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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호]삶의 마침표를 준비할 권리 웰다잉(Well-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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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호]삶의 마침표를 준비할 권리 웰다잉(Well-Dying)
  • 특별취재팀
  • 승인 2017.07.0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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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 위한 웰다잉법, 8월 시행 앞둬....의료계 우려

[소비라이프 / 특별취재팀]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웰빙(Well-Being)’이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다면 최근에는 증가하는 가족 해체와 1인 가구의 확산으로 ‘고독사’가 증가하며 품위 있는 죽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이 중요한 새로운 사회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웰다잉은 그동안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했던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수면으로 끌어 올려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말한다.
 
지난해 정부가 제정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일부 법령이 오는 8월 4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웰다잉은 사회적 이슈로 계속 떠오르고 있다.
 
존엄한 죽음 위한 웰다잉법, 8월 시행 앞둬
 
정부는 지난해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일명 ‘웰다잉법’, 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오는 8월 4일부터 호스피스 관련법이 우선 시행되며 연명의료결정 관련법은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는 이면에는 지난 2009년 대법원이 국내 최초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린 ‘김 할머니 사건’이 존재했다. 당시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된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 치료를 받았지만, ‘김 할머니’의 자녀들은 “평소 어머니께서 존엄한 죽음을 원했다”며 병원 측에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연명 치료를 중단한다면 ‘김 할머니’의 심장과 폐는 정지돼 사망에 이르게 되고 이는 병원 쪽에 살인죄가 부담될 우려가 있어 자녀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김 할머니’의 가족과 병원은 1년여의 걸친 법정 공방을 펼쳤고 대법원은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 중단은 생명 존중의 헌법 이념에 비춰 신중히 판단해야 하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할 때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이 경우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시하며 자녀들의 연명 치료 중단 요구가 타당하다고 
 
선고했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 “환자는 사전의료지시서 등의 방법으로 미리 의사를 밝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평소 가치관, 신념 등에 비춰 객관적으로 추정적 의사가 인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김 할머니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되면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인 환자를 대상으로 담당의사와 전문의 1명이 함께 임종과정 여부를 판단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사전에 환자가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해 의사를 밝혀둔 경우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연명의료계획서가 없는 경우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 있고 담당의사 등의 확인을 거친 때에는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의료계에서는 우려의 표시도 있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의료계에서는 아직 우려의 뜻을 표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등 13개 학회는 <연명의료법>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제도가 정착되기 전까지 처벌조항은 유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관한 공동성명서를 내고 △연명의료 결정과 이행에 대한 행정지침 마련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요구하는 심폐소생술, 정부 가이드라인의 심폐소생술금지(DNR; do-not-resuscitate) 규정 등과 연명의료결정법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행정해석 △비윤리적 규제 철폐 △담당 의사 자격 제한 제고 △진료 및 돌봄의 질 보장 △환자가 원할 경우 대리인 지정 허용 △과도한 법정 서식 및 처벌규정 개선으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행정지침 마련 등을 제시했다. 
 
학회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입법 취지는 적용대상인 말기 환자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보다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의료를 받을 수 있고 본인이 원하면 더 이상의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라고 말하며 “하지만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은 이런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과 방식으로 구성된 부분이 있고 이번에 발표된 하위법령 입법안 역시 이를 보완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달 20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대표의원 강창일, 안재근 의원)의 주최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활성화의 기회인가, 위기인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연고자의 경우나 치료거부권과 충돌할 경우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대안으로 의료결정과 관련된 의료인 대리 지정 절차를 확대 규정할 것을 제시했다. 
 
또한 이석배 단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명의료와 호스피스가 혼재된 미흡한 법”이라 말했다. 그는 “이 법은 의사의 직업윤리에 반한다”며 법 시행에 대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김대균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보험·정책이사는 호스피스 기반마련과 지자체 지원 강화 등을 주장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양성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국가호스피스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개선 및 보완할 것임을 약속했다.  
 
환자가족과 의사, ‘웰다잉’ 점수 낮게 봐
 
웰다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편안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스마트건강경영전략연구실는 지난 5월 29일 개최된 ‘한국형 호스피스완화의료 모형 개발 및 구축방안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한국 사회의 웰다잉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58.3점에 그쳤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가 여론조사기관 월드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지난해 8월 22일부터 9월 13일까지 일반인 1,241명, 환자 1,001명, 환자가족 1,008명(면접조사), 의료진 928명을 대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 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누구나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다가 편안하고 아름답게 임종하는 사회를 100점, 모두가 불행하고 무의미하게 살다가 괴롭고 비참하게 임종하는 사회를 0점이라고 할 때, 현재 한국인의 임종 관련 상황은 몇 점인가’라고 질문한 결과 전체 평균점수는 58.3점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65점으로, 환자는 59.9점으로 답해 평균보다 높았으며 환자가족은 58.1점, 의사 47.7점으로 평균보다 낮았다. 조사 결과 환자보다는 환자가족과 의사 등 환자의 주변인이 한국의 웰다잉 점수를 낮게 측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위해 중요한 요인’에 대한 질문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일반인 22.4%, 환자 22.7%가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았다. 반면 의사 31.9%, 환자가족 25.9%는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삶과 함께 있는 것’을 중요한 요인이라고 응답해 차이를 나타냈다. 
 
△‘간호사에 의한 간병’에 대해서 환자 86%, 일반인 83.5%, 의사 75.6%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환자가족은 이보다 높은 89.1%로 응답했다. 반면 △‘간병도우미 지원’의 필요성 대해서는 의사 96.1%, 환자가족 94.9%, 일반인 93.4%, 환자 93.1% 순으로 응답해 의사는 간병도우미를, 환자가족은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 웰다잉 교육 프로그램 운영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민에게 ‘웰다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웰다잉’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는 전문가를 통해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2007년부터 ‘아름다운 인생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달 21일까지 시행되는 28기 수업에서는 △생명과 사랑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이해 △연명의료에서의 자기결정권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아름다운 관계 △의미 있는 삶 등의 특강이 이뤄지며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는 입관체험을 통해 남은 삶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법과 내년 2월에 시행되는 연명의료법에 중점을 두고 참가자들에게 안내한다.
 
경기도 수원시는 지난해부터 ‘인생의 아름다운 쉼표, 품격있는 마침표’를 주제로 하는 ‘웰다잉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웰다잉 프로젝트’는 ‘단기 참여프로그램’과 ‘장기 집중 프로그램’으로 나눠 실시된다. ‘단기 참여프로그램’은 오는 9월까지 ‘웰다잉’을 주제로 이영만 한국웰다잉협회 이사의 강의와 연화장 시설 견학, 문화공연 등이 운영된다. ‘장기 집중 프로그램’은 10월 11일부터 11월 8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수원시청과 연화장에서 강의와 삶을 돌아보는 ‘인생 그래프’ 그리기, ‘나만의 엔딩노트’·‘버킷리스트’ 작성하기, 연화장 견학 등을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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