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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증 사본 내세요" 정보유출 사태에도 뻣뻣한 금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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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증 사본 내세요" 정보유출 사태에도 뻣뻣한 금융사
  • 양수진 기자
  • 승인 2014.05.12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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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보험회사가 카드 신청이나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고객의 주민등록증을 무분별하게 복사해 보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분증을 보는 것으로 본인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근거나 증빙을 남긴다는 이유로 고객의 주민증을 스캔하거나 복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36)씨는 두 달 전 주말에 차량 접촉사고를 당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온 손해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직원은 김씨의 신분증을 요구한 뒤 휴대전화로 이를 촬영해 갔다. 김씨는 “신분을 확인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데 사고 접수 후 파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 신분증 사진이 이후에도 그대로 보관돼 있을까 봐 자꾸 찜찜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지난 9일 서울 중심가의 한 은행 지점에서 체크카드 발급 신청을 했다. 창구 직원은 곧바로 주민증을 요구했다. 이어 주민증을 스캔 기기에 넣어 파일로 만든 뒤 이를 다시 인쇄해 카드 신청서에 첨부했다. “본인 확인이 됐는데 꼭 사본을 첨부해야 하느냐”고 묻자 이 직원은 “고객에게 카드를 만들어 줬다는 증빙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은행과 처음 거래하는 것도 아니니 신원 확인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이 직원은 “그래도 카드나 통장을 만드는 고객한테는 신분증 사본을 받아 둬야 한다”며 한사코 사본을 챙겼다. 이처럼 은행들이 일선 창구에 주민증 스캔 기기를 설치하면서 복사본이 줄지는 않고 대신 유출 위험성만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분증을 전자화해 파일로 보관하면 고객 정보가 대량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은 고객이 계좌를 개설하거나 인터넷뱅킹이나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주민증 사본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실명 확인을 했다는 근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보험회사는 고객이 보험금을 청구할 때 주민증 사본을 구비서류의 하나로 요구하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서류를 위조해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람이 있고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소송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금융감독원 검사에도 대비하려면 주민증 사본을 보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에선 이런 주민증 사본 보관은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하고 있다. 윤선희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금융실명제법에는 금융회사 직원에게 실명 확인 의무를 부여했는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기보다는 주민증 사본을 보관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국장은 “신원 확인을 넘어 주민증 사본을 무분별하게 보관하는 것은 금융회사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인데 금융감독 당국도 이런 관행을 계속 묵인한 책임이 있다”며 “신분증 사본 없이도 분쟁에서 책임 소재를 따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별다른 조치를 내지 않았던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사건이 터지자 주민번호 수집과 보관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는 9월부터 고객이 금융회사와 처음 거래할 때만 전자단말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주민번호를 알려 주도록 할 계획이다. 이후엔 주민번호 제출 없이 신분증 확인만으로 거래를 할 수 있다. 이 대책이 시행되면 금융회사들이 주민증 사본을 보관하는 경우가 지금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법령상 규정이 있는 경우와 단체계약 체결 시, 보험금 지급 등의 경우에는 첫 거래가 아니더라도 고객이 주민번호나 주민증 사본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해선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금융회사가 불가피하게 주민증 사본을 제출받는 경우에도 유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주민번호 부분은 지운 채 복사해 보관하도록 할 방침”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녹취 등 보험금 지급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다른 대안도 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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