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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퍼스널브랜딩 응원가] 나는 과연 신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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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퍼스널브랜딩 응원가] 나는 과연 신독할 수 있을까?
  • 김정응 FN executive search 부사장
  • 승인 2017.04.06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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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 / 김정응 퍼스널 브랜딩 컨설턴트 , FN executive search 부사장]  카카오톡을 켜면 프로필 사진과 함께 상태메시지라는 것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현재를 대변하는 의미를 지닌 글귀를 적어놓는다. 또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뭐라도 적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상태메시지에 아무 말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상태메시지가 자기 PR의 유용한 수단이라고 열을 올리며 나를 설득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 (사진: 김정응 FN executive search 부사장/퍼스널 브랜딩 컨설턴트)

퍼스널 브랜딩 관점으로 보면 상태메시지는 한 사람의 훌륭한 개인 슬로건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도 뭔가를 적어 보려고 하면 쉽지가 않았다. 마치 글을 쓰려고 펜을 들면 막막한 것처럼 말이다. 핸드폰에 저장된 지인들의 상태메시지를 찬찬히 흝어보았다. 자신의 희망사항에서부터 고사성어 그리고 명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즈음에 나는 예상치 못한 주차위반 범칙금 통지서를 하나 받았다. 이태원에 있는 매운 맛으로 유명하다는 냉면집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주차 시설이 열악했다. 가까이에 있는 공용주차장은 빈 자리가 없었고 사설 주차장도 거리가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망설이다가 냉면집 앞 도로에 주차를 했다. 토요일 오후라서 주차단속을 하지 않을 거라는 나만의 편리한 판단을 한 것이다.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CCTV가 24시간 그 자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누군가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주차위반 통지서를 받고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한심했다. 반성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카카오톡의 상태메시지를 그러한 방향으로 작성하게 되었다. 이것 저것을 놓고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상태메시지를 선택했다.

“나는 과연 신독(愼獨)할 수 있을까?”.  ‘신독’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내 상태메세지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신독이 무슨 뜻이냐?”라는 단순한 물음에서부터 “겸손을 위장한 잘난 척 아니냐?”는 살가운 비아냥(?)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반응이 나온 이유는 내가 뒤늦게나마 상태메시지를 올린 것에 대한 인사치레 성격도 있겠지만 아마도 ‘신독’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독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거니와 신독의 의미는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성인군자에게나 어울리는 개념이다. 주차위반이나 음주운전 등 소인배 행동을 일삼던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를 선택했으니, 지인들의 아우성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몇 년 전 ‘디지털’이라는 주제의 어느 조찬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전망 및 대책 등에 관한 주제의 토론이 이어졌다. 여러 의견이 오고 갔지만, 그 중에서도 디지털 시대에 ‘편리하지만 결코 편안하지는 않은 시대’라는 성격을 부여한 주제가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도 적당히 살아왔던 지난 날들, 한편으로 서류와 문서, 그리고 정보를 얻고 전달하기 위해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다녀야 했던 시대가 어느 날 클릭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얻게 된 디지털 시대로 바뀌어 감에 따라 그 편리함에 얼마나 환호했던가? 그런데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편리함을 얻은 반면에 또한 불안함에 마음을 내어주게 되었다.    

어느 정치인은 정치인의 생활을 ‘어항 속 금붕어처럼 환히 공개된 생활’이라고 표현했다. 디지털 시대인 요즈음에는 정치인만 금붕어 생활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이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어디로 숨을 수도 없고 무엇을 숨길 수도 없다. 눈 한 번 잘못 깜빡이거나 지느러미 한 번 잘못 흔들면 훤히 드러나는 붕어처럼 우리의 손짓 하나도 온 국민이 아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혹여 억울한 사연이 있어 몸부림을 쳐도 디지털은 정교한 거미줄처럼 더욱 옥죌 뿐이다.

디지털 시대를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24시간 생방송을 하고 있는 사회’라고 규정한 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핸드폰, CCTV, 블랙박스 등으로 중무장한 현대인의 정보역량은 80년대 FBI 요원보다 뛰어나다고 하지 않는가? 모두가 FBI 요원 이상의 정보무기를 가진 이 시대의 우리 일상은 낱낱이 발가벗겨져 이제 내 왼손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의 오른손도 알게 된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늘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아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이고 몇 달 전에 무엇을 했었는지 아는 것조차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휴대폰은 압권이다. 사람들이 서로 특종 하나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늘 녹화, 도청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휴대폰은 이제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그림자처럼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면서 스스로의 정보를 밖으로 유출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이런 휴대폰은 엄밀히 말해 내 돈 주고 내가 산 내 물건인데도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작성한 댓글 하나가 무한 복제되어 삽시간에 전 지구인과 공유되는 세상이다. 이쯤 되면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의 셀카 사진 유출을 걱정할 게재가 아니다.

특히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의 편리함을 쫓아 겨우겨우 자판이나 터치패드 정도와 소통하는 나에게 디지털의 기억력과 신속한 정보력은 당혹을 넘어 재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잊혀질 권리’라는 주장이 고마운 것은 나뿐일까?

구본권은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프라이버시 권리와 정보사회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프라이버시 권리가 있는지조차 생각지 않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의 이익까지 보호해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 높은 경지의 ‘신독’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나 같은 소인배도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필수 가치가 되어 버렸다. 이를 ‘디지털 신독’이라 하면 너무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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