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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게시글 커뮤니티 '대나무 숲' 인기…"더 이상 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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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게시글 커뮤니티 '대나무 숲' 인기…"더 이상 숨지 마세요"
  • 허효정 소비자기자
  • 승인 2019.04.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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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경문대왕 설화’를 읽고

[소비라이프 / 허효정 소비자기자] 몇 년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대나무 숲’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나무 숲’이란 어디서 하소연 할 수 없었던 같은 직종 또는 공통점을 가진 사회적 약자들이 마음껏 속내를 풀어내는 공간으로서 소통의 창구다. 「삼국유사」 ‘경문대왕 설화’에서 유래됐다.

대나무 숲은 익명으로 보장되어 누구나 쌓아왔던 감정을 버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대나무 숲’이 우리에게 있어 잘 사용되고 있는 걸까? 경문대왕 설화를 정리하고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 나귀 귀처럼 된다. 북두장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다른 이에게 알리지 못한다. 죽기 전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서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고 외친다. 외침은 계속 남아 맴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설화다. 이 설화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왕’과 ‘북두장’ 그리고 ‘대나무숲’이다. 우리는 왕을 사회적 강자이자 상위 계층 그리고 갑의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북두장은 사회적 약자이자 하위 계층 그리고 을의 입장으로 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나무 숲은 북두장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과 애환을 내뱉는 폐쇄적 공간으로 본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왕(사회적 강자)의 억압으로 북두장(사회적 약자)이 말 할 수 있는 권리와 욕구가 억제 당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북두장은 속내를 풀어주기 위해 대나무 숲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북두장의 외침이 해소되는 듯이 보이지만, 이는 좋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폐쇄적인 공간인 대나무 숲을 향한 북두장의 일방적인 외침은 해결되지 않는다. 상호적이지 못하면 해결되지 않으며 계속 반복될 수 있다.

현재 우리도 북두장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의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욕구를 당당하게 외치지 못한다. 회사 상사가 억지로 권하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말, 언어로 성희롱하는 상사에게 그만두라는 말, 대학 조별과제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선배에게 충고하는 말, 연락도 없이 찾아오시는 시부모님께 연락을 하고 와달라는 말, 반말로 주문하는 손님한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말 등 어떤 관계든 자신의 소리를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한다면 해결되는 것은 없다. 반복되고 만다.

경문대왕 설화를 통해 스스로의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상호적인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살펴봤다. 의사소통이 잘 되는 곳에는 대나무숲이 자라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 왕과 북두장 관계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 대나무숲에 숨어서 말하지 아니하고 각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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