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입장에서 가장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 영화 관람인데, 관람료며 팝콘 가격 모두 비싸도 너무 비싸요.”
직장인 조태훈(46)씨는 며칠 전 서울 서대문구의 대형 영화관을 찾았다가 아르바이트 종업원과 언쟁을 벌였다. 팝콘을 좋아하지 않는 조씨는 함께 온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팝콘을 사려다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씨는 아무리 극장 내 매점이라도 영화 관람료보다 비싼 팝콘세트 가격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져 물었지만 종업원은 “세트로 구매하면 더 저렴하다”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조씨는 “평소 대형 영화관 매점에서 판매하는 음료와 팝콘 등의 값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면서 “모처럼 시간을 쪼개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나왔는데 추억은커녕 기분만 망치고 돌아왔다”고 씁쓸해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발표한 올해 상반기(1~6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영화 관객 수는 9850만명(한국영화 관람객 5555만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대형 영화관들이 관객 수 최다 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원가에 비해 음료와 팝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게 아니냐는 소비자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 영화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을 피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더위를 날리려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최근 한국영화 두 편의 흥행으로 미처 표를 예매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표를 예매한 관람객들은 각종 음료와 팝콘 등을 판매하는 매점 앞에서 주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들은 음료와 팝콘을 담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영화 상영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매점 앞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관람객 대부분은 매점에서 판매되는 음료와 팝콘 등 각종 스낵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놀라움을 갖추지 못했다.
팝콘의 경우 중간(M)과 큰(L) 사이즈 두 가지 뿐이었다. 대형마트에서 2000원 안팎에 구입할 수 있는 양임에도 4500~5000원을 내야 했다. 또 과일주스와 이온음료 등 각종 음료들도 대형마트에 비해 3~4배가량 비쌌다.
특히 종업원들이 추천한 팝콘과 음료 등을 함께 제공하는 콤보세트의 경우 큰 사이즈 팝콘과 중간사이즈 음료 2잔이 포함된 가장 저렴한 세트 가격이 9500원이었다. 중간 사이즈 팝콘 2개와 중간 사이즈 음료수 2개, 나쵸 1개, 오징어 1개가 포함된 세트는 1만4000원이나 됐다. 이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세트 메뉴들은 영화 관람료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일부는 더 비쌌다.
관람료보다 비싼 팝콘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해야 하는 관람객들은 매점 가격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대학생 김모(24·여)씨는 “안내판에 설치된 세트메뉴 가격표를 보고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진작 외부 음식을 반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밖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음식들을 사왔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영화관 내 음식물 반입을 허용하도록 권고해 외부에서 구입한 팝콘과 음료를 극장 안에서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이를 알고 있는 관람객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대형 영화관이 팝콘이나 음료 등을 판매하는 매점을 운영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유는 이들 영화관이 음식물 반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극장 내 매점에서 판매되는 팝콘은 시중가의 약 7.5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극장 내 매점에서 판매되는 팝콘은 약 200g에 4500원이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600원이면 같은 양을 구입할 수 있다.
김 의원은 “대형 영화관은 원가 대비 수익이 많은 매점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실제로 메가박스의 경우 최근 3년 동안 극장 매점 매출이 64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15.7%나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YMCA 등으로 구성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협의회) 물가감시센터도 최근 ‘영화관 사업의 실질적인 수입원은 매점 매출’ 조사 결과를 통해 영화관 매점 매출 이익률은 8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시중보다 2~3배가량 비싸게 팔고 있는 대형 영화관들의 매점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대형 영화관들은 폭리를 취하고 있는 스낵 가격을 인하는 것은 물론 외부음식 반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대형 영화관이 영화 상영으로 얻는 수익은 -49.9%였고, 매점을 통해 얻는 수익은 48.9%로 조사됐다.
대형 영화관들은 하나같이 영화 관람료만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그 손해를 매점 운영과 광고비 등으로 보전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영화관 관계자는 “영화 관람료로 수익이 나지 않아 광고와 매점 운영으로 수익을 얻는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영화관의 주 수입이 영화 관람이 아닌 매점에서 나온다는 게 통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 제작비와 출연료 상승 등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비용이 증가했지만 영화 관람료는 별 차이가 없다”며 “현실적으로 영화 관람료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점에서 판매되는 팝콘과 음료 등의 가격을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영화표를 팔면 팔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항변하는 대형 영화관들의 지난해 매출액은 아이러니하게도 18~21% 증가했다. 매점에서만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곳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