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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퍼스널브랜딩 응원가]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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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퍼스널브랜딩 응원가]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김정응 FN executive search 부사장
  • 승인 2018.02.2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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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 / 김정응 FN executive search 부사장, 브랜딩 작가]   지인 중의 한 사람은 유독 자서전에 비판적인 의견을 보이는 자서전 반대론자이다.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평전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를 댄다. 남들이 써준 평전이 나올 정도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나 자료는 넘친다는 주장이다. 나는 극단의 관점이 아니냐는 반박을 하며 자서전의 긍정적인 측면에 편을 들고 있다.

개인 브랜딩 관점으로 보면 어느 인물의 자서전이야 말로 일종의 보물섬이다. 한 사람의 Total 브랜드 캠페인을 손에 쥐는 격이다. 그 사람의 인생 갈증이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법을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생애를 오롯이 그려볼 수 있다. 영향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깨달음의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열정은 무엇이었는가?

▲ (사진: 김정응 FN executive search 부사장/브랜딩 작가)

그러한 면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은 독특하다. 제목도 그의 묘비명만큼이나 예사롭지 않다. 그 어느 자서전보다 깨달음이나 시사하는 바가 강력하다. 개인 브랜딩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소들이 많다. 그의 발자취를 크게 세 개의 키워드로 살펴본다.

첫째, 여행
그는 끝없는 여행을 통하여 자유를 향한 그의 목마름을 해소했다. 지중해에서부터 극동의 일본까지 세계 거의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그 결과가 <스페인 여행> <러시아 여행>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같은 여러 권의 여행기로 남았다. 문장 곳곳에서는 그의 여행 마음을 그림 보듯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신이 밟은 여행코스를 따라 걷는다. 지칠 줄 모르는 눈으로 바위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구불구불한 골짜기로 들어가 불타는 산꼭대기들을 마음에 새겼다.

혼령은 그렇게 온다. 태풍과 지진과 불 다음에 부드럽고 서늘한 산들바람. 우리들이 사는 시대에도 그것은 그렇게 오리라. “여기가 내 고치 속이랍니다.” “나는 애벌레처럼 스스로 이 곳에 갇혀 삽니다. 나는 나비가 될 날을 기다리죠.”』

둘째, 사람
“나는 평생 위대한 영웅적 인물들의 영향을 받았다. 어쩌다가 영웅성과 성스러움을 겸비한 인물이 나타난다면, 그는 인간의 본보기였다. 영웅이나 성자가 될 능력이 없었던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무능함에 대한 위안을 조금이나마 얻으려고 시도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난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실존 인물이자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르바를 만난다. 자유인을 상징하는 그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찾게 된다.

이 중에서 붓타 그리고 니체와의 만남에 관한 스토리를 들어본다. 먼저 붓다의 경우다.
『나는 붓다에 탐닉했었다. 내 마음은 노란 해바라기요 태양은 붓다였으며, 나는 떠오르고 정상에 이르렀다가 사라지는 그를 지켜보았다. “물은 잠들지만, 영혼은 잠들지 않아. 언젠가 어느 루멜리아(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일부 지역)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내 영혼이 불교의 평온함에 잠겨 행복에 넘치는 잠에 빠져 지내던 터였다. 꿈을 꾸면서 그 꿈을 의식할 때 그러듯이, 좋거나 나쁘거나 꿈속에서 보는 모든 상황은 잠이 깨면 달아나 버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쁨이나 슬픔이나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듯이, 평온한 마음으로 기쁨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나는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세상을 구경했다.』

니체와의 처음 만남은 유머스럽기까지 하다. 나중에는 용광로처럼 빠져들었지만 말이다. 그는 그것이 그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니 그는 실제로 니체와 많이 닮았다.

『어느 날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독서에 몰두했던 나에게 한 소녀가 다가왔다. 그녀는 어떤 남자의 사진이 실린 책을 손에 들었는데, 밑에 적힌 이름이 보이지 않게끔 손으로 가린 채였다. 허리를 굽히고 경이에 찬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녀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그럴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이건 당신이에요…… 아주 똑같아요! 이마와 짙은 눈썹, 푹 들어간 눈을 봐요. 이 사람은 큼직한 콧수염이 축 늘어졌는데 당신은 수염이 없다는 점만 달라요.” 
나는 깜짝 놀라서 사진을 보았다.
“그럼, 이 사람이 누구죠?” 이름을 보려고 소녀의 손을 밀어 내려 하며 내가 물었다.
“보면 몰라요? 이 사람 처음 보세요? 니체예요!”
니체라니! 얘기는 들었지만 나는 아직 그가 쓴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었다.
“<비극의 탄생>이나 <차라투스트라>도 안 읽어 봤어요? 영원회귀(永遠回歸)나 초인에 대해서도요?”
“하나도 못 읽었어요, 하나도” 나는 창피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잠깐 기다려요!”라고 소리치더니 그녀는 잽싸게 달아났다. 잠시 후에 그녀는 <차라투스트라>를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보세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두뇌가 있기나 한지, 그리고 그 두뇌가 굶주렸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건 당신의 두뇌를 위한 견실하고 용맹한 양식이에요!”』

셋째, 인생.
그는 인생을 수시로 정의한다. 그에게는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한 3단계 투쟁이 있었다. 1단계 투쟁은 터키로부터의 해방이고 2단계 투쟁은 인간 내부의 무지, 악, 공포 같은 것에서의 해방이었다. 나아가 3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 즉 종교로부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서 백 살이나 먹었다는 고목을 찾아가 만나고 싶었다. 그의 오두막으로 찾아가니, 그는 양지쪽에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들으니 백 년을 사셨다더군요, 백 년을 살고 보니 인생이 어떻던가요?”
그는 눈썹이 없는 불타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얘야, 인생이란 냉수 한 그릇과 같더구나”
“아직도 목이 마르신 가요, 할아버지? “
그는 저주를 내리려는 듯 손을 높이 들었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는 생전에 묘비명을 써 놓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서전은 그의 묘비명과 닮았다. 경쟁력이란 이런 묘비명과 자서전을 쓰는 힘이다. 우리도 나만의 자서전 쓰기에 도전해서 ‘자기다움’의 보물을 풍성하게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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