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파멸의 '불황 비상구' 불법다단계 집중 해부(1)
상태바
파멸의 '불황 비상구' 불법다단계 집중 해부(1)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9.04.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수들 유혹하는 ‘불법다단계’ 업체

물품 강권하고 세뇌교육에 감금까지

경기도 안양에 사는 정호덕 씨(30·가명). 그는 요즘 나날을 한숨 속에 보낸다. 지난해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졸지에 백수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뽑는 데가 없어 하루 해가 길기만 하다. 게다가 얼마 전 불법다단계업체에 속아 피해까지 당해 사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속 알이만 할 뿐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낼 입장이다.

그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올해 초 지하철을 타고 친구가 있는 사당역을 향했다. 우연히 지하철 문 옆에 붙은 휴대전화판매업체 광고를 봤다. 놀고 있는 처지라 눈에 확 들어왔다.

전화번호를 적어 이튿날 찾아갔다. 업체에서 ‘90만원 하는 휴대폰을 개통하라’고 해서 응했다. 그러면 수당과 함께 휴대폰 값도 입금해준다는 말을 믿어서였다.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과 팀을 이룬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지 않고 자신 역시 판매가 어렵고 앞날이 보이지 않아 그만 뒀다.

문제는 그 이후 불거졌다. 최근 통신사에서 ‘요금과 휴대폰 값이 밀렸다’는 전화가 왔다. 약속한 수당을 받기는커녕 쓰지도 않은 휴대폰 값과 통화료까지 물어주게 됐다. 업체에 연락해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물었지만 ‘모르는 일’이라며 오리발이었다. 결국 휴대폰 값과 요금을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박영식 씨(주유소 주유원·27·가명)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초 고향 벗(김정수·27·가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반갑다며 술 한 잔 하자’는 얘기였다.

부산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함께 다닌 둘은 대학부터 가는 길이 달랐다. 친구는 집이 어려워 전문대 졸업 뒤 건설현장을 맴돌다 지난해부터 부동산중개업소를 차려 운영했다.

둘은 다음 날 약속장소인 서울가락시장 전철역에서 만났다. 시장 안 좌판횟집으로 가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먹고사는 얘기를 나눴다. 직장에 취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박 씨는 주로 일자리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러기를 2시간. 술을 4병이나 마셨다. 꽤 취했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부동산중개업소를 접고 다단계판매업을 한다”면서 “수입이 좋으니 같이 하자”고 꼬드겼다. 주유소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박 씨는 솔깃했다. 술기운에 그만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길로 어딘가로 안내됐다. 큰 길 뒤의 어느 큰 창고였다. 입구엔 지키는 사람들이 여럿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불법다단계회사였다.

속았다는 걸 알았지만 때는 늦었다. 휴대폰을 비롯한 소지품을 몽땅 압수당했다. 맡겨두는 것이라고 했지만 빼앗다시피 했다. 그곳에 갇힌 채 밤을 꼬박 샜다. 그는 새벽녘에 소변을 보러간다며 둘러대고 그곳을 잽싸게 빠져나왔다.

며칠 뒤 알아본 결과 고향친구는 불법다단계업체에 빠져들어 자신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피라미드식 영업방식이어서 자신을 하부조직원으로 유인했다. 그들은 잠도 제우지 않은 채 제품을 강제로 사라며 밤새 세뇌교육을 시켰다.

박 씨는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제품을 사라는 압력을 받았다.

“창고 안엔 저처럼 끌려온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자신들한테 투자하고 몇 단계만 올라가면 월 500만원 수입이 보장된다며 유혹했다. 한쪽에선 대부업체 직원들이 컴퓨터를 두드리며 끌려온 사람들의 신용조회를 하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으라는 식이었다. 돈을 넣으면 팔 물건을 보내준다 했다. ‘어떤 제품이고 품질이 좋으냐?’고 물었지만 ‘투자액이나 회원등급에 따라 다르다. 다양한 생활용품을 파는 회사’란 말만 했다.”

박 씨가 돌아온 뒤 집에선 난리가 났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가봤자 붙잡을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신고가 하루에도 여러 건 들어와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박 씨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몸집이 좋은 친구 몇 명을 데리고 그곳을 찾아갔다. 창고는 비어 있었다. 경찰은 “피해신고가 많은데다 폭행, 감금이냐 아니냐, 제 발로 걸어 왔나, 강제로 왔느냐를 증명해야 한다. 업체들이 교묘히 법망을 빠져 나간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박 씨는 도망쳐 나왔기에 망정이지 크게 당할 뻔 했다. 친구가 야속했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어 꾹 참고 있다.

그는 여전히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서울 송파, 강남, 신대방 부근 포진

박 씨가 따라갔던 곳처럼 불법다단계업체의 교육장과 합숙소가 전국 곳곳에 있다. 특히 서울지역에 많다. 특히 가락시장을 비롯한 송파지역 일대와 강남지역, 역삼동, 신대방동 부근에 몰려 있다. 부산, 대구, 인천, 대전, 인천, 울산 등 광역시와 일부 중소도시에까지 포진해 있다. 서울 본사와 연결된 피라미드업체거나 신종다단계업체로 지방을 거점 삼아 파고드는 것이다.

놀고 있는 실직자, 주부,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이 그들의 ‘먹이 감’이다.

다단계업체가 몰려있는 서울 방이동지역의 한 식당주인은 “바로 옆 건물에도 300~400명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불법다단계회사가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연말 회사구조조정으로 백수가 된 구성민 씨(49·가명). 그는 올 들어 노동부 고용안정센터를 찾으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올 연초 평소 알고 지내던 사회친구로부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가 있다며 사업자 조 모 씨를 소개 받았다.

