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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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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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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만큼 한이 많은 민족도 없을 것이다. 통한의 세월을 보내며 가슴앓이를 하는 이산가족들에겐 더욱 그렇다. 6·25전쟁이 낳은 비극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일제로부터의 광복과 전쟁을 앞뒤로 만들어진 노래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사선을 넘나든 전쟁터의 죽음과 전우애를 그린 <전우야 잘 자라>, 피난민들 애환이 담긴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경상도 아가씨> 등이 그런 곡들이다. <꿈에 본 내 고향> <단장의 미아리 고개> <판문점의 달밤> <삼팔선의 봄> <한 많은 대동강>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도 피난민이나 실향민들 아픔과 고통의 정서를 담고 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충돌이 시작됐음을 말해주는 <가거라 삼팔선> <달도 하나 해도 하나>도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의 ‘바람과 응어리’들이 음악으로 승화된 곡들이다. 이런 가요들은 우리들 삶 속으로 파고들어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에 그 같은 흐름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잃어버린 30년>도 그런 류의 대중가요다.

박건호 작사, 남국인 작곡, 설운도 노래인 이 곡은 4분의 4박자 트로트풍이다. D마이너로 시작, 애잔한 느낌을 준다.

노래의 탄생스토리가 꽤 재미있다. 1983년 어느 날 밤이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으로 KBS(한국방송)에서 이산가족 특별생방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작사가인 박건호 씨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가수 설운도의 매니저(안태섭 씨)가 느닷없이 다이얼을 돌린 것이다. 전화는 ‘30분 뒤 박 선생 집 앞으로 갈테니 나올 준비를 하고 있어라’는 내용이었다.

신혼 초였던 박 씨는 미처 답할 겨를도 없이 끊어져버린 전화를 내려놓고 나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는 궁금한 나머지 일단 옷을 차려입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심야에 만나자고 할까?’ 박 씨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안 씨 운전기사로부터 인터폰을 통해 ‘빨리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시계바늘은 새벽 1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아들 임신으로 배가 남산만 했던 박 씨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져 쳐다봤다.

박 씨는 아내를 안심시킨 뒤 집 앞에 와있는 안 씨를 만나 승용차에 올랐다. 안 씨는 달리는 차안에서 박 씨에게 “노래가사 한 편을 급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안 씨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배경음악으로 쓸 것이다”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남국인 씨가 곡을 만들고 그의 부인 정은이 씨가 노랫말을 붙인 <어머니>란 노래의 가사만 바꾸면 된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그 무렵 KBS는 국가 공영방송으로서 만남을 꿈에 그려왔던 남북이산가족들 한을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처음엔 이 프로를 가볍게 시작했다. 그러나 시청자들 반응은 대단했다. 폭발적인 호응으로 몇 일간만 잡았던 이산가족 찾기 프로는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밤을 새어가면서까지 생방송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신문, 방송, 잡지 등 국내·외 언론매체에선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 얘기를 경쟁적으로 다뤘고 뒷얘기들도 연일 쏟아졌다.

방송카메라에 잡히는 이산가족들 만남은 한편의 드라마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격의 현장이었다. 전 국민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KBS는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감격적 장면에서 여가수 패티 김이 부른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백 뮤직으로 깔았다. 배경음악 속에 전파를 탄 이산가족들 상봉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하루밤새 만들어 녹음

설운도의 매니저인 안 씨는 이처럼 대히트 하고 있는 방송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일 것이라며 자신의 집으로 작곡가 박 씨를 승용차로 모신 것이다. ‘무명가수 설운도가 이 노래로 한방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작사가 박 씨를 찾는데 한몫 했다.

차는 어느 덧 서울 반포대교를 건너 흑석동에서 마주보이는 동부이촌동 안 씨의 아파트에 이르렀다. 안 씨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설운도의 노래 <어머니>를 들려줬다. <어머니>는 낙동강에서 사공으로 생활하던 부모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가요였다.

박 씨는 그 노래를 되풀이해서 들으며 노랫말을 떠올렸으나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흘러 날이 훤히 밝아왔다. TV에선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아나운서를 바꿔가며 밤새껏 진행되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샌 박 씨는 마침 30년 만에 만나는 한 실향민의 상봉장면을 보면서 <어머니>의 가사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와 ‘30년 세월’이란 말이 들어가는 노랫말을 가까스로 써냈다.

소파에 누워 충혈 된 눈으로 거실의 TV를 보던 매니저 안 씨는 완성된 가사를 보고 박수를 쳤다. 그 날 아침 녹음실에선 간밤에 만든 <잃어버린 30년>의 노래가 수록되고 있었다.

박 씨는 “날이 밝아도 잘 나오지 않던 노랫말이 <어머니> 노래의 첫 구절을 메모하자 그 다음부터는 술술 쉽게 풀려나왔다”고 회고하며 밤새 가사를 만드느라 피 말랐던 그 때를 떠올렸다.

북한에도 잘 알려져 

<잃어버린 30년>은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때마다 나갔고 가요계 선두에 서는 히트곡이 됐다. 특히 방송전파를 타면서 상종가를 친 이 노래는 북한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바람에 부산출신의 무명가수 설운도는 졸지에 유명 인기가수 대열에 섰다. <원점> <마음이 울적해서> <나침반> <여자 여자 여자> <누이> <다함께 차차차> 등 취입한 신곡들마다 대박이 터졌다.

설운도는 무명시절 ‘연말에 상은 안 받아도 좋으니 제발 무대에 서는 신인가수라도 돼 봤으면…’하는 희망을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있었다. 그는 영화배우 출신 부인과 결혼, 성공한 대형가수로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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