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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호]조용한 살인자 ‘가습기 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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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호]조용한 살인자 ‘가습기 살균제’
  • 음소형 기자
  • 승인 2016.08.12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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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할 수 없는 생활 속 화학물질

 
[소비라이프 / 음소형 기자]비극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1994년, 유공(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앞 다퉈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평소 가습기를 사용하던 소비자들은 물때와 미생물 번식을 막아준다는 이 제품을 너도나도 구매하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홍보했다. 이렇게 가습기 살균제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약 60만여 개가 판매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266명에 이른다. 밝혀지지 않은 추가 피해자를 추정하면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 수준이다.

수차례 경고에도 역학조사 하지 않아

2006년 초반부터 아이들이 원인 모를 ‘폐 질환’으로 사망하기 시작했다. 의료계에서는 아이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계속 사망하자 이상함을 느꼈고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논문 발표를 통해 “원인과 치료에 대한 전국 규모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으나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2009년에 대한소아과학회지에 발표된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 23개 병원에서 공동 연구한 결과 총 78명의 사례 중 36명이 사망해 사망률이 49.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은 ‘전염병’이나 ‘바이러스’일 것으로 추정했고 끝내 ‘가습기 살균제’의 조용한 비극을 막지 못했다.

제품 출시 10여 년 만에 밝혀진 진실

2011년 봄, 급성 호흡부전의 증상을 가진 임산부 환자가 서울 대학병원에 잇따라 입원하기 시작했고 이 중 4명이 폐가 굳는 ‘섬유화’가 진행돼 사망했다. 이에 병원 측은 그동안 아이들에게만 위험하다고 경고돼온 정체불명의 ‘폐질환’이 성인에게도 심각한 질병인 것을 깨닫고 질병관리본부에 공식적인 역학조사를 촉구했다.

결국, 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가 “현 단계에서 100% 확정할 수는 없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쥐) 흡입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총 6종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모두 수거 조치함과 동시에 사용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기업과 정부, 모두 책임회피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구체적 원인 물질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으로 드러났다. 이 독성물질은 피부 접촉이나 입으로 섭취 시 위해성이 낮다고 판명된 물질이었으나, 호흡기로 흡입하게 될 경우에 대해서는 조사된 바가 없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상대로 오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여하는 데 그쳤고 기업은 공식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가습기 살균자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정부와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2012년 민·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해조사 결과가 나와야지만 조사할 수 있다며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고, 법원은 2015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사건이 최근 언론에 크게 다뤄지며 사회 이슈로 떠오르자, 사건 원인이 밝혀진 지 5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전담수사팀이 구성돼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고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가장 많은 사망자 낸 옥시, 뻔뻔한 대응

 ▲논란이 되고 있는 '옥시싹싹'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제품별 1-2차 피해현황 및 판매/제조사 검찰고발 현황’에 따르면 옥시의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 제품에 의해 103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 결과 공개된 옥시의 법인 등기부 등본을 보면 2011년, 정부가 수거명령을 내리자 옥시는 바로 ‘주식회사 옥시 레킷벤키저’를 해산하고 ‘유한회사 옥시 레킷벤키저’를 세웠다.

이는 자사의 제품으로 소비자가 사망한 것을 알면서도 ‘형사소송법 제328조 피고인이 사망하거나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게 됐을 때 공고기각 결정을 한다’는 법을 악용한 것으로, 옥시의 법인을 바꿔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옥시는 검찰이 본격적으로 압박 수사를 시작하자 지난 4월 22일, 이메일을 통해 언론매체에게 사과문을 보냈고 지난 5월 20일에는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 한국법인 대표와 임원진이 옥시 측 피해자들을 만나 공식 사과를 진행했다.

하지만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험을 조작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밝혀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치달아 전국적인 옥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확산되는 생활화학제품 불안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생활 속 화학제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수백명의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조차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를 통해 믿음을 줬었기 때문에 다른 화학제품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최근,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P&G의 ‘페브리즈’ 제품 중 섬유탈취제에 포함된 성분인 ‘제4급 암모늄 클로라이드(암모늄염)’와 공기탈취제에 포함된 ‘BIT (Benzoisothiazolinone)’ 성분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한국P&G 측은 “해당 성분은 화학물질 관리가 엄격한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유럽연합(EU)에서 방향제 및 탈취제로 사용 허가된 성분이며, 한국에서도 화학물질 평가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안전성 검증이 완료된 화학물질”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스프레이형 탈취제나 방향제와 같은 제품은 공기 중 분사돼 코로 직접 흡입이 되는 만큼,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주의해야 할 화학성분은 무엇?

 화학 성분이 들어간 생활용품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주의를 기울여서 사용해야 한다.

화장품, 세정제, 치약 등에 함유된 ‘파라벤(paraben)’은 제품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부제의 일종으로 흔히 사용되지만, 유방암 유발 및 기형아 출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가급적 파라벤 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화학 성분인 ‘프탈레이트(phthalate)’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노출되면 호르몬 교란, 뇌 발달 저해,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장애 등의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럽에서는 수입과 생산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이 ‘프탈레이트’는 향수나 매니큐어 등 화장품의 향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성분에 많이 노출될수록 성호르몬 분비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손 세정제나 항균제에 흔히 사용되는 ‘트리클로산’은 생식독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성분으로, 간 섬유화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존재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사용이 금지됐다. 전문가들은 병균 예방을 위해 애써 화학성분이 함유된 손 세정제를 사용할 필요는 없으며 자주 손을 씻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한, 백열등이나 형광등 안에는 수은 및 납과 같은 유해물질이 들어있어 2014년부터 백열등은 생산·수입이 금지된 상태이다,

화학제품 NO! ‘노 케미족도 등장해’

이와 같이 화학성분의 생활용품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확산되면서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노 케미족(No-chemi)족’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화학물질(chemicals)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고 베이킹파우더·밀가루·물·식초 등의 천연 재료로 세제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이렇게 천연 세제를 사용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천연성분의 상품 매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지난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매출을 조사한 결과, 천연 세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식초와 소금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69%, 64%나 증가했으며, 베이킹소다·구연산 또한 23%나 증가했다.

환경부, 유해생활화학제품 7개 퇴출

한편, 환경부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시장에 유통되는 생활화학제품 15개 품목 331개 제품을 대상으로 안전기준과 표시기준 준수 여부를 조사한 결과 사용금지 물질을 함유한 스프레이 탈취제 등 안전 기준을 위반한 7개 제품을 적발했다. 해당제품은 위해상품 판매차단 시스템’에 제품 바코드가 등록돼 전국 대형 유통매장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된다.

홍정섭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은 “위해우려제품 안전·표시기준에 부적합한 제품들이 유통되지 않도록 시장에 대한 조사·감시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유해화학물질의 위협으로부터 일반 국민과 소비자들의 안전을 지켜나가겠다”고 밝히며 덧붙여 생활화학제품 중 자가 검사를 받지 않거나, 표시기준을 이행하지 않고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이 발견될 경우에는 국민신문고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녹색제품정보 시스템(www.greenproduct.go.kr)을 통해 환경마크 인증 제품 등 친환경 제품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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