조 씨는 대뜸 “외국에서 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며 “투자를 하면 월 20%의 이자를 배당해준다”고 했다. 사업내용이 거창했다. 구 씨는 '다섯 달이면 원금을 뽑을 수 있겠다' 싶어 1년여 동안 1억6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 사이 조 씨는 태국에 풀 빌라사업을 시작한다며 또다시 투자자들을 무차별 끌어들였다.

함께 투자한 또 다른 피해자 김철환 씨(50·가명)는 “아내 몰래 9000만원을 투자했다. 일이 잘못돼 이제 카드로 돌려막는 것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건설사를 경영하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일거리가 없어 회사 문을 닫고 놀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재기할 때까지 쓸 생활비며 대학생 아들의 학비 낼 돈을 다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인력시장을 찾고 있지만 허탕 치는 날이 많아 백수나 다름없다. 

대형 신종 다단계 사기 사건도 기승 

고수익투자 사업을 미끼로 거액의 돈을 가로채는 대형 신종다단계사기사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럴싸한 사업가로 포장된 사기꾼들이 설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은 물론 대구, 인천 등지에서까지 대형사건이 터져 다단계 먹이사슬은 대상과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4조원이란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입혀 시끄러운 BMC사기사건이 대표적이다. 2004년 10월 대구에서 문을 연 이 회사는 전형적인 불법다단계회사다. 처음엔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건강보조기구를 사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산 안마기 등을 여관, 모텔, 찜질방 등에 설치하면 수익금을 배당해준다는 광고로 투자자들을 유인했다.

기구 값은 440만원. 기구를 사면 매일 3만5000원씩 배당금을 통장에 넣어준다고 했다. 약속대로 처음엔 몇 일간 배당금을 보내주며 안심시켰다. 돈이 척척 들어오자 투자자들은 업체를 믿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재미를 본 BMC의 검은 손은 전국으로 뻗쳤다. 서울, 인천, 부산 등지에서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지방망도 늘었다. 2006년까지 10곳이었던 지점이 지난해 10월까지 50곳으로 불었다. 대외적으로 내세운 법인체만 15곳이나 됐다. 리브, 리버스, 엘틴, 씨엔, 챌린 등 여러 회사이름으로 투자자들을 모았다. 전국을 돌면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사업체를 만들어 사기를 쳤다는 게 수사경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BMC사람들 얘기와 달리 건강보조기구로 버는 돈은 거의 없었다. 새로 들어온 투자자들의 돈을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배당금조로 주며 버티는 전형적인 피라미드식 운영을 해나갔다. 투자자들이 낸 돈을 투자자들끼리 나눠먹는 식으로 이었다.

이마저도 투자자들이 줄자 지탱이 버거워졌다. 어쩔 수 없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면 거액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며 재투자를 권했다. 현혹된 일부 투자자들은 빚까지 내며 수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한 피해자는 집을 저당 잡혀 빌린 돈과 땅 보상금, 보험대출금 등을 합쳐 5억여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빈털터리였다. “배당금은 고사하고 집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지만 속수무책이다.

‘금을 캐서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황당한 다단계사기업자도 있다. 문제의 업체는 K사. 아프리카 가나에서 금광개발사업을 벌여 수익을 돌려준다고 속였다. ‘금광사업에 투자하면 8주 안에 투자금의 120%를 준다’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채굴된 금 사진은 물론 가나대사, 부족장 등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회사 창립총회 땐 인기가수와 유명아나운서를 불러 호화판행사를 벌였다. 그 자리에 수 천 명의 투자자들을 모이게 해 투자유혹을 했다. 그런 수법으로 당한 사람이 수천 명. 줄잡아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뜯긴 것으로 집계됐다.

K사가 벌어들인 돈은 장부상으로 전체투자액의 10%에 머문다. 이 중 금광에서 번 돈은 없었다. 경찰조사결과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들의 돈을 먼저 들어온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불법다단계방식으로 회사를 꾸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돌려막기’ 수법으로 배당금을 회원들에게 줘 믿도록 한 뒤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온 것이다.

인천에서도 불법 금융다단계

올 들어 인천에서도 불법금융다단계사건이 터졌다. 불법유사수신행위로 생긴 피해자는 1300여명. 피해액은 200억 원대에 이른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가정주부, 회사원, 노동자 등 서민층인데다 수법도 지능화되고 있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지난 2월 20일 개발사업 등을 미끼로 투자자 522명으로부터 수 백 억 원을 가로챈 사기일당 45명을 붙잡았다. 그 중 범행을 주도한 A씨(51) 등 8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인천시 연수구에 부동산컨설팅사를 차려놓고 전북 무안의 리조트사업에 투자하면 석 달 뒤 1400만원의 높은 배당금을 준다고 속여 132억 원을 가로챈 혐의다.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그럴듯한 미끼를 던지는 업자들도 많다. 지난 2월 8일엔 다슬기 엑기스판매업을 빙자, 투자자 100명이 건넨 4억2000만원을 받아 챙긴 C씨(42) 등 20명이 인천 중부경찰서에 붙잡혔다.

이들은 인천 금곡동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다슬기엑기스 효능을 과장,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북한산곶감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투자자 300명이 13억 원을 뜯겼다. 인천 부평경찰서는 이런 사기행각을 벌인 D씨(42) 등 유사수신업체 간부 10명을 입건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