의 사람들은 아예 적용대상에서 빠졌다. 이는 3년 후인 2021년 7월부터 노동 시간 단축이 전면 시행돼도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에서 일하거나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의 일’이라는 뜻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워라밸을 기대하는 근로자와 줄어드는 근무시간만큼 수입을 걱정하는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온도차는 극명하다. 한쪽에서는 이른바 ‘칼 퇴근’이 수월해져 여가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반면, 근로시간 단축과 업무량은 별개의 문제라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이들도 있다.

우선 근로시간 단축을 반기는 이들은 일하는 시간이 단축되는 대신 늘어난 여유 시간에 기대감을 갖는 입장이다. 이는 야근과 특근으로 점철됐던 기존의 평일과는 달리 앞으로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판단에서 가능해진다.

그러나 부정적인 목소리 또한 높은데, 이는 근로시간이 줄었더라도 업무량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는 해석으로 가능해진다. 오히려 회사에서 모자랐던 근무시간을 퇴근 후 집에서 보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더 크다. 즉 모자란 근무시간을 대신해 효율성을 강조하느라 오히려 근로자들의 근로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수 있으며, 특근이 불가능해져 임금감소가 예견되면서 이직을 고려하는 이들도 늘어날 거라는 입장이다.

엇갈리는 희비 속 적응 숙제 남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저녁 있는 삶’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가져다 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으며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룩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개정의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를 통한 고용창출의 면에서도 낙관하는 분위기다. 이는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에 상응하는 임금은 낮아질 것이며, 결국 회사는 남는 임금과 시간으로 노동자를 더 고용하게 될 거라는 분석에서 나온다.

아울러 소비 증진 효과도 장점으로 꼽는다. 쓸 돈은 있지만 돈 쓸 시간이 없는 근로자들이 여가, 여행, 운동 등을 즐기게 되면서 소비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제도에 맞춰진 여가 산업, 관광 산업, 취미 및 교육 산업 등이 활성화되면 경제 발전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기업들의 유연근로시스템 구축이 ERP, 스마트팩토리, 키오스크 도입을 더욱 가속화시키면 신산업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선진화된 기업문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도 포괄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한편, 절대적인 근로시간을 보장 받고자 하지만 근로시간이 축소되어 ‘봉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소위 ‘돈 없는 저녁’이 무슨 의미냐는 입장이다.

더욱이 모든 산업과 직종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는 동일한 산업 내에도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가 용이한 직종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종도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다. 즉 ‘시간’을 기준으로 일하는 직종이 있지만, ‘과업’을 중심으로 일하는 직종이 있다는 분석이다.

업무 시간이 단축되면 생산성이 낮아져 중장기적으로는 대외 경쟁력이 약화될 거라는 우려도 있다.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는 오히려 더욱 가혹한 일자리 위축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먼저 제도를 도입한 대기업에 반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상실감 및 상대적 근로조건 악화의 문제도 부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조직 내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